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나는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청년이 가진, 경이롭다 싶을 정도의 통찰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듣자하니 그 시체는 우연히 거기서 파낸 게 아니라 긴다이치 씨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설령 거기 시체가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몰랐더라도 세 손가락의 남자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사부로는 물론 기소되었다. 하지만 아직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중일 전쟁이 차츰 격렬해지자 법정에서 소집에 응했는데, 한커우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가련한 스즈코도 그 이듬해 죽었다. 그 소녀는 죽는 편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료스케는 작년 히로시마로 여행을 갔다가 원자폭탄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임종한 땅에서 그 아들이 같은 전쟁 때문에 목숨을 잃다니,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이냐고 마을 노인들은 수군거렸다.
나는 문득 눈을 돌려 스즈코가 고양이를 묻었다는 저택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돌마늘이라고도 불리는 만주사화의 검붉은 꽃이 하나 가득 피어 있었다. 가련한 스즈코의 피를 칠한 것처럼…….
이렇게 대충 인물이 모인 시점에서 쇼와 21년(1946년) 여름 초엽, 갑자기 아무 예고 없이 혼이덴 다이스케가 돌아왔다. 그의 귀환은 물론 혼이덴 가문에 있어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귀기와 전율을 가지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 구즈노하는 자못 슬픈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요, 눈만은 시원스레 뜨고 있었어요. 그런데 뜬 눈에 양쪽 다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았어요. 화룡점정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이지, 인간의 모습에서 눈동자란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 그림을 보고 깨달았어요.
"너희들은 이 그림에 눈동자가 없단 얘길 하는 게로구나. 허나 그것이 바로 그림을 그린 화공의 깊은 뜻이겠지. 이 그림의 구즈노하는 진짜가 아니란다. 여우가 변한 구즈노하지. 이 그림을 그린 화공은 여우 불을 피운다든가 여우 꼬리를 그리지 않고 눈동자를 생략함으로써 이 구즈노하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 게지. 나는 항상 이 그림을 보면 그 부분에 감탄한단다."
‘의견무용, 명대안매(御意見無用, 命大安売り)*’라는 문신을 새겼다고 합니다.
* ‘입 닥쳐라. 목숨이 아까우면’이라는 뜻.
"산하고 아가씨는 훔치는 게 맛이야. 게다가 원래 이 산은 우리 거였는데 혼이덴 가문에 속아서 넘겨준 거라고."
일본 민담에 ‘여우가 시집갈 때 제등행렬을 한다.’고 해서 ‘줄지어 늘어선 도깨비불’을 가리키는 말임과 동시에 ‘여우가 시집가는 행렬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잠시 비를 내린다.’고 하여 ‘여우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미토 고몬(水戸黄門). 본명은 도쿠가와 미쓰쿠니(德川光圀)로, 도쿠가와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 우리나라의 어사 박문수 같은 인물로, 미토 번의 번주였으며 그가 내보이던 인로(印篭)는 마패 같은 역할을 하였다.
가부키 ‘게이세이아주마카가미(傾情吾妻鑑)’에서 시라이 곤파치(白井権八)가 반주이인 조베에(幡随院長兵衛)의 집에서 식객을 했다는 의미에서 더부살이, 식객을 의미한다.
매우 봉건적인 경제 구조에 기반한 명문가는 우리나라 대기업과 같은 존재이다. 가문 자체의 영달을 넘어 지역사회 전체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며 본가와 분가가 긴밀하고 유기적인 관계로 이어져 있다. 중앙 정치의 손길에서 떨어져 있는 마을 사람들은 이 가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결국 중앙과 고립되어 자신이 뿌리 내린 토양의 자양분을 끊임없이 빨아먹는 동시에 주변에 자신의 양분을 내줘야 하는 이 가문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이미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옮긴이 정명원
1974년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였다. 옮긴 책으로 《이누가미 일족》《옥문도》 《팔묘촌》 《악마의 공놀이 노래》 《삼수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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