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닝 창비만화도서관 3
틸리 월든 지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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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리, 이젠 잘 지내지. 이제는 오랫동안 타던 스케이트를 안 타겠지만. 그걸 타려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나 봐. 어쩐지 그게 지금도 이어지는 것 같아. 8시에 잠드는 거 좋아한다니. 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좋아. 평소보다 일찍 자면 별로 못 자고 깨. 오랫동안 늦게 자서 그런 거겠지. 한번 잠들고 깨지 않으면 좋을 텐데, 어떤 때는 자도 자도 일어나기 힘든데 어떤 때는 더 자려 해도 잠이 안 들어. 그 두 가지가 왔다 갔다 해. 짧은 시간 동안은 괜찮기도 하던가. 늘 그러면 훨씬 좋을까. 그건 나도 모르겠어. 어쩐지 난 잘 짜여진대로 살지 못할 것 같아. 학교는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어. 그때는 그래야 했으니 그랬군. 틸리 넌 어렸을 때부터 스케이트 타고 그 시간에 따라 살았겠구나. 그런 거 어땠어. 난 틸리 네가 스케이트 타는 거 좋아하는 건지 그냥 타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 처음에는 좋아하는 거겠지 했는데. 하다보니 줄곧 한 건 아닐까 싶어.

 

 학교 다닐 때 다른 아이들은 잘 지내는 듯한데 난 늘 그러지 못한 것 같아. 틸리 넌 뉴저지에서는 욜리와 친하게 지내고 함께 피겨 스케이팅을 했지.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도. 그건 혼자 하는 것과 여럿이 하는 거겠지.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은 처음 알았어. 피겨 스케이팅도 잘 아는 건 아니야. 그렇기는 해도 틸리 너네 엄마가 네가 피겨 스케이팅을 하고 이름을 날리기를 바란 건 아니었지. 그거 다행 아닌가 싶은데. 텍사스로 이사하고 틸리 넌 혼자 스케이트를 타러 갔지. 대회에 나갈 때도. 틸리 넌 그런 게 아쉬우면서도 좋다고 했구나. 나도 학교에서 뭔가 한다고 해도 엄마 아빠 다 오지 않았어. 딱히 한 것도 없던가. 나보다 잘 하는 아이가 더 많았으니. 지금도 다르지 않은데 학교 다닐 때 좀 쓸쓸했어. 그건 평생 갈 것 같아. 그래도 책 보고 그걸 잊으려 해. 틸리 넌 피겨 스케이팅 할 때랑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 할 때 친하게 지낸 사람 있었구나. 그런 사람이 있어서 네가 스케이트 그만두지 않았겠다.

 

 뉴저지에서 다닌 학교에서 틸리 너 괴롭힘 당했구나. 텍사스로 이사하고는 사립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거기에서도 그레이스가 널 못 살게 굴었지. 그레이스는 누구든 괴롭히고 그러다 학교를 그만뒀야 했지. 그레이스는 왜 그렇게 남을 괴롭혔을까. 그 학교에는 네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었구나. 여섯살 때 넌 자신이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지. 그런 걸 알게 되면 어떤 느낌일지. 조금 당황스럽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겠다. 틸리 네가 여자아이들과 있는 모습 조금 어색해 보이기도 했어. 동성을 좋아한다고 동성과 친구가 못 될 건 없을 텐데. 좀 편하지 않으려나. 넌 네가 좋아하는 아이가 널 좋아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생각과 다르게 레이가 널 좋아해서 기뻤겠다. 고등학생이 되고는 만나지 못하고 연락도 안 됐지만.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과 다르면 안 좋게 여기기도 해. 첼로 선생님은 널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구나. 그런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첼로 배우는 거 부럽기도 했어. 한국은 악기 같은 거 학교에서 배우라고 안 하거든. 전문가가 안 된다 해도 악기 다루는 게 하나쯤 있으면 더 좋을 텐데. 스케이트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취미로 할 수도 있잖아.

 

 첼로도 그렇고 스케이트도 취미로만 하기에는 돈이 좀 들까. 그럴지도 모르겠어. 틸리 넌 피겨 스케이팅 잘해서 등급 시험에 붙고 대회에 나가면 긴장했지만 1등도 했구나.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 팀에서는 네가 있어야 한다고 했지. 잘해서 거기에 있어도 돼서 좋았겠다. 난 어디에든 들어가지 않아. 그건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지만 가끔 쓸쓸해. 사람한테는 어딘가에 들어가고 싶은 욕구도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내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걸지도. 자꾸 내 얘기를 하다니, 미안해. 고등학교 다닐 때 틸리 넌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구나. 판환가. 그것 때문에 미술을 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지. 그리고 스케이트를 싫어하게 됐구나. 등급시험은 떨어지고. 고등학생 때 커밍아웃 했구나. 그 일 쉽지 않았을 텐데 용기 냈다. 첼로 선생님은 축하해줬지. 쌍둥이 존은 그게 잘못됐다고 했지만. 그때는 그랬다 해도 지금은 괜찮겠지.

 

 오랫동안 하던 걸 그만두고 새로운 걸 하는 데도 용기가 있어야 해. 틸리 넌 네가 좋아하는 걸 찾았구나. 그림. 그걸로 이렇게 네 이야기도 했잖아. 오래 하던 걸 그만두고 바로 다른 걸 찾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아니 그렇지도 않은가. 내가 잘 모르는 것일 뿐일지도. 자신한테는 오래 한 거 하나밖에 없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틸리 네가 그런 생각 안 해서 다행이야. 지금 그림 즐겁게 하지. 자신이 좋아하는 거여도 어려운 때는 찾아올 거야. 그런 때도 틸리 네가 잘 넘겼으면 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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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4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그래픽 노블 저에 최애중 한권!
전 이책 읽으면서 사춘기 시절에 마주하는 현실이 새벽 공기 차가운 빙판 위 아이스링크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해뜨기전 어둡고 컴컴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어느누구에게도 이해 받기 어려운 감정들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서있던 시절
스케치가 어두운날은 어둡게 추웠던 순간은 춥게 그렸던 부분에 공감을 많이 했어요
마치 날것 그대로인 사춘기 시절 감정이 드러나있는것 처럼 느꼈거든요

마지막장이 트위즐로 끝나는데 트위즐이 한쪽 발을 이용해 최소한 한 번 이상을 순방향 또는 역방향으로 빠르게 도는 기술이더군요. 틸리는 아이스링크를 떠나면서 울음ㅇㄹ 터트리지만
인생 트위즐 처럼 떄로는 가던길이 아닌 옆길, 한번도 꿈꿔본적 없던 길로 들어설수 있다는거
언제든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 반대 방향으로 새롭게 회전해서 갈수 있다는거 ,,,,

희선 2021-01-15 00:51   좋아요 1 | URL
저는 우연히 이 책을 봤어요 스케이트 하는 이야긴가 했는데 그것만은 아니더군요 스케이트를 타는 걸 보고 사춘기에 마주하는 현실을 생각하시다니, 저는 그런 생각은 하나도 못하고 그저 이야기를 봤습니다 여전히 그림, 만화 보는 걸 잘 못하네요 그림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고 보니 피겨스케이팅을 그만두고 나중에 스케이트 타러 갔던 게 생각났습니다 그만뒀다 해도 아주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트위즐이 그런 거군요 정말 그건 틸리를 나타내는 것과 같네요 다른 것에 관심을 가져서 다행이고 그걸 하게 돼서 잘됐다 여겼는데, 피겨 스케이팅에 있는 기술로 그걸 나타냈다니...

scott 님은 아시는 거 많군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