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스의 땅을 지배해온 법은 그 어느 다른 세속의 법이나 헌법보다 오래되었고 강력하다. 동로마 황제가 이 땅을 통치하고,
이어 터키인이 다스렸으며, 그리고 그리스 정부가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정치체제하에서도 아토스의 종교적 공동체로서의 체제는 티끌만큼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아토스다. - P17

아토스 반도에는 현재 스무 개의 수도원이 존재하고, 약 2천명의 수도사들이 그곳에서 엄격한 수행을 쌓고 있다. - P17

이 사실을 우선 확실하게 머릿속에 넣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는 여자가 단 한 명도 살고 있지 않으며 입산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그런 것ㅡ말이 조금 심하긴하지만 이 있으면 수행하는 데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동물도암컷은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다. 수컷들은 모두 거세된다. 물론 말할 것도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토스의 모든 동물이 수컷뿐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것은 가축처럼 덩치가 큰 동물에게만 국한된다는 얘기다. - P18

전설에 의하면 성모마리아가 키프로스에 사는 라잘로를 찾아가려고 배를 탔다가 태풍을 만나 항로에서 이탈했으나, 그때 하나님의 인도로 이 아토스 해안에 흘러들어왔다고 한다. 그때까지 이곳은 어리석은 이교도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성모마리아가해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모든 우상들은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마리아는 이 아토스를 성스러운 정원으로 정하고, 여자는이 땅에 영원히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아토스는 신의 축복을 받은 성스러운 땅이 된 것이다. 하는 이야기이다. - P19

만약 현재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마리아는 전 세계 페미니스트 단체로부터 격렬하게 규탄받았을 것이다. - P19

하지만 이것이 2천년 전의 얘기이다 보니 누구도 별로 화를 내지는 않는다. - P19

걸레처럼너덜너덜한 라소를 걸치고, 노끈으로 허리춤을 묶고, 헐렁한 주머니 같은 것을 등에 메고 있는 골수파 수도사도 있다. 그것은수도사라기보다는 솔직히 거지에 가까워 보인다. - P24

개에 비하면 고양이는 이 땅에서 훨씬 더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는 듯 쉽사리 내가 성별을 조사하게 가만히 있지 않았다. 원래 고양이의 암수를 구분하는 것은 개의 성별을 구분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 P29

지금은 아직 여름이므로 노숙을 한다고 해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게다가 많지는 않지만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도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짐승이다. 이 아토스 반도에는 늑대가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일 먼저 그에 대한 주의를 들었다.
밤이 되면 늑대가 나타난다고. 그만큼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채잘 보존되어 있다는 얘기겠지만, - P33

"숲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신의 미소입니다. 화재로부터  숲을 지킵시다"라고 쓰인 팻말이 서 있다. 정말 맞는 얘기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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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누가 하는가? - P1000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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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 - P2

공포 - P2

연민 - P2

성찰 - P2

투쟁 - P2

기록 - P2

역사 - P2

환호 - P2

정지 - P2

미래 - P2

자기혁명

올해의 책 - 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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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노폴리스-설명을 하고 넘어가자면,  우라노폴리스는heavenly town 천국과도 같은 마을이라는 의미이다-에는 몇 개의 작은 호텔이 있고,  타베르나 taverna 서민적인 식당 혹은 주가 있고, 해변이 있고, 부두가 있고, 길거리에는 독일 번호판을 단  캠핑카들이 빽빽하게 줄지어 주차해 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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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더 가까워지는 법이다.
내가 머무는 곳이 청산일 것 하루하루의 생활이 청산일 것.
느리게, 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산으로 내가 갈수 없다면 산이 내게 오게 할수 밖에.

오직 속이지 않는다는 두글자만이 일생을 마칠때까지 행하여도 좋으리라-북송의 정치가 범증엄

임상옥. 박송일, 홍경래, 이희저, 우군칙, 김사용, 홍총각
평서 대원수 홍경래, 혁명아. 천하제일왕

산으로 내가 갈 수 없다면 산이 내게 오게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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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라고 새겨진 그 유명한 묘비 앞에서 한동안 묵상을 했다. 묵상을 마쳤을 때 나도 모르게 발길이 가게로 향했다.  - P318

부리나케 우조(그리스의 증류주) 한 병을 사들고 다시 묘소로 돌아와서는 내 앞에 이 섬을 방문했던 이윤기  선생처럼 제단 앞에 술을 부어놓고 큰절을올렸다. 두 차례의 큰절에 이어 반절까지 올리고 나자 주변에 있던 그리스인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 P319

