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 방앗간의 편지
알퐁스 도데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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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초등학교에서 코딩을 배운다고 들었다. 라떼는 한글 프로그램 다루는 걸 배웠던 것 같은데. 그 외에도 타자 연습을 참 많이 했었다. 나는 컴퓨터 학원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하시는 어머니를 따라 학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는데, 한때는 순간 타자 속도가 5-600타를 육박할 정도의 속도를 자랑했다. 학교에서도 타자 대회를 할 정도로 타자를 빨리 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은데 나는 타고난 거북이 성정을 벗지 못하는지 굳이 승부를 붙이지 않으면 타자 연습 중에서도 '긴글 연습'을 가장 좋아했다. 긴글 연습에서 가장 짧은 건 '애국가', 가장 재미있는 건 '마지막 잎새'와 '별'이었다. 대화가 많아 소설치고 금방 칠 수 있는 건 '부자와 당나귀'. 나는 '마지막 잎새'와 '별'을 칠 때면 손가락은 기계적으로 글자를 따라 치되 눈으로는 텍스트를 음미했다.

그 때도 '별'은 참 문장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우동 한 그릇'이나 '마지막 잎새' 등의 소설처럼 '별' 또한 아련하게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벌써 성인이 되고도 10년이 지났는데, 이제 와 다시 읽으니 어렴풋한 그리움과 함께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잠이 든 것'이라니... 이처럼 따뜻하고 솔직한, 순수한 찬사라니. 일련의 지난한 로맨스들에 신물이 났지만 잊어버린 감정마저 심폐소생하는 것 같은 문장이다.

어릴 때 '별'이라는 단편만 접했기 때문에 그 '별'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이라거나 그 단편집의 제목이라던가 하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는데, 따뜻하고 진솔한 이야기들로 가득해서 작품 해설을 본문을 읽다 말고 돌아가 읽기도 했다. 직접 겪지 않은 일들을 일기처럼 적어 잠들기 전 잠자리에서 읽자니 누군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라 좋았다. 고전이니만큼 기본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정서들이 은은하게 깔려 있기는 하지만... 고전을 읽을 때는 그런 부분을 포기하고 읽기 때문에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가 보기 힘든 아름답고 맑은 풍경을 묘사한 문장들이 수려하다. 특히 나처럼 어릴 때 '별'을 읽긴 했지만 어렴풋하게 어떤 내용이었지, 정도의 기억만 남아 있다면 한 번쯤 다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프랑스소설 #교과서소설 #풍차방앗간의편지 #알퐁스도데 #별 #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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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방앗간의 편지
알퐁스 도데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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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순수를, 따스함을 불러 일으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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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Last 이제야 흉터가 말했다
리퍼 지음, 가시눈 그림 / 투영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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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관련 트리거 주의

나는 가끔 꿈을 꾼다. 대개는 깨고 나면 휘발되어버리는 유형의 것이지만, 또 어떤 것들은 눈을 뜨고도 연장되는 것처럼 생생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꿈 일기를 쓴다. 대부분 꿈 일기도 일상글처럼 공개 상태로 두지만 예외의 경우도 있다. 작년 중순이었다. 매일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어도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생생하고 긴 꿈을 꾸었다. 알람 소리에 놀라 눈을 뜨고서도 한참 동안 멍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꿈이었다. 지인이 내게 약물을 몰래 먹여 성추행한 다음 학교에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내용이었다. 아주 간결하게 줄여보자면 그랬다. 나는 6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와 모멸감, 상실감, 공허감, 배신감, 수치심 등을 느꼈다. 파도처럼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의 가장 단단하고 뿌리깊은 곳을 흔든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숨게 했다. '그 일' 이후 꿈 속에서 일 주일이 더 흘렀는데 일 주일 동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강의를 들으러 다녔지만 결국 마주친 아는 언니에게 입에도 못 담을 욕을 들었다. 마치 내가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어안이 벙벙한 채 그 욕을 듣다가 잠에서 깬 것이었다.

