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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43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평점 :
꿈이 잘 생각날 때도 있지만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어요. 꿈을 꾸다가 잠깐 깨고는 괜찮은 꿈이었어 하고 다시 자고 일어나면 그 꿈이 생각나지 않기도 해요. 자면서 꿈 잊어버리지 않아야지 하면 정말 잊어버리지 않기도 해요. 꿈은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건지, 생각이 만들어내는 건지. 둘 다일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 안 좋은 꿈 꿨어요. 그건 제가 걱정하는 일이었어요. 걱정이 똑같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안 좋은 꿈은 잊고 좋은 꿈만 기억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언제나 반대가 되는군요. 기억도 다르지 않네요. 전 꿈꾸는 거 좋아해요. 꿈이 생각나면 잠을 깊이 못 잔 거겠지만. 꿈을 이어서 꾼다는 사람도 있던데, 저는 그런 일 딱 한번 있었어요. 한동안 학교 다니고 시험 보는 꿈을 꿨는데 이제 그런 꿈 안 꾸는군요. 차라리 그게 나은데. 그 꿈에서 저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문제 못 푼다 해도.
네가 나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곳들이 궁금해.
너는 어디에 있는 나를 기억할까.
너의 상상력은 나를 어디까지,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
나를 상상하는 너를 상상하면 나는 네 둘레를 하염없이 맴돌 수 있을까. 너를 상상하는 나를 상상하면 너는 내 꿈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을까.
너는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한참을.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중얼거렸지.
미안합니다, 너는 사람을 잘못 봤다고 몹시 부끄러워했어.
내가 사람 모양을 하고 있구나, 그때 난 생각했지.
너는 왜 부끄러울까.
그때 너는 다른 시간 속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그때 나는 너의 등 뒤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내가 비 모양을 하고 있구나, 그런데 내 모습이 그렇게 변한 걸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 머리 위로 검은 우산이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거의 젖지 않았어.
그리고 너는 그날 우산도 없이 빗속에서 나를 찾으러 어딜 그렇게 그렇게 쏘다녔을까.
-<의식의 흐름을 따르며>, 20쪽~21쪽
이 시는 꿈속에서 누군가를 찾는 걸까요. 꿈속에서 만난 건지. 어쩐지 시가 꿈 같네요. 김행숙 시인 시집은 처음입니다. 이번이 여섯번째 시집인 듯한데. 지금까지 이름도 몰랐습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이름 아는 작가 있기도 하잖아요. 언젠가 황인찬 시인이 라디오 방송에서 김행숙 시인 시를 읽어줬어요. 이름을 그때 안 건 아니지만, 그걸 들으니 새로 나온 김행숙 시인 시집 한번 보고 싶더군요. 그 시가 담긴 시집을 봐야 했을지도. 한달에 시집 한권 보기는 잘 못합니다. 보려고 사둔 시집은 여러 권인데. 꿈은 알기 어려워요. 자기 꿈이든 남의 꿈이든.
잘 아는 길이었지만……
우리가 아는 그 사람처럼
알다가도 모를 웃음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이었어요.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눈을 감지 못하는 마음이었어요.
나는 전달책 K입니다.
소문자 k입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아는데
왜 가는지는 모릅니다.
오늘따라 나는 울적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이럴 때 나는 내가 불편합니다.
만약 내가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주워 주머니에 숨길 때 그 마음을
누군가가…… 누군가를 쏘아보며 나를 집어 던질 때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알면 뭐가 달라지나요?
평소에도 나는 나쁜 상상을 즐겨했습니다.
영화 같은
영화보다 더 진짜 같은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의 모든 상상이 비껴가는 곳에서
나는 나를 재촉했습니다.
한 명의 내가 채찍을 들고
한 명의 내가 등을 구부리고
잘 아는 길이었는데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길이었는데……
안개가 걷히자
거기에 시체가 있었습니다.
두 눈을 활짝 얼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68쪽~69쪽
시집 제목이기도 한 시네요. 길을 잃었다는 말이 나오다니. 이 시 다기 보기 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스트레이(stray)라는 말을 들었어요. 저 말 들어본 말인데 무슨 뜻이더라 했습니다. 바로 떠올렸느냐 하면 그러지 못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말하는 걸 듣고서야, ‘맞아’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스트레이 쉽이 생각났습니다. 이건 어디에 나오는 말일까요. 소세키 소설 《산시로》지요. 하루키도 쓴 적 있던가 했는데 그건 모르겠네요(《양을 쫓는 모험》이 그거던가). 이 시 마지막에서는 시체가 기다렸네요. 나였는데 우리가 되다니. 그건 나와 나일까요. 시체도 자기 자신이 아닐지. 제 마음대로 생각했군요. 아직도 꿈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봅니다.
밤에만 꿈을 꿀까요. 잠은 밤에만 자지 않는군요. 낮에 자면 더 이런저런 꿈을 꿀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다 리쿠는 꿈은 바깥에서 온다고 했는데. 전 아침, 낮도 좋지만 밤을 더 좋아해요. 그때 깨어있는 게 좋아요. 다른 사람은 잠들고 조용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침이 오기 전에 자야 할 텐데. 잠을 잘 때만 꿈꾸지 않아요. 깨었을 때도 꿈꿔요.
김행숙 시인은 카프카를 좋아하는가 봐요. 카프카나 그레고르 잠자 이야기를 시로 쓰기도 했습니다. 잠자는 성이지만, ‘잠 자’ 하는 말로 봐도 괜찮지 않을지. 이런 말장난을. 카프카가 쓴 소설은 꿈 같지 않나요. 이야기는 어떤 것이든 꿈 같군요. 이야기를 쓰는 것뿐 아니라 읽는 것도 꿈으로 들어가는 거네요. 이런 생각하니 멋집니다. 여기 담긴 시는 꿈 같습니다. 현실을 나타내는 말도 있을지 모를 텐데 제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시를 만나는 건 괜찮아도 시를 말하기는 어렵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