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잘못을 발작 탓으로 돌릴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고치기위해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이후 쾌락과 덕 사이에 갈등이벌어질 때 후자를 선택하는 것을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라 부르게 됐다. - P123
아기 때 그를 죽이기 위해 헤라가 요람에 독사를 넣었으나 헤라클레스는 독사를 목 졸라 죽였다. - P123
헤라클레스의 최후는 매우 비감하다. 그는 속임수에 넘어가 입으면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는 히드라의 독이 묻은 옷을 입는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제우스 제단에 나무를 쌓고 불을 지펴 그 위에올라가 스스로 화장火葬을 했다. 화장은 농경 사회에서는 금물이다. - P123
이미 강력한 여전사 50 명은 헤라클레스의 사랑 파워에 질려 땅바닥에 드러누운 채 더 이상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헤라클레스의 피를 물려받은 딸 수십 명이 태어난 이 나라는 그어느 때보다도 강력해졌다. 힘과 지성, 거기에 사랑이 더해지면 험한 세상에서도 조금은 더 행복한 결과를 얻는다. - P125
조지프 스완 냉혹한 사업가 에디슨에 가려진백열전구의 진짜 발명자
밤을 낮처럼 환히 밝혀주는 전구는 인간의 삶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발명품 중 하나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구의 발명자가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이라 믿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 P162
마침 이때 입원 수속 카운터 앞에서 병든 소녀를 데리고 온 어머니가입원비가 없어 울며 애걸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비서에게 입원비를대신 내주게 하고 이를 비밀에 부쳤다. 얼마 후 소녀는 기적처럼 회복됐다. 록펠러는 후일 자서전에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고 썼다. - P168
이후 그는 자선가로 변신했다. 침례교 교회에 기부를 늘리고, 명문 시카고 대학교를 세웠으며, 1913년에는 ‘전 세계 인류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록펠러재단을 설립했다. 남의 돈을 빼앗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며 산 삶보다 베풀면서 산 삶이 더 행복했다고 록펠러는 말한다. 그는 총 5억 달러를 기부한 끝에 명망 있는 사람으로서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강한 이유는 젊어서 못된 짓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마치 가난한 시골 부모가 다른 자식들 놔두고 맏아들에게만 집 팔고 소 팔아 대학 교육을 시켜준 것처럼, 우리의 대기업들 역시 지난 과거에 국가의 특혜를 받아 성공한 측면이 강하다. 그에 대한 합당한 의무를 다해야 마땅할 것이다. - P169
아마르티아 센 시장의 문제보다 부의 배분이나 약자 보호 시스템의 문제
아마르티아 센(1933~ )은 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도 출신의 경제학자다. 그가 불평등과 빈곤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연구하게 된 계기는 그 자신이 어린 시절에 목도한 벵골 대기근의 참상이었다. 1943년 인도의 벵골 지방에 대기근이 들어 200만명이 죽었다. 말이 그렇지,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 P170
"우리 모두 빈곤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면 실제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나는 확실히 믿는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런 희망과믿음이리라. 무함마드 유누스 - P176
"유럽 사람들은 장미를 좋아하지만 장미에는 벚꽃의 단순함이 없다. 게다가 장미는 감미로운 꽃 아래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있어 마치 생명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고 있는 듯하다. 죽음을 꺼리고 두려워하며, 꽃이핀 상태 그대로 지기보다는 가지에 붙은 채 시드는 걸 선호한다." 반면 "일본의 벚꽃은 그 아름다움 속에 단검도 독도 숨기지 않으며 자연 상태 그대로 질뿐 아니라, 빛깔이 전혀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도 은은하여 사람을 질리게 하는 법이 없다." ㅡ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 - P201
꽃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찬탄하든 자유이지만, 니토베 이나조의 벚꽃 사랑에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부분이 있다. 그는 벚꽃에 대해서 "아름다우면서도 덧없이 져버리고, 바람이 부는 대로 흩날리면서도 한줄기 향기를 흩뿌리며 영원히 사라지는 비장미를 강조한다. 이런 죽음의 미학은 조만간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로 변용된다. - P201
이제 바람결에 많은 꽃잎이 떨어져 흩날리는 것이 전쟁에서산화하는 상징이 됐다. "일본 남아로 태어났다면 산병전散兵戰의 벚꽃처럼 지거라" 혹은 천황을 위해 사쿠라가 되어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는 군가를 부르며 젊은이들이 진쟁터에 끌려갔다. 꽃이 무슨 죄가 있으라, 이상한 이데올로기에 꽃을 끌어다 쓴 인간이 잘못이지. - P202
20세기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대개 전쟁을 경험했고, 전쟁의 기억을 안고 있다. 1953년의 휴전 이후 태어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적어도, 직접 전쟁을 겪지는 않았다. 늘 전쟁의 위협 속에 살면서도 실제로는반세기 이상 전쟁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 할 수있다. 평생 전쟁을 겪지 않고 살다 죽는 것은 인류 역사상 흔치 않은축복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였다. 인간은 스스로 지상에 지옥을 연출해왔다.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이 시대에우리는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애달프게도, 젊은이들이전장에서 처참하게 죽고, 남은 가족들이 슬픔에 겨워하는 일들이 조만간 끝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 P212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가 아니라 훨씬 심각한 의미를 지닌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이다. 과자만 먹을 게 아니라 백 년 전 젊은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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