"나는 멀리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에서 온 사람이다. 지금 이 의식은 우리나라에서 먼저 떠난 분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풍습이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다시 물었다.
"멋진 풍습인 것 같다. 그런데 왜 멀리까지 찾아와 그리스 작가의 무덤 앞에 이런 경의를 하는가?"
순간 조건반사처럼 이런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He‘s my hero(그는 내게 영웅입니다)." - P319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나에게도 영웅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친구입니다." - P321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스인들에게 우정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같이 사랑하고, 내가 살아가는곳에 같이 살아가고, 내가 아끼는 것을 같이 아끼는 사람. 그것이 친구이고, 친구에게는 모든 선의를 베풀어야 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인들의명예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정‘이란 말의 의미다. 이 우정은 곧 명예고, 거기에 용맹을 더하면 탁월함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명예를 누구보다 드높인 사람을, 그들은 ‘영웅‘이라 부른다. - P321

탁월함의 기준을 따른 것이다. 물론 이런 탁월함이 남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는정절과 도덕을 지혜롭게 지켜내 여인의 탁월함을 드러냈다. 오랫동안오디세우스가 나라를 비우는 사이 수많은 구혼자들의 청혼을 뿌리치고, 자신의 신분과 남편의 영지를 지킴으로써 여인의 탁월함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 P322

유사 이래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일방적으로 억압하고, 그 문화를말살하며, 가혹한 통지를 일삼는 시기에 문명이 태동한 일은 없다.
다시 말해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이나 환웅의 홍익인간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하나가 되고 공동으로 발전한다는 이념을 갖지않는 한 그 어떤 형태의 패권주의도 문명 그 자체에 재앙일 수밖에없다. 세계 제일의 관광 그리스에서 아무도 발길을 돌리지 않는스파르타는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P326

"대단하지 않은가? 이러한 스파르타 법은 ‘레트라Rhetri‘ 라는 신탁에의해 보호받았다고 하지. 레트라는 입법자인 리쿠르고스가 델피에서 받아온 신탁으로, 법에 신의 권위를 덮어씌움으로써 훗날 아무도 법에 손댈수 없도록 강력한 보호막을 치려고 했던 것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스파르타는 그들의 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했어.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지." - P345

그 전형적인 예가 바로 레오니다스 왕의아내 ‘고르고 Gorgo‘라 할 수 있다. 한 외국 여성이 고르고에게 "세상에서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신네 스파르타 어인들뿐이군요."라고 하자, 고르고는 "남자들을 낳아주는 것이 우리들뿐이니.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라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렇듯 전사의 나라 스파르타에서 여성들이 뜻밖의 지위를 가지게 됨으로써 사회 전체가 강력한 집단성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 P348

한번은 떠들썩하고 이러저러한 의견이 난무하는 아테네의 민회에 비해 침묵이 흐르는 스파르타의 민회를 보고 아테네의 한소피스트가 "왜 다들 아무 말이 없느냐?"고 비웃자,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을 때도 알고 있는 법이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P353

이런 스파르타 전사들도 일단 상대가 등을 보이고 달아나면절대 뒤쫓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맞서지 않고 달아나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적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스파르타 군대를 만나면 꽁지를 빼고 달아나는 게 최선이라는 평판이 나도록 하려는 전략 때문이었다고 한다. - P355

이렇게 볼 때 문명이란 다양성이라는 비옥한 토양에서, 수많은 경쟁자들이 자유롭게 겨루는 창조적 긴장이라는 씨앗이 발아하여 이룬 결실인 것이다. 이에 비해 획일성은 창조적 긴장이라는 씨앗을 말라죽이고 마는 척박한 토양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문명의 발전이란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 P359

코린토스는 다양성은 있었지만 그 내용이 문란하여 창조적 긴장이발아하지 못했고, 스파르타는 진중했으나 획일성이라는 척박한 토양을 취했기에 문명의 씨앗이 잉태될 수 없었다. 더구나 스파르타인들은자신들이 정복하거나 이웃한 이들과 어울려 문화의 이종교배를 이루기보다는, 이들을 억압하고 순혈주의를 강조함으로써 문화의 동종교배에만 만족하여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무도 기억하지않는 스파르타의 오늘은 과거 잔혹한 군국주의가 배태한 초라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돌아보면 유사 이래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일방적으로억압하고, 그 문화를 말살하며, 가혹한 통지를 일삼는 시기에 문명이태동한 일은 없었다. 다시 말해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이나 환웅의홍익인간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하나가 되고 공동으로 발전한다는이념을 갖지 않는 한 그 어떤 형태의 패권주의도 문명 그 자체에 재앙일 수밖에 없다. 세계 제일의 관광국 그리스에서 아무도 발길을 돌리지않는 스파르타는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P360