눈을 뜨고 내가 꿈 속의 내가 아니라는 사실, 현실의 나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알았다. 나는 결코 이 꿈의 감각을 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간 내가 뉴스를 보며 분노하고 눈물짓던 것이 얼마나 얕았는지를. 하루 종일 멍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죄책감과 불편함을 견딜 용기가. 그리고 망설이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마음까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안락함을 꿈꾸기 때문에, 불편한 진실을 향해 눈을 뜨지 않음으로써 한없이 비겁해지곤 한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도저히 그럴 수 없게 만들었다.

'기록기'를 읽으며 제야에게 일어난 일들이 물질화되어 내 살을 베어가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이 어린 아이에게... 나는 나를 베는 흉기를 빼앗아 가해자에게 들이대고 싶었다. 이 죄책감을 가장 무겁게 져야할 건 내가 아닌데. 그러다 '치유기'를 읽으며 회복을 위해 용기를 낸 제야를 안아주고 싶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제야가 과거의 자신처럼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위해 용기를 냈을 때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 우리가 하는 의미있는 행동은 결국 다음에 올 아이들에게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 나는 어릴 때의 내가 그 쯤엔 어른일 거라고 막연하게 상상했던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진짜 어른은 언제쯤 될까, 이제는 딱 잘라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요즘 들어, 어른이란 내가 아닌 후대의 아이들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분명히 어른으로 늙어갈 것이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만화 #AtLast이제야흉터가말했다

#리퍼 #가시눈 #투영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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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Last 이제야 흉터가 말했다
리퍼 지음, 가시눈 그림 / 투영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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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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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상점 - 당신의 상처를 치유해드립니다
변윤하 지음 / &(앤드)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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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22년이 됐다. 올해의 첫번째 책은 청소년 문학인데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 구미가 당겼다.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그림자 상점 주인인 듯한 사람이 바늘과 실을 들고 무언가를 수선할 것 같은 자세를 취한 표지로 알 수 있듯이 그림자 상점은 그림자를 팔기도 하고 수선이 필요한 그림자를 꿰매어 주기도 하는 곳이다. 다친 채 찾아온 그림자들에게 번쩍이는 특수 실로 공들여 촘촘하게 꿰매어 주면 그들은 주인에게 돌아가 전보다 더 단단해진 채 내일을 맞이한다.

내가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 건 대개 성장 키워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벌써 서른이 되었지만 어릴 때 상상한 것과 달리 서른은 그다지 어른스러운 나이가 아닌 것 같다. 그러므로 항상 성장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단점이 있다면 10대인 주인공과 나의 고민이 카테고리만 다를 뿐 크게 변화한 건 없는 것 같아서 씁쓸할 때가 있다는 정도? 역시 어른이라는 명찰은 달고 싶다고 아무나 달 수 있는게 아닌 것이다.



그림자를 주제로 다룬 책이라서인지 삽화 또한 특이했다. 주인공 여리는 남들과 다른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남들은 다 하나만 가진 그림자를 여리는 혼자 셋이나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늘로만 골라 다니고, 누군가 자신이 남과 다른 그림자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아챌까 전전긍긍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여리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여리는 점점 스스로의 안으로 파묻힌다. 자신을 이상하게 보고 피하는 사람들에게 지치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여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곳에서 처음으로 해우를 만난다.

그리고 여리에게 일어난 '어떤 일' 때문에 여리는 다시 모험을 떠나게 된다. 여리는 온 평생을 자신의 그림자를 미워하고 거부하느라 바쳤는데 그로 인해 생긴 변화를 애써 모른 척하고 살아 왔다. 집에서 멀리 떠나온 다음에야 여리는 상처 투성이의 그림자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 그림자, 즉 상처를 오롯이 끌어안고서야 불안에게 목전까지 쫓겨오던 삶을 긍정하게 된다. 우리도 저마다 그림자를 가졌다. 그 그림자에 상처가 많을 수도 있고, 흐릿하다못해 투명한 색을 띨 수도 있다. 내 그림자는 어떤 형태일까 생각해 봤다. 대충 덮어놓고 살아서 잘 모르겠는데, 올해 목표는 내 그림자를 마주하는 것으로 해 보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여운이 남았다. 여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해우는 물론 다른 캐릭터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등이 궁금했다. 분명 잘 지낼 것이라는 믿음을 품어 본다.

본 포스팅은 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판타지 #성장소설 #그림자상점 #변윤하 #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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