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어서 - 레나의 스페인 반년살이
레나 지음 / 에고의바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벌써 7월이다. 시간이 미친듯이 빨리 간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취직 4개월 차라는 사실에 소스라치곤 한다. 올해를 톺아보면서 생각해본 결과 아직 올해의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은 여행을 떠난 누군가의 영상을 보거나 글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데, 이 책도 그런 만족감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 상황이 닿는 한 가장 긴 시간 동안 여행지에 머무르곤 한다. 대부분 한 지역에 러프한 스케줄을 가지고 방문한다. 애초에 계획을 짜는 일에는 젬병인 편이라서 (극강의 P) 숙소만 대충 정해놓고 전날이나 당일에 검색해서 가보고 싶은 곳을 가는 것이 내 혼자 여행의 루틴인데 이런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여행 스타일이 그 지역에 살아보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난 건 제주였다. 제주에서 보름 동안 살았는데 서귀포 쪽으로는 거의 가지 않고 제주 북부 쪽에서 거의 놀았다(?). 그 결과 가장 좋아하는 바다는 함덕이 됐고 제주는 내 마음에 거센 풍랑이 일 때 찾기 좋은 곳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스페인에서 일 주일 정도는 살다 온 느낌이 들었다. 저자인 레나가 스페인에 집을 구해두고 여러 곳을 여행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가 스페인의 집에서 머무르던 시간을 서술할 때에 가장 가슴이 뛰었다. 5층의 계단을 헉헉대며 올라갈지라도 타국에 내 몸 뉘일 휴식처가 있다는 것,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편안한 룸메이트가 있다는 것... 왠지 타국살이에 로망이 생기는 조합이다.

레나의 여행에서 가장 반가웠던 건 단연 폼페이 유적이다. 어릴 때 거대한 도시를 화산이 덮쳐 수많은 생명이 그대로 박제되었다는 것을 듣고 관련 책까지 찾아보았던 열성 어린이였는데 직접 그 흔적을 보고 왔다는 말에 숙연해졌다. 거기다 막연하게 그런가 보다, 했던 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나 동물의 유해가 썩거나 녹고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지금의 폼페이 유적에 남았다는 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국내 여행으로 오롯이 만족하던 내가 조금 작은 시야를 가졌구나, 외국으로 나가보는 것도 의미 있구나,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는 언제 종식될까. 지금은 한결 주눅든 추세지만 또 언제 갑작스레 소란해질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종종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또 새로운 내가 되어 새로운 말을 하고 새로운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 본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에세이 #여행에세이 #한달은짧고일년은길어서 #반년살이 #스페인여행 #스페인 #레나 #에고의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어서 - 레나의 스페인 반년살이
레나 지음 / 에고의바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까지 매력 넘치는 스페인으로 떠나 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랑잎에도 깔깔 - 모든 것이 눈부셨던 그때, 거기, 우리들의 이야기
김송은 지음 / 꽃피는책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올해로 서른이 되었다. 이 말은, 교복을 입지 않은지 10년이 넘었다는 말과 같다. 정말 신기하게도 어른들이 하던 말을 내가 그대로 하고 있다. 화장하거나 치마 줄여 입지 않아도 예쁘다, 뭘 해도 예쁘다, 교복 입을 때가 제일 편하다 등등. 이 세 문장의 공통점은 정작 내가 학생일 때는 전혀 와 닿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록 나는 치마 길이로 전교에서 1,2등을 다투었지만(집이 엄하기도 했지만 굳이 반항하고 싶지 않다는 귀찮음이 더 컸던 듯) 내심 화장하거나 치마와 셔츠를 핏되게 줄여 입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 같고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교복은 지겨우니 사복을 입을 수 있는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손 꼽아 기다렸고, 용돈을 열심히 모아 그 당시 유행하던 옷도 사고(의문점은 나이를 먹고도 이때 쇼핑하던 보세 쇼핑몰을 여전히 이용한다는 것이다) 얼굴이 하얘지는 합법적인 기초 화장품도 사서 바르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귀엽고 해맑을 수가 없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 국어 선생님을 애절하게 짝사랑하기도 했다. 그 덕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결국은 작가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워낙 좋아했어서 늘 국어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조금은 뿌연 게 사실이다. 그나마 종종 연락하는 친구들 몇이 휘발되는 기억의 파편들을 붙들어주곤 한다. 그마저도 떠올릴 때마다 부끄러운 것 한가득이다. 서툴고, 미숙해 미성년이라고 불리던 시절의 기억이라 당연한 걸까.


사실 에세이를 읽을 때면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접는 편이다. 내게 있어 에세이란 쉽게 읽혀서 좋고 또 같은 이유로 금방 잊어버리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랑잎에도 깔깔>은 다소 발랄한 표지와 소개글과 달리 낯선 단어들도 등장했고, 문장이 좋아 음미하며 읽었다. 그럼에도 제목처럼 "깔깔" 웃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은 잊지 않았는데, 이 부분이 그랬다.

"야! 너 이런 사람일 거였어?"

