백일청춘
정해연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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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바뀌는 걸지, 영혼이 바뀌는 걸지. 두 사람 영혼이 서로 바뀌면 처음엔 혼란스러워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야기가 늘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엄마와 딸, 아버지와 딸은 서로를 조금 알게 됐던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은 어떨지. 신카이 마코토 영화 <네 이름은>에서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바뀌고 서로의 삶을 살아 보는군요(소설을 봤는데 영화를 말하다니, 지금 생각하니 영화 보기는 했네요). 둘은 서로한테 관심을 가지게 됐네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습니다. 서로 몸이 바뀌고 본래대로 돌아오면 전과 달라지기도 하겠습니다. 저는 누군가와 바뀌고 싶지 않군요. 이 소설 《백일청춘》을 조금 보니 아사다 지로 소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이 생각났습니다. 거기에서도 영혼이 바뀌는데 죽은 사람이 바뀐 거였어요. 책 본 지 오래돼서 다른 건 생각나지 않네요.


 앞에서 두 사람 영혼이 바뀌는 이야기를 한 건 여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서예요. SH물류 회장 주석호는 폐암 4기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날 죽음이 찾아왔어요. 석호는 쓸쓸하게 혼자 죽음을 맞는구나 했는데, 잠에서 깨니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거예요. 고등학생 김유식으로. 그때는 바로 자신과 다른 사람이 바뀌었다 생각하지 못했는데, 곧 석호와 유식은 서로가 바뀌었다는 걸 알게 돼요. 석호는 말기암을 알게 되고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만 한 게 억울했어요. 고등학생 김유식도 엄마와 살고 돈이 없는 게 억울했던가 봐요. 두 사람이 바뀌었을 때 좋은 건 석호겠습니다. 늙고 병든 몸이 아닌 젊고 건강한 몸이니. 유식도 석호한테 돈이 많아도 늙고 병든 몸은 좋아하지 않았어요.


 두 사람 몸에는 숫자가 나타났어요. 100부터 줄어드는. 그러니 두 사람은 백일 동안 바뀐 채 살아야 하는 거죠. 백일이 지나면 석호는 죽겠지요. 말기암이니. 아무 일 없이 앞으로 살 날이 백일 남았다면 그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겠습니다. 백일이 지나면 죽는 건 석호일지, 유식일지. 그런 것도 모르니 무섭겠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저절로 깨닫는 것도 있겠지요. 석호는 백일이 지나면 자신은 죽어도 유식은 죽지 않을 거다 여겼습니다. 유식은 이제 열여덟살이니. 죽으면 억울하겠네요. 석호는 한 회사 회장이니 자신이 죽기 전에 정리를 해야 하는군요.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기도 해서 안 할 수 없었네요. 석호는 자신이 유식이 모습이어서 바로 나서지는 않고 유식이한테 그 일을 하게 합니다. 유식이가 석호 모습이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못할 일이군요. 유식이가 석호 몸이 되어 아주 안 좋은 것만은 아니었군요.


 영혼이 바뀌는 건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거기도 하겠습니다. 사람 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지요. 그 사람이 되어 생각해 보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겠습니다. 모습이 달라지면 조금 쉬울지도. 이 책 제목은 ‘백일청춘’이에요. 석호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만 한 자기 청춘이 안됐다 여겼군요. 유식이 모습이 되고 젊은이처럼 놀아볼까 했는데, 그런 일은 하루면 지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식이는 돈을 펑펑 써 보았군요. 그것도 언제나 좋지는 않을 것 같아요. 유식이는 공부는 잘 안 했지만, 엄마를 아주 많이 생각했어요. 유식이는 돈이 있으면 엄마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했군요. 그 생각이 아주 틀린 건 아닐지라도 돈을 석호한테 받거나 석호 아파트를 엄마한테 준다고 엄마가 기뻐할 것 같지는 않았어요. 고등학생 때는 단순하게 생각할까요.


 자신이 자신을 부정하면 슬프겠습니다. 석호는 유식이와 함께 지내면서 하나 깨달았어요. 자기 청춘이 일만 하느라 불쌍한 건 아니었다는 걸. 자기 청춘은 자신이 세운 회사 SH물류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석호가 늘 최선을 다해서 SH물류가 있는 거기는 하죠. 식구가 있다 해도 죽음은 혼자 맞는 거겠지요. 그래도 석호는 백일 동안 그리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유식이도 마찬가지였어요. 유식이는 백일이 지나고 자기 몸으로 돌아오고 열심히 삽니다. 다 잘 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사는 게 어디예요. 한번뿐인 삶 아쉬움 없이 사는 게 좋겠지요. 이렇게 말하지만 저는 게으르게 살겠습니다. 저는 석호처럼 살고 싶지도 않고 유식이처럼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저죠. 제가 살고 싶은대로 살 거예요. 책을 보고 글을 쓰면서 즐겁게.




희선





☆―


 무조건 놀기만 하는 게 청춘인 건 아니었다. 닥친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석호의 청춘이었다. 석호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키워낸 회사가 곧 자신의 청춘이었다. 지금까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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