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한규동이 조사 회사로 출근해보니 사무실은 어지럽기만 했다. 조금도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어지르는 사람은 있지만 치우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만약 저절로 사무실이 정돈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한 팀장, 무엇인가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한다는 데에 어떤 모순은 없는 걸까?"
"팀원이 한 명도 없는데 팀장이라고 하는 것도 좀 이상하죠." "팀원이 없기는. 당신과 내가 한 팀이잖아." "그러면 제가 이 팀에서 팀장이니까 제가 사장님을 지휘하는 입장인가요?"
"그렇다면 그렇지. 하지만, 회사의 경영권은 내가 갖고 있으니까, 이 팀 자체를 내가 지휘하는 입장인 것이고." 규동이 인선에게 뭐라고 한마디 더 따지려고 했으나 그보다 먼저 인선이 말을 이어갔다.
"하여튼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뭐냐면, 그 사람이 참나무 때문에 그날 죽는다는 예언을 오히려 몰랐다면 그냥 그날 하루를 평범하게 보냈을 것이고, 너무 답답하다고 문을 열어놓고 밖을 내다보지도 않았겠죠. 그러면 그렇게 죽지도 않았을 거거든요. 그 예언을 알았기 때문에, 괜히 그 예언에 조심한답시고 이 짓 저 짓 하다가 예언대로 되었다는 거죠."
봉준호 감독 같은 사람이 멀쩡하게 도로를 잘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툭 터지더니 사방으로 불을 뿜으며 산산조각이 나는 영화 장면을 찍으려고 한다면, 딱 이인선 사장의 차를 섭외해서 그 장면을 찍을 성싶었다.
"이 차는 그 장면을 위해 먼 옛날부터 있어왔다는 그런 느낌이 딱 왔어요." 그 장면을 촬영한 뒤에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하는 장면까지 규동은 떠올릴 수 있었다.
"후삼국을 통일한 사람을 태조 왕건이라고 하지, 태조 왕건하고 같이 싸운 졸병들 이름들을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으니까." "야, 너는 태조 왕건이고 우리는 졸병이냐?"
0000번부터 차례대로 맞춰봤는데 다행히 번호가 9999번 같은 게 아니라 1313번이었어. 그래서 금방 열었지.
"오늘 탕수육 많이 먹고 싶었는데, 한 팀장하고 같이 가면 나눠 먹어야 되잖아."
"그러니까, 어느 수를 두는 게 좋은지는 모르지만, 두기 전에 그냥 다 해보고 제일 좋은 걸 둔다는 뜻이야. 그런 걸 브루트 포스 방법, 무작위 대입 방법이라고 하고."
"그게 그런 뜻인가? 나는 그냥 이제 정체를 들켰으니까 우리는 망했다, 뭐 그런 뜻으로 쓴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망했을 때 그런 말 많이들 하잖아요. ‘이제 끝장이다’ ‘다 끝났다’ 그런 말."
"내가 여러 번 설명해줬잖아. 플랫폼이나 차세대 이런 말은 사실 그렇게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런 말은 그냥 리듬감을 주기 위해서 붙여 넣는 말처럼 생각하면 된다니까. 왜 옛날 시에 보면, ‘오호라’라든가 ‘어즈버’ 이런 말이 감탄사로 중간에 나오잖아. 그런 거라니까. 차세대 플랫폼 기업이라면, 오호라 어즈버 기업, 뭐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