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과 가문의 안녕을 뒤로하고 항일투쟁의 길로 들어선 대다수독립운동가는 후손이 뿔뿔이 흩어지고 집안은 몰락했다. 우리가 누구보다도 추앙하는 안중근 의사의 집안도 예외가 아니었다.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할아버지 형제들과 아버지 6형제들이 가지를 쳐 5대에 이르러서는 자손이 수백 명을 헤아린다. 그중 몇 명은일제에 체포되어 회유공작에 넘어가 친일행적의 오점을 남겼고, 또일부는 이승만, 박정희 정부 때 외교관과 군인의 길을 걷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 후손들은 반일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면서도 광복된 조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다시 북으로, 미국으로, 파나마로 흩어져소식조차 끊겼다. 대표적으로 김구 선생의 손녀이자 안정근의 외손녀인 김효자는 미국으로 떠난 후 행적이 묘연하다.
실제로 안 의사의 외손녀 황은주는 "광복 후 국내에는 우리 집안이 자리 잡을 곳이 없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안중근 집안이 독립유공자를 가장 많이 배출했다고 하나 대다수 후손들의 삶은 고단했다.
안 의사의 사촌 동생 안경근은 4·19혁명 후 ‘민주구국동지회‘를만들어 정치에 나섰다가 5·16군사정권에 의해 7년간 투옥되었다.
안 의사의 조카 안민생은 평화통일 운동에 매진하다 역시 5·16군사정권에 의해 10년 동안 징역살이를 했다. 일제강점기 때 안명근이감옥살이를 한 서대문형무소 내의 같은 감방이다. 그나마 외교안보연구원 본부 대사로 일하던 안 의사의 조카 안진생도 1980년 전두환 정권 때 강제 해직당한 뒤 충격을 받고 쓰려져 8년간 투병하다.
숨졌다.
독립운동가 집안이 광복 뒤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철저히 소외되었다는 평가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가운데 외국에 - P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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