페르시아의 침공은 반대로 그리스 혹은 서양인들의 가슴에 원한을 남겼다. 이 뿌리 깊은 원한은 먼 훗날 십자군 전쟁에서 다시 활활 타오르면서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게 했던 것이다. 그결과동양의 서양에 대한 증오는 다시 누적되어 오늘날의종교 전쟁과 9·11테러로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원한의 뿌리가 된다. 그러니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십자군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쪽 사람들이 되새긴 트라우마는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을 터. 바로 그 한마디에 수천 년 묵은 상처가 곪아터지는 파열의 순간을 맞고 말았다. 그만큼 리더의 역사 인식은중요하고, 인간은 정신적 유전자 속에 상처를 기록하며, 이를 결코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P364

어쩌면 역사란 일부만 남은 퍼즐을 맞추며 상상으로 정교히 채워가는작업이 아닐까. 대지의 이야기는 모든 것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 P367

이 두 가지 극단을초래한 것은 역시 탁월함과 엄격함, 문명과 야만을 동시에 품은 스파르타의 법이 분명할 터.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누구냐? 대체 이 법을 만든 이는?‘ 하지만 이 질문은 허무하기 짝이없는 우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리쿠르고스가 제정했다고 하니 너무 빤한 답이 아닌가. 하지만 다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도대체 이 법이만들어지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 P373

그리고 그 넓은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강력한 법치는 물론군현제에 기반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유명한 ‘분서갱유 서로 대립하고 다투기만 하는 학자는들의 소모적 논쟁에 내려진 철퇴라는 해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이룬 통일도 겨우 20년 정도 유지되지 않았던가.
강력한 법치와 피도 눈물도 없는 가혹한 중앙집권제를 시행한 제국의운명이 왜 그리 짧았던가? 스산해 보이기까지 하는 스파르타의 유적지와 진나라의 허무한 운명이 하나로 겹쳐져 머릿속이 복잡했다. - P375

"원래 기요틴 guillotine 을 앞세운 개혁은 쉬운 법이지. 칼을 휘두르며 목을 치면 되니까. 공포정치는 효율적이야. 아무렴 효율적이고 말고. 다만 그 생명이 길지 못할 뿐이지." - P375

다시 말해 사회 속의 개인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이익이 되는 쪽으로 교환하다보면 언젠가는 교환으로 인한 이익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균형 상태에 이른다. 이른바 ‘내쉬균형 Nashe equalibrium‘이 그것이다. - P378

이렇게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어떤 제도의 수립이나 변화와 발전은 그들의 합리적 선택에 따른다는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 marional choice institutionalisen‘ 를 활용하면 인간 사회, 바로 고대 스파르타의 법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토록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수 있을 것이다. - P379

"물론 어떤 제도도 제도 자체로서 완벽하지는 않겠지. 다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야. ‘비록 제도가 불완전하긴 하지만 굳이 이 제도를 바꿈으로써 얻을 이익보다 바꾸는 과정에서 생길 혼란이나 불이익이 클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들은 계속 그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려고 할 테지. 어쨌든 한 제도가 그 사회에서 오랜 생명을 유지한 데는그 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무엇인가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테니 말일세." - P379

가장 첫 번째 요인은 바로 당시의 사회적 여건으로 볼 때 그 제도를도입함으로써 구성원들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합의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음 두 번째 요인은 그 제도가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 조정자(리쿠르고스)가 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 P379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그 제도를 바꿈으로써 빚어질 혼란보다 그대로유지하는 것이 스파르타인들에게 유리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 P380

이렇게 공동체 구성원들의 요구가 간절할 즈음 때맞춰 나타난 그는사회의 변화 요구를 읽었던 듯싶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서는일사분란한 정치체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왕정은 유지하되,
시민들의 요구를 민주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원로원을 통해서 왕권을견제하고, 이들은 다시 시민이 직접 선출한 에포르에게 감시를 받도록해서, 왕족-귀족-시민 간에 서로 권력을 나누도록 하는 제도를 제안한 것이다.  - P380

