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책 읽기 아우름 9
장석주 지음 / 샘터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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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제목 멋지군요. 자신이 읽은 책이 곧 자신의 우주라니. 책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읽지 않아도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래도 책을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게 조금 낫습니다. 책을 보면 자신이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모르는 곳이나 실제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어요. 그런 재미가 있기에 책을 보는 거겠지요. 한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건 아주 적습니다. 자신이 몸소 겪는 게 더 좋겠지만, 책은 간접으로 그 일을 겪게 합니다. 그걸 보고 실제 어딘가에 가는 사람도 있겠네요. 멋진 소설 배경이 된 곳이나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 살았던 곳 말이에요. 그런 곳을 다니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저는 게으르고 힘든 거 싫어서 어딘가에 가지 않고 책으로만 떠납니다. 거의 소설입니다. 그렇다 해도 여러 나라 소설이 아니고 일본소설을 많이 봤군요. 이건 2010년쯤부터 그랬네요. 일본 미스터리. 미스터리, 스릴러는 여러 나라에서 나오기도 하는데, 서양은 저랑 좀 안 맞아요. 저와는 반대로 일본 미스터리가 맞지 않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저는 어릴 때는 책을 거의 안 봤어요. 둘레에 책을 보는 사람도 책도 없었어요. 장석주도 저와 비슷했는데 저와 달랐던 게 있었습니다. 장석주는 책이 많은 친구네 집에 가서 책을 보고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도 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학교에 다니기 싫어서 거의 도서관에 갔다고 해요. 저는 책 많은 친구도 없었고 도서관도 몰랐습니다. 그럴 수가. 책이 없다 해도 관심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별로 관심 갖지 않았나 봅니다. 제가 책을 꾸준히 본 건 고등학교를 마치고부터예요. 그때 저는 시와 소설을 봤는데, 장석주는 스무살 무렵에 철학이나 인문학 책을 봤답니다. 시 소설도 봤겠지요. 저는 몇해 전까지 장석주를 시인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동안 시뿐 아니라 여러 글을 썼더군요. 아, 소설이나 소설 작법 책도 있었어요. 소설은 못 봤지만 소설 작법은 예전에 봤어요. 그 정도만 알았습니다. 몇해 전에야 책을 많이 읽고 책을 많이 쓴다는 걸 알았습니다. 읽는 만큼 그렇게 쓰는 걸까요.

 

 무언가를 쓰려면 그 바탕이 되는 게 있어야겠지요. 저는 아무래도 바탕이 되는 게 적은가 봐요. 그러니 별로 못 쓰겠지요. 책도 참 천천히 봅니다. 이 책을 보고 하나 알았습니다. 그건 저도 책 볼 때 왼쪽뿐 아니라 오른쪽 뇌도 쓴다는 걸. 하지만 그렇게 힘 쓰는 건 아닐지도. 왼쪽 뇌 책 읽기는 내용과 논리를 따라가는 거고, 오른쪽 뇌 책 읽기는 정보를 그림으로 바꾸는 거랍니다. 이런 책 읽기는 누구나 하겠군요. 책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리는 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책 읽은 느낌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건 그래서겠지요. 사람은 늘 왼쪽 뇌뿐 아니라 오른쪽 뇌도 쓸 거예요. 그저 왼쪽과 오른쪽 뇌를 똑같이 쓰지 못하고 한쪽을 더 씁니다. 지금은 일부러라도 오른쪽 뇌를 발달시켜야 한다잖아요. 오른쪽 뇌는 창의력이나 예술과 상관있습니다. 왼쪽 오른쪽 뇌 모두 쓰게 하는 데 책 읽기만큼 좋은 것도 없군요. 책 읽기 말고도 악기 연주나 음악 듣기도 괜찮겠지요. 그림 보기 그림 그리기도, 왼손 오른손 다 쓰기도.

 

 한해 동안 제가 읽는 책은 얼마 안 됩니다. 장석주는 가진 책이 3만권쯤 되고 한해에 천권 정도 산답니다. 책 쓰고 그 돈으로 거의 책을 사는가 봅니다. 그 책 다 보다니. 어쩌면 천천히 다 보는 건 얼마 안 되고 자신이 봐야 하는 부분만 보는 책이 더 많을지도. 그렇게 해서 책을 쓰는 거겠지요. 그래도 대단합니다. 언젠가 그 말 봤어요. 장석주 자신이 가진 책으로 제주도에 ‘여행자의 도서관’ 짓겠다고 한 말. 이 책이 나온 건 2015년인데 그 일은 지금 어느 정도나 나아갔을지. 장석주는 책이 3만권 있는 것도 모자란다고 하더군요. 8만권에서 10만권 정도는 있어야 자료를 바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글 쓸 때 자료 찾는다고 하잖아요. 전 여전히 그거 못합니다. 그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저는 책을 읽고 머릿속에 있는 걸로 씁니다. 그러려면 책을 더 많이 보고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할 텐데, 제 것이 되지 않고 잊어버리는 게 더 많은 듯합니다. 책을 읽고 잊는다 해도 조금은 남고 쌓이겠지요.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갖고 책도 여러 분야를 봐야 하는데 제가 자주 보는 건 소설(가끔 시)이에요. 소설 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어떤 책을 보는가보다 어떻게 책을 보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지. 그렇게 하려면 과학 철학 역사와 같은 인문학 책도 보면 좋겠지요. 저는 그런 책 별로 못 봤습니다. 장석주가 노자 장자를 봤다고 해서 조금 반가웠어요. 얼마전에 《장자인문학》(안희진)이라는 책을 봐서. 겨우 한권 봤으면서 그랬습니다. 책을 읽으면 사람이 달라지기도 한다는데, 그 말 보고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봐도 저는 여전히 마음 좁고 자유롭지 못해요. 이건 제 잘못이겠습니다. 책을 읽기만 하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런 게 아주 없지 않지만 아직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싫은 건 싫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 조금 살기 힘들겠지요. 고집부리지 않고 넓은 마음을 가지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되면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남한테 피해주는 건 아니잖아요. 이리저리 휩쓸리기보다 자기 생각을 가지는 게 더 좋겠습니다.

 

 시를 보라고도 했습니다. 시집 한달에 한권은 봐야지 한 적도 있는데 요새는 어쩌다 한번 만납니다. 그래도 예전에 시를 조금이라도 봐서 지금도 시를 괜찮게 여기는군요. 앞으로도 시 가끔 만나야겠습니다. 제가 쓰는 건 좀 유치하고 시 같지 않을 때도 있지만, 시나 이야기 쓰려 해도 책 봐야죠. 다른 책에서 영감을 얻는 사람도 있는데 전 그런 일도 거의 없어요. 책을 잘 보면 그런 일도 있을지. 무엇보다 책 읽기를 재미있게 여겨야 합니다. 이건 무엇이든 그렇군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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