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을 붙잡고 천천히 읽은 책이다.
여러 재판들, 법원의 모습들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서민의 삶과 맞닿은 재판들을 볼 때 몰입이 훨 잘 됐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느려진 듯하다. 그렇지만 한 권을 다 떼니 기분이 좋다. 뭐라도 머릿속에 남겨두고자 접어둔 페이지를 정리해본다.
- 엄벌주의에 비해 범죄율을 낮추는 데 보다 효과적인 것은 오히려 ‘필벌주의’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양날의 검이다.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할 뿐더러 완벽한 통제로 인한 시민의 고통이 훨씬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데스노트와 같은 만화적 상상력은 필벌주의, 엄벌주의로 손쉽게 범죄 없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러는 상상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만화의 결말도 그렇듯 인간사는 그리 단순 명쾌하지는 못한 것 같다.
- 물질적인 부가 인간의 가치까지 결정해버리는 사회 분위기속에서 사람들은 부의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기만을 희망합니다.
아파트 평수 늘리기, 서울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한 걸음씩 이사가기, 자동차 배기량 늘리기가 한 인간의 자아성장인 시대.
그나마 다들 조금씩이라도 사다리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고속 성장기에는 마약처럼 그 가속도에 취해 버티지만, 그 속도가더뎌진 후에는 자신의 인생 자체가 실패인 것 같은 좌절감과 분노만이 남게 됩니다.
=> 아이러니하다. 공감이 정말 되면서도 글쓴이가 권력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는 판사라는 점에 참 묘한 기분을 갖게 했다. 그렇다고 권력이 없는 자, 가난한 자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면(이렇게 수려하고 다듬어진 표현이 아닐 확률이 더 크지만) 이만큼의 힘을 갖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맞는 거고 공감 가는데 뭔가 씁쓸하다. 근데 사실 그 아이러니함에 나도 포함되어 있기도 한 게 또 이상하다.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 다음 부분은 좀 길어서 아래 밑줄긋기로 넣어본다. 끝!
하지만 사회에서의 문제들은 모르겠으면 아직 결론을 내릴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매사에 꼭 선명한 결론을 내리려고 무리하는 것은 오만인 동시에 무지입니다. 근거 없는 확신을유포하는 것은 무지를 넘어선 범죄일 수도 있는 것이고요. - P150
소영웅주의와 귀차니즘이 판치는 사회는 어떤 면에서 독재국가보다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후자에 존재하던 자생적인 비판적 지성이라는 희망이 전자에서는 고사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막강한 거대담론에도 아랑곳없이 모든 것을 의심하는것이 과학자의 할 일이라면서, 과학 자체의 방법만으로 검토하고논의했던 무명의 과학자들이야말로 우리를 질식하지 않게 해주는 지성의 징표라고 생각합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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