훌륭하지 않은가! 이런 ‘스파르타인들만을 위한 법‘은 후대에 플라톤을 비롯한 철학자들,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비롯한 독재자들,
레닌을 비롯한 붉은 혁명가들에게 대단한 영감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오늘날도 ‘스파르타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전승되고 있다. - P380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배자인 스파르타인의 입장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피지배자인페리오이코이나, 헤일로타이들에게는 영원한 속박과 압제를 가져다주는 사악한 법률이었기 때문이다. 기록으로 볼 때 그들이 피지배자를다룬 방식이 후대에 등장한 나치보다 가혹했고 일제보다 사악했던 것은 앞서 충분히 설명한 대로이다. 제도의 효율성만 보고 그 안에 있는
‘인간‘을 외면하는 ‘서양식 제도주의‘의 함정은 이미 그때부터 씨앗이뿌려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스파르타식 제도에 비하면 우리나라 상고사의 개국이념은 획기적이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 P381

 ‘홍익인간‘이라는 개념은 고대 역사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획기적인 선언이다. 어쩌면 현대에도 찾아보기드문 파격적인 선언일지도 모른다. 지배자가 피지배자의 등골을 빼먹거나 착취하려 들지 않고 앞선 지식과 문명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한다‘는 뜻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울 수 있는 민족, 그것도 이미 4,500년 전의 극동에서. 이렇게 생각하면 늘 작게만 느껴지던 우리 민족도 대단한 민족임이 분명하다. 여행지에서는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더니, 서양 문명의 뿌리를 찾아온 이 여행에서 우리 민족의 참모습을 이렇게 또렷하게 떠올릴 줄이야. 이는 여행이 주는 뜻밖의 선물이다. - P382

"그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이 아니라 영광이었겠지. 실제로 크세르크세스는 레오니다스에게 페르시아 군에 가담하면 전 그리스의 지배권(샤리프)을 주겠노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레오니다스는 ‘살아서 그리스인을 다스리는 것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죽겠다‘며 일언지하에거절했거든. 고대의 그리스인들에게 전쟁이란 생존이나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였던 셈이지." - P395

하는 아들들에게 ‘네가 방패를 들고 돌아오지 못하겠거든 차라리 그 위에 누워서 돌아오라‘고 했던 인삿말은 바로 죽음으로써 공동체를 지켜야 하는 전사들의 임무를 확인시키는 말이었으리라. - P399

하지만 어떤 생명체이든 공포는 본원적 감정이고, 그것은 본질적으로극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공포는 이성의 영역을 넘어 깊은 심연에 자리잡은 것으로 교육이나 학습에 의해 쉽게 제거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다. 아무리 수심이 깊어도 바닥은 있듯 아무리 용감한 자도 공포가 깊이 감추어져 있을 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영원히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없으며, 만약 공포를 넘어서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분노, 흥분, 도취, 탐욕, 애정 등에 의해 순간적으로 극복되는것일 뿐이라고 한다. 즉 영원히 극복되는 공포는 없다는 뜻이다. - P400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을 보면, 주인공은 죽어가는 순간에 이렇게 외친다.
"fear(두려워!"
"fear(두렵다고!"
극중 말론 브란도가 이룩한 세계, 더없이 잔인하고 용감하며 절대적인 신적 공간을 구축한 그의 행동의 이면에는 더 깊은 공포가 자리잡고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모든 전쟁의 본질이다. - P400

"전쟁은 거대한 에로스의 순간이라네. 하지만 이 국면에서는 두 명의 개인이 서로 몸을 섞어 어린아이를 낳는 그런 게 아니지. 두 거대한군대가 서로 만나는 거야. 피와 함성 속에서 한 군대가 다른 군대를 집어 삼킨다네. 여기서 말하는 한 군대는 반드시 새 정자를 가진 남자일테지. 물론 다른 군대는 위축되어 울면서 승자의 씨앗을 받아들여 자신의 피로 그것을 양육하는 여자일 테고."-55 - P401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동성애인이었던 친구의 죽음에서 완벽하게 분출한다. 스파르타인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서 군영 내의 동성애를 적극 권장했다. 그럼으로써 옆줄에 선 애인의 생명은 나의 생명보다 더 지켜야 하는 저 너머의 애정으로 전환된다. 이런 식으로 스파르타, 즉 라케다이몬인들은 공포를 이기는 막강전사를 길러냈다. - P402

