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듣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14
정은 지음 / 사계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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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 다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읽어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건 여기 나오는 수지 때문일까. 수지는 어릴 때 높은 열이 나고 귀가 들리지 않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보고 듣고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날 때부터나 나고 얼마 지나지 않고 하나를 못할 수도 있다. 그건 비정상일까.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못 보거나 못 듣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일지도. 세상에는 장애인이 있을 텐데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많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고 집 밖에 나오지 않아설지도.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으면 세상을 다르게 보고 들을 거다. 그건 보이거나 들리는 사람은 알 수 없겠다. 눈이 보이고 귀가 들리던 사람이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으면 무척 무서울 거다. 세상에는 위험한 게 많다는 걸 아니까. 거기에 익숙해지면 달라질지도.

 

 한국도 청각장애인한테 수화보다 구화를 더 가르치려고 할까. 수지 엄마가 수지한테 수화를 가르치려 하지 않은 게 수지 귀가 들리지 않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선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수지가 자신의 곁을 떠나 자신이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게 두려워서였다. 엄마도 처음이니 잘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곁에 있어야 할 때는 없어지다니. 왜 엄마를 이렇게 안 좋게 그렸을까. 난 안 좋게 보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멋대로 죄책감을 갖고 희생해야 한다 생각하고, 이제는 그러지 않겠다면서 아이를 두고 떠나다니. 아이랑 함께 있으면 꿈을 이룰 수 없나. 차라리 처음부터 그러지. 내가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구나. 난 부모를 떠나 홀로서기도 못했으니 말이다. 딱히 누군가 때문은 아니다. 그저 세상과 잘 사귈 수 없을 듯해서 그랬다. 어릴 때부터 그랬는데 나이를 먹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둘레가 그렇게 만들었지만 홀로서기를 하게 되는 수지는 대단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세상은 어떨까. 조용할 것 같다. 난 시끄러운 소리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소리는 괜찮지만 크게 튼 음악소리는 정말 싫다. 이건 나만 그런 건 아니겠구나. 크게 말하는 소리도. 난 하루에 한두 마디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말 안 할 때가 더 많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도 달리 말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그렇지는 않겠다. 수화하면 되니까. 수화하는 사람을 수다스럽다고 한 말 들은 적 있다. 그건 소설에서 봤던가.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듣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그 세상에 있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데 보이고 들리는 사람은 모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의학으로 해결하려 했다. 수지 엄마와 할머니는 수지를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수지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인공와우 수술을 해주었다. 인공와우로 듣는 소리는 다를 거다. 나도 그건 몰랐다. 그저 보통으로 듣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기계 도움을 받아 듣는 건데.

 

 어른은 왜 아이 마음을 제대로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정할까. 난 다 싫다고 할 것 같지만. 무언가 해주겠다고 할 사람이 아주 없구나. 수지는 싫어했지만 그래도 난 그게 부러웠을까. 모르겠다. 수지가 할머니 엄마 고모와 살았지만 그리 가난하지는 않았다. 할머니와 엄마가 있어서 귀가 들리지 않아도 수지가 괜찮았구나. 할머니가 죽고 엄마는 어디론가 떠나고 수지는 혼자가 된다. 이때 스무살이었을까. 수지는 인공와우수술을 받고 일반학교로 옮겼는데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뒀다. 고등학교 3학년이니 다니던 학교에 다녀도 괜찮았을 텐데. 그래도 수지한테는 친구가 있었다. 하나뿐이지만. 한민은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전색맹으로 색깔이 안 보였다. 세상을 흑백으로 보는 것도 많이 다르겠구나. 한민은 누구보다 흑백 명암을 잘 알았다. 그런 건 보통 사람은 쉽게 알기 어렵겠지. 수지와 한민은 장애인이라 해도 서로 다르다. 이건 비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모두 서로를 다 알지 못한다. 수지는 한민이 자신을 다 알지 못해 아쉬웠지만 사람은 다 그렇다는 걸 깨닫는다. 할머니와 엄마 때문에 알았다고 해야 할까.

 

 혼자가 된 수지는 처음에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는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수지는 한민과 산책듣기를 함께 하기로 한다. 다른 사람과 산책하면서 그곳을 말하게 하는 거다. 실제 이런 일 있을까.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난 혼자 걷는 게 더 좋지만 누군가는 걸으면서 자신이 보고 듣는 걸 남한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걷거나 울면서 걷기도 하겠지. 산책을 하고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고 한 사람도 있다. 산책을 하면서 온전히 자신을 만나서일지도.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괜찮지만 자기 자신을 만나는 시간도 있어야겠지. 수지와 한민은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는 거구나.

 

 

 

희선

 

 

 

 

☆―

 

 나는 먼저 나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던 할머니 말을 떠올렸다. 나는 나를 존중하고 내 결정을 존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할 것이다. 그 시간을 존중할 거다 다짐하면서 나는 산책을 멈추지 않았다.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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