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
김보현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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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좀비로 가득찬다면, 하는 이야기가 처음은 아닐 거다. 지금 생각하니 다른 좀비 이야기는 본 적 없다. 영화나 그런 영화가 있다는 말만 보고, 산 사람은 좀비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좀비라는 거 정말 있을 수 있을까. 좀비가 나온 건 아니지만 세상에 이상한 바이러스가 퍼지고 많은 사람이 죽고 산 사람은 어딘가로 떠나는 이야기는 봤다.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에서는 시간이 흐른 뒤 바이러스가 사라졌구나. 그걸 잊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는 어땠을까. 좀비를 모두 없애고 감염되지 않은 사람만 살아남았을까. 그렇게 살아남으려면 무척 힘들겠다. 잘 피할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본래 사람이었던 좀비를 없애야 했을지도 모를 테니. 누군가를 죽이고 살아남아도 기분 안 좋을 것 같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면 난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숨어 있고 싶다.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하겠다. 시간이 가면 물이나 먹을거리를 찾아야 할 테니.

 

 책을 보고 잠깐이라도 나한테 책속에 일어난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건 기분 별로다.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이 죽는 것도 무섭고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것도 무섭다. 더 무서운 건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거구나. 바이러스니 백신이 있으면 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보았다. 미국에서 나타난 좀비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세계에 퍼지고 한국도 빠지지 않았다. 정말인지 알 수 없으나 백신을 개발한다면서 좀비가 된 사람을 죽이지 마라 한다. 좀비가 된 사람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을 공격하고 먹기도 했다. 좀비가 되면 살아있는 것을 먹는단다. 생각은 거의 없고 빛을 좋아했다(다른 데 나온 좀비도 그랬나). 좀비끼리는 공격하지 않는 게 신기하다. 그런 일까지 일어나면 지옥이 따로 없겠다. 어쩐지 다른 좀비 이야기에서도 좀비끼리는 서로 공격하지 않을 것 같다.

 

 여기에 좀비가 나오지만 시작은 평범하다. 아니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가. 스무살이지만 고등학교 3학년인 차원나는 혼자다. 혼자지만 마을 어른이 원나를 자꾸 불러서 여러 가지 일을 시킨다. 원나 아빠는 원나가 어렸을 때 집에 불이 나고 원나를 구하고 죽고, 원나 엄마는 차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원나는 아빠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학교에 다니지 않기도 했다. 그 뒤 이장 철종한테 펜싱을 배우고는 조금 달라졌다. 원나가 펜싱을 하기로 한 건 펜싱할 때 몸을 다 가릴 수 있어서였다. 불이 났을 때 원나는 얼굴과 목을 데었다. 원나는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목에는 손수건을 둘렀다. 이런 이야기가 이어져서 정말 좀비 나오는 거 맞나 하면서 봤는데. 신종 바이러스가 나왔다는 뉴스가 나오고 원나가 사는 마을 사람도 다 감염된다. 서울에서 온 여자아이 때문에. 바이러스는 한순간에 퍼지는구나.

 

 마을에는 원나와 이장 부부 철종과 마리아만 빼고 다 나이 든 사람만 살았다. 다행하게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원나와 마리아 둘만 남았다. 원나는 식물인간이 된 엄마가 걱정스러워서 요양원에 가서 엄마를 찾아본다. 누워만 있던 원나 엄마는 좀비가 되어 움직였다. 원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 기뻐했다. 식물인간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정말 움직일까. 원나는 엄마를 마을로 데려왔다. 얼마 뒤 사고가 일어나고 마리아를 좀비가 되게 하고 원나 혼자 남는다. 원나는 혼자 엄마와 마을 사람을 돌보고 농사를 지었다. 원나가 혼자였지만 좀비가 된 엄마와 마을 사람이 있어서 힘을 내지 않았을까 싶다. 원나는 마을 사람뿐 아니라 마을과 떨어진 곳에서는 좀비가 된 사람을 한 곳에 모아두었다. 언젠가 백신이 오리라고 원나는 믿었다. 원나가 여러 가지 물건을 구하러 백화점에 갔을 때 그곳에서 곧 연예인이 되려고 했던 영군을 만난다. 영군은 원나가 펜싱칼로 좀비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멋있다 느꼈다. 원나한테 누나 누나 했다. 실제로는 원나가 영군보다 어렸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더 있었을 테지만, 그런 사람 이야기는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이 어지러운 틈을 타 멋대로 사는 사람과 좀비한테 아이와 식구를 잃고 세상을 정화한다면서 좀비를 죽이는 사람이 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난 원나가 마을 사람을 그저 아픈 사람으로 여기고 빛을 보게 하는 게 좋게 보였다. 원나 같은 사람이 다른 곳에도 있었기를 바라지만, 좀비가 되고 죽임 당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세해가 지나고 백신이 왔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깨어났다. 기적 같다. 그동안 좀비가 된 사람은 먹지도 않고 잠도 안 잤는데 본래대로 돌아가다니. 몸은 죽은 사람 같아도 바이러스가 움직이게 했을까. 원나는 다시 돌아온 일상을 기쁘게 여기고 그게 아주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야 그전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게 된다. 그런 일 겪지 않고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이야기하고 웃는 걸 소중하게 여기면 좋을 텐데. 힘들고 어려운 일을 모르는 것보다 그런 일을 겪고 단단해지는 게 나을지도. 원나는 흉터 때문에 가렸던 얼굴과 목을 드러내고 펜싱도 더 즐겁게 열심히 하려 한다. 일어나기 힘든 일일 것 같지만 좋게 끝나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다니. 새로운 바이러스가 생기면 어딘가에서 백신을 만드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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