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에 관한 주제를 놓고 더 잘 대화하고 싶어서 선택했다. 가볍게 읽으면서 여러 배움을 얻어갈 수 있는 책이다.
0. 당신에게는 대답할 의무가 없다.
젠더 이슈와 관해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내 기준 전부 남자였다)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꽤 자주 있었다. 분명 차별은 존재하고 이를 정상화하자는 것이 기본권 차원에서 당연한 건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시킬까’ 고민하다가 서로 생각의 차이만을 어영부영 인정하는 듯한 말들로 마무리한 적이 있다.
이런 점에서 첫 번째 장이 참 위로가 됐다. 감성적인 글은 절대 아니었지만 이 주제에 대해 내가 답하는 것은 결국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일종의 감정노동이기에, 모든 질문에 내가 응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해하려는 사람’보다 ‘이해시켜달라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짚은 점도 좋았다. 이해시키려는 사람보다 이해하려는 사람의 노력이 더 있어야 한다는 말들을 통해 어딘가 갖고 있던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사실 나도 이 주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 읽어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해해보고자 한다.
사회에 차별이 존재하므로, 우리는 크고 작은 부당함을 겪었을 겁니다. 물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여성으로 살아가는걸 만족스러워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제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좋아하니까요. 그러나 그와 별개로 차별은 분명 존재합니다. 제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고, 다른 여성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고, 모두가 거의 예외 없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었으니까요. 그러나 피부로 겪은 경험이 무시당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순간은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일이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남성에 의해서 주로 생겨납니다. 그때 남성은 ‘내가 보기엔 아닌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동시에 가장 의미가 없습니다.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아래라 생겨나는 불평등이라는 주제에서, 남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채로는 영영 당사자가 될 수 없으니까요. 본인이 직접 느낄 수 없으니, 일부러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은 한 혼자서는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은 볼 수밖에 없는 문제를 자신은 볼 수 없다고 자기 입으로 밝혔음에도, 공신력을 얻는 쪽은 상대입니다. 내 경험의 정당성마저 남성이 결정하는 겁니다. - P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