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무엇이 우리를 병들게 만드는가?
- 현대인들은 자유(특별히 자율로서의 자유)를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가치이자 권리로 생각한다. 모두 삶을 살아감에 있어 ‘나만의 것‘을 보존하고 자신에 대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것들에 자율성을 쉽게 내준다. 나의 건강상태에 대한 판단을 의사와 약사에 전적으로 맡기고, 사회에 대한 나의 주관을 (내가 어디선가 접했던) 통계적 결과에 기대어 형성하고,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분야에 대한 이미지를 미디어에서 접한 편집된 사실들로 형성한다. 이 말은 의학적 검진, 통계적 결과, 언론 정보들에 반대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그것들에 아무 생각 없이 의존한 끝에 만들어지는 무의식적인 상태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율성의 상실을 건강과 관련하여 썼지만 오늘날 자율성의 상실, 혹은 주체성의 상실은 비단 신체적 건강 분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눈 뜰 때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수많은 정보를 마주하는 삶에서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것들에 의해 사회와 자신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고 그것을 기초로 행위를 선택하고 결정한다.
여기에 세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대상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보편적인 정보가 아니다. 예를 들어 책 속에서 든 예시처럼 우리는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감퇴한다‘를 마치 당연한 사실로 여긴다. 그러나 이 말은 보편적인 게 아니다. 단지 여러 통제된 연구들의 결과로 드러난 ‘일반적인‘ 사실이다. 일반적이라는 것은 예외가 존재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실제로 여러 연구로부터 기억력 감퇴와 나이는 상관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자신이 의미있다고 지각하는 것들에 따라 기억력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재밌는 예시로는 상반된 건강 관련 기사들을 들 수 있다. 어떤 기사에서 ‘아침에 먹으면 좋은 음식‘이라 소개된 것이 다른 기사에서는 ‘아침에 먹으면 좋지 않은 음식‘이라 소개되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걷기가 최고의 다이어트라 하고 어떤 곳에서는 아무리 걸어도 다이어트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하기도 한다. 들여다보면 이는 각자 ‘아침‘, ‘다이어트‘ 등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달라서 발생하는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접하는 정보들은 생산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의 관점이 배제되기 힘든 것이다.
이와 연결되는 두 번째 문제는 그러한 정보들이 ‘연구결과‘, ‘과학적 통계‘, ‘기사‘, ‘전문가의 말‘ 등 객관성을 담보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틀에 담겨 제공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쉽게 받아들이게 하고 쉽게 퍼트리게 한다. 그렇게 공유되고 수용되는 정보들은 일상 속 우리의 무의식에 침투하여 주체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것을 잘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더 편안하게 생각하며 벗어나지 못할까?
여기에 세 번째 문제가 있다. 인간의 확증 편향 문제다. 확증 편향이란 사람들이 외부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자신의 어떤 관념이 일단 형성되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들만을 더 주목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무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앞선 경로를 통해 들어온 정보가 우리의 무의식을 더욱 강하게 잠식하도록 도와준다. 이는 정치적 태도나 특정 집단에 대한 인식(이미지)에 관해 생각했을 때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수 정당을 보다 선호하는 사람은 보수 정당에 우호적인 언론의 뉴스를 선택적으로 챙겨본다. 진보 성향을 지닌 사람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예시로, 여러 말들이나 기사들을 통해 한의학을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같은 기사들과 댓글들에 더 주목하며 자신의 생각의 정당화 근거를 강화해간다. 한의학으로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나 그에 우호적인 정보는 무시하거나 예외로 간주한다. 이러한 태도에는 자신이 지닌 관점이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실이라 믿는 믿음에 근거해있다. 이 믿음은 또 다시 선택적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강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다양한 관점의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게 한다. 이와 같은 악순환을 통해 우리는 균형잡힌 관점에서 더욱 멀어지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더욱 강해진다. 이처럼 확증편향에 따른 믿음은 외부의 것들이 무의식을 더욱더 잠식하게 함으로써 자신과 사회에 대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주체적인 사고를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마치 자기 자신은 정당한 근거에 의해 주체적이고 매우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착각까지 만들어 낸다. 나는 이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소통의 문제를 불러 일으킨 주요 요인 중 하나이고, 자유를 외치지만 누구보다 사회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양산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요양원에서의 삶을 사는 것과 같다. 나에게 맞춰진 삶이지만 사실은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삶.
글이 너무 길어지니...짧게 쓰자면
+)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필요할 것. 그런 태도로부터 서로에 대한 관용을 기반으로 소통할 수 있을 것.(가능할까?그래야 할 텐데) + 객관성에 대한 환상 내려놓을 것. (우리는 공룡을 실제로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즉, 객관적이라 여겨지는 사실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를 내려놓고 가변성을 캐치할 것(요게 저자의 핵심주장).
*결코 전문가의 판단이나 기사, 통계가 무용하다는 게 아님. 그게 아니라 수없이 다양하고 어떤 때는 상반되기까지 하는 정보들을 객관성, 전문성 등의 이름 아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주체성의 상실과 불통을 일으킨다는 것.
요양원에서 지내 보지 않은 사람이 그곳의 삶을 상상하기란 쉽지않다. 개인의 방으로 이어지는 문이 언제나 열려 있고, 모든 일이 나를 위해 이루어지지만 일정에 내 의사가 반영되지는 않는다. 식사는 물론이고 샤워는 언제 할지, 어디에 갈 수 있고 없는지 결정하는 일이 모두 나의 권한 밖이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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