"아름다움은 우리가 공포를 억제하기 위해 혹은 세상을 잊기 위해 복용하는 아편과도 같다네. 우리 주위의 각박한 인생을 보지 않으려고 혹은 현대인의 의무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인공적인 천국을 만들어내려고 애쓰고 있는 걸 테지.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아름다움의 정체가 아니겠나. 스파르타는 현실을 왜곡하는 모든 인공적인 것들을 거부했던 거지. 그들은 공포를 회피하기보다 그 공포와 직접 대면하고 공포의 본질과 맞서면서, 공포와 함께했다고 생각했던 거야.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인간의 머리보다 높은 단계에서 신념이 지배하기 때문에 이성이 그것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네." -57 - P403

오늘날 최고의 의무는 용기라고 믿네. 철저하게 무장하고 준비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가오는 고난을 위해 옥체야말로 위대한 무기로서단련시켜야 하기 때문이지. 오늘날은 새로운 스파르타의 시대로 들어선 것 같지 않은가. 용기, 검약, 결제, 인생에 의연하게 대처하기 이런것들이 우리 시대의 최대 덕목이 되었으니 말일세, 오늘날 비겁한 사절제하지 못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등은 설자리가 없다네 스튜르타에 멋진 조각상이나 매혹적인 돌 장식을 찾아보려고 오는 자 또한실패한 인생일 돼지, 고개를 들어 타이게토스 산을 한번 바라보시게..
저 산은 현대의 시나이 산이 되었어. 저 산의 가슴에는 오늘날의 잔인한 십계명이 새겨져 있지. 선제공격을 하라. 당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듯이 적의 생물도 아끼지 마라. 당신은 즐거워하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태어났다. 너의 신은 전쟁의 신뿐이니라"-59 - P415

전문가들은 고대 그리스군대에서 전력의 핵심은 1.8미터에서 2.7미터에 이르는 재블린 javelin즉 긴 창과 지름 90센티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방패 아스피스로 무장한 중무장보병 즉, 호플리테스haplies라고 꼽는다. 이들이 보편적으로쓴 전술은 팔랑크스ptualianx로, 여덟 겹의 횡렬대형을 이루어 밀집방진으로 적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 그리스인들의 팔랑크스는 대단히 위협적이어서, 이들이 왼팔로 단단한 나무에 청동을 입혀만든 아스피스를 들고 오른손에 길고 위협적인 재블린을 든 채 발을맞춰 전진하면 상대는 마치 거대한 청동 고슴도치가 돌진해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 P398

실제 이 섬에는 등대 아래 그들이 타고 떠난 배를 묶었다던 녹슨 쇠막대가 남아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2,700년 전에 닻줄을 묶었던철봉이 남아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겠지만 전설을 검증할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다.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대사처럼 오늘 우리가 만나는 신화는 어쩌면 역사의 한 조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았을까? 헤로도토스가 《역사》에서 페르시아인들의 입을 빌려 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P424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안경으로 그리스를 보다 - P429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고 고백할정도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삶에서 여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여 일일이 손에 꼽기 힘들 만큼 다양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대한 여행자‘라 부르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듯하다.  - P430

실제로 그는아테네대학 졸업 후 6년을 제외하고는 집을 떠나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살았다. 20세기 초반 무렵,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모레아를 비롯한자신의 조국 그리스는 물론 남유럽 서유럽, 북유럽, 아프리카, 심지어중국과 일본까지 거의 전 세계를 망라한다. 호메로스와 붓다, 니체와베르그송 그리고 조르바가 그의 영혼에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이라면그의 여행은 특유의 깊이 있는 통찰과 사색을 길어 올리는 샘이었음에틀림없다. 더불어 그가 남긴 모든 작품은 이 장대한 여행을 통해 잉태되고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430

따라서 크레타에 있는 그의 기념관에 비치된 브로슈어 표지에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표현을 제치고
‘위대한 여행자‘ 즉 "The great traveler, Nikos Kazantzakis."라고표현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그와 동행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스 땅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나는 더할 수 없이 귀한 안내자를 얻은 셈이다. - P430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임종 직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메모에서 - P433

2011년 겨울부터 첫 발을 뗀 이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스 전체를 횡단하며 발길 닿는 곳에서 시간의 강을 종단하는 이여행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시작해서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 그리고 고대 그리스 권역을 아우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리고 각각의 여행은 제1부 펠로폰네소스 편 세권, 제2부 아티카 편 네 권, 제3부 테살로니키 편 한 권, 제4부 마그나 그라이키아 편 두 권 등 모두 열 권의 책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제2권의 초고 집필을 마친 상태이다. 짐작건대 2013년 한 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행과 집필의 시간들로채워질 듯하다. 모쪼록 이 여행이 필자인 나는 물론이거니와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의미 있기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란다. - P432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임종 직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메모에서 -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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