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문학동네 시인선 152
장수양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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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본 만화영화에 이런 말이 나왔어.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는. 이건 눈이 녹으면 뭐가 되느냐는 물음에 한 대답이야. 봄이 온다고 했는지, 봄이 된다고 했는지.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 어떻게 말했는지 찾아보고 말해야 했는데, 귀찮은 난 안 찾아봤어. 그래도 예전에는 ‘눈이 녹으면 물이 되지’ 했을 텐데, 그 만화영화를 보고 나서는 나도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생각하게 됐어. 봄이 온다고 하는 게 자연스럽겠지. 이 시집 제목 보니 그때 들은 말이 떠오르더라고.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이 말에는 봄이라는 말도 들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내 멋대로 상상하기도 했어.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극장에서는 그래.  (<연말상영>에서, 20쪽)

 

 

 

 이 시집 제목은 <연말상영>이라는 시 맨 앞에 나오는 말이야. 극장에서 그렇다니. 그런가 봐. 연말에 하는 영화여서 그럴까. 연말에는 바깥은 추워도 극장 안은 따듯할 것 같은데.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잘 몰라서지. 시를. 그래도 이 시집 제목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는 어쩐지 따듯해. 그렇지. 억지로 동의를 구하는 것 같군.

 

 내가 시집을 보면 늘 하는 말이 있지. 시 잘 모르겠다고. 이번에는 더하네. 몇달 전에 시집 《희망이 사랑을 한다》(김복희)를 보면서도 자꾸 어렵다 생각하면서 봤는데. 이번에는 더 어려웠어.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어. 여기 담긴 시는 길기도 하고, 알 듯한 말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어. 시인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쓴 걸 텐데, 내가 그걸 알아듣지 못했어. 시에 쓴 말을 다른 걸로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 처음에는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더군. 두번째에는 조금 나았지만. 본래 그렇지. 처음은 낯설어도 두번째는 조금 익숙한. 그렇다 해도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모르겠다’했어. 여기에는 해설도 없어. 그걸 본다고 시집에 담긴 시를 아는 건 아니지만.

 

 

 

 언니는 어렸을 적 플루트를 배웠다. 난 플루트를 만져 본 적이 두어 번 있었다. 몹시 아름다운 악기였는데 난 그게 필요 없었다. 집에 돈이 떨어지자 언니도 플루트가 필요 없어졌다.

 플루트는 어떤 일에도 슬퍼하지 않았기에 그 악기를 보는 일이 우리에겐 조금 슬프게 느껴졌다. 순리대로 플루트는 창고에 박혔다. 사라지고 있다.

 

-<플루트>, 18쪽

 

 

 

 앞에 옮긴 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같다’고 말하다니. 시 <플루트>는 여기 있는 말 그대로겠지. 플루트는 예쁜 악기야. 본래는 나무로 만들어서 지금도 목관악기라 하지 않던가. 소리도 참 좋지. 다른 악기보다 플루트 배우는 건 돈 많이 안 들 것 같은데, 전문가가 되려면 많이 들지도. 이건 어떤 악기든 그렇겠어. 플루트는 슬퍼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을까. 난 플루트도 슬퍼했을 것 같아. 아무도 자신을 불지 않고 창고에 넣고 잊어버렸잖아. 지금 그 플루트는 어떻게 됐을지. 시 마지막에 쓰인 말처럼 사라졌을지도.

 

 여기 담긴 시에는 이름이 나오기도 해. 그건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 다른 건지. 사만 이고 싱 아니스타 아니불빛 미 김상 미치 치리 모자키스 티라 오브. 내가 쓴 게 다가 아니질도 모르겠어. 이번에도 자신없는 말을 했군. 시를 보면서 사람 이름처럼 쓴 걸 적기는 했는데 놓친 게 있을지도. 사람 이름 같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 시 <미>는 미가 누군가한테 주사 같은 걸 맞는데, 그건 진짜 일어나는 일인지, 꿈인지. 김상이 나오는 시를 볼 때는 이상이 생각나고 ‘미’는 이상 소설에 나온 사람 같은 느낌도 들었어. 그런 걸 썼다면 뭔가 말이 있었을지도 모를 텐데 그런 말은 없어. 이상은 진짜 이름이 김해경으로 일본사람이 이 씨라 여기고 이상이라 했다지.

 

 

 

 티라와 오브는 전장의 한가운데서 만났다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 그들이 있던 세계는 멈췄고 풀 한 포기도 죽거나 새로 태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발붙인 지상에는 그 세계에서 날아온 민들레씨 하나 발견 되지 않았다

 

 티라는 발레리나였고 오브는 발레리노였다 그들은 언젠가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다시금 세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무대를 가진 건물은 무너졌고 무너졌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들의 기대도 함께 무너졌다

 

 티라와 오브는 그들이 입을 맞추는 동안 세계가 멈추기를 바랐다 그것은 절실하지 않고 실낱같은 기대에 비해서도 실없었으나 조금의 장난기도 없는 소원이었다 그 세계는 원래부터 그런 소원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만날 수 없다 그것만은 증명할 수 있다

 발음해보라

 

 “티라”

 대답이 없다

 

 “오브”

 대답이 없다

 

 “티라, 그리고 오브”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다

 

 역시, 그 세계는 멈춘 것이다 더이상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영원히 입맞춤을 했다

 

-<티라와 오브, 그리고 티라와 오브의 아름다운 세계>, 174쪽~175쪽

 

 

 

 티라와 오브가 사는 세계는 멈추었어. 그게 좋을지 안 좋을지. 사람이 아주 좋으면 그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잖아. 시간이 가고 살다보면 좋은 일뿐 아니라 안 좋은 일도 일어나지. 그런 건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 있을지도. 이 시에 나온 티라와 오브는 사람일까.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라 했지만. 둘은 전장 한가운데서 만났다고 했는데, 그건 정말 전쟁이 일어난 곳일지 사는 게 전쟁이다는 걸 나타낸 걸지. 엉뚱한 생각인가. 그럴지도. 시를 마음대로 보면 안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난 그저 조금이라도 뭔가 잡아보고 싶은데 잘 안 되는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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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7 2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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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8 2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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