이 문장은 읽자마자 빵 터졌다. 지금의 나 또한 어린 내가 보게 되면 필시 저 문장을 내뱉으며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저 문장을 보고 웃다가 불현 듯 고등학생 때 꾼 꿈이 기억났는데,(중학생 때였을수도... 기억이 흐릿하다.) 꿈 속의 나는 그 당시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다 왠지 고풍스럽고(?) 앤티크한(?) 전신 거울이 뿅 나타났는데, 거기에 내 모습을 비춰 보자 눈 부시게 아름답고 늘씬한 여성이 서 있었다. 아마도 미래의 나. 당시에 얼굴만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여자 배우와 흡사한 외모였는데, 나는 거의 홀린 듯 그 모습을 보다가 잠에서 깼다. 그리고 현실의 거울을 보고는 단단히 분통을 일으켰던...

그러니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발까지 굴러가며 오열할 것이 분명하다. "너 이런 사람일 거였어?!" 하며 욕을 할 지도? 하지만 어리석은 어린 나야, 외모가 다가 아니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진행 중이라 잊어버린 K-하이틴 감성을 되찾아보려고(?) 읽은 책이었지만 오히려 부러운 시절을 보낸 선배들의 학창시절을 훔쳐본 기분이었다. 언젠가 <써니>처럼 그 시절 감성의 여학생들이 떼로 나오는 글을 써보고 싶다, 그야말로 활기로 넘쳐나는 글이지 않을까, 하며 기분 좋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에세이 #에세이추천 #가랑잎에도깔깔 #김송은 #꽃피는책 #레트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랑잎에도 깔깔 - 모든 것이 눈부셨던 그때, 거기, 우리들의 이야기
김송은 지음 / 꽃피는책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새 제 밥벌이를 하며 바삐 지내다 문득 뒤를 돌아보게 해준 책. 반가워, 어린 나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던 테일 안전가옥 FIC-PICK 2
서미애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최애 출판사 중 하나인 안전가옥에서 '픽-픽(FIC-PICK)'이라는 시리즈의 단편집이 나왔다. 이번에는 고전 설화/동화를 각색한 작품들인데, 종종 고전을 읽을 때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점들을 보란 듯이 꼬집었다는 점에서 읽는 맛이 퍽 유쾌했다. 총 다섯 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이름과 전작을 접해본 작가도 있고 이름만 보고는 몰랐는데 전작을 접해본 작가도 있었다. 최근 장르 소설을 많이 찾아 읽었는데(안전가옥의 비중이 팔할) 그래서인지 그 분야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조금 뿌듯.

다섯 작품 모두 신선하고 재밌었지만 가장 좋았던 건 첫 번째와 두 번째 글이다. 서미애 작가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와 민지형 작가의 <신데렐라 프로젝트>. 먼저 <떡 하나>는 기존 오누이 설화(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해서, 호랑이라는 존재를 가정 학대의 가해자로 빗댄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 피해자 위치에 놓인 아이들의 마음가짐이(스포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에둘러 말하는 중) 오히려 내게 채찍질이 됐다. 글이 너무 좋아서 뒤늦게 프로필을 읽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이라는 소설로 등단하신 분이라고. 근데 소설 제목이 낯이 익다해서 보니까 내가 스무살에 올린 학과 연극 대본의 원작이었다. 혹시... 운명?(아님) 게다가 일도 열심히 하셔서 책을 여러 권 내셨다. 이렇게 덕질할 작가가 늘었다.

두 번째 작품인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원형 비틀기의 정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흔히 '온달 콤플렉스'라고 명명했던 남성들의 신데렐라 드림을 주제로 삼았다. 인사팀 팀장인 '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헛웃음이 나면서도 짜증이 나고 허탈하고 화가 났다. 전에 편혜영 작가의 <홀>을 읽고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는데, 익숙하고 설득되면서도 여지없이 짜증이 나고야 마는 감각이었다. 이 정도면 대충 감이 왔을까?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한 피나는 노력... 민지형 작가 역시 최근에 카카오페이지에서 재밌게 보고 있는 웹툰의 원작 작가였다. 제목은 무려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인데, 웹툰은 연재가 진행 중이라 애가 닳아서 책을 읽어야지 하던 중에 이 단편을 읽게 됐다. 민지형 작가의 주특기인 것 같은데, 나와 정반대의 성별이 하는 생각을 너무 자연스럽게 서술해서 불쾌해진다... 하지만 이 또한 그들의 권력이겠지^^




가끔 구전되는 설화나 동화를 비튼 글을 읽고 실망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모던 테일>은 흥미로운 장르 소설로의 전환이 성공적일 뿐 아니라 뚜렷한 시사점을 담고 있어서 울림이 있었다. 특히 <떡 하나>가 책장을 덮고도 계속 기억에 남는다. 한 번도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그렇게 해석해본 적이 없었는데, 머리가 띵하기도 했고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선한 오지랖을 부리고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모던 테일>을 읽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에 더 확신이 들었고, 어릴 때 부모님의 맞벌이 덕에 실컷 들은 할머니의 창작 동화가 떠올랐다. 이제는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동생이 주인공이 되었던 어스름한 이야기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가붓이 쓸어주시던 거친 손과 가물하게 어둑해지던 시야 같은 것들. 너무 오래 잊고 산 것 아닌가? 그러니 잠자리에 들기 전 읽음직한 다정한 이야기들을 나도 한 번 써봐야 하겠고, 더 많이 읽어봐야 하겠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안전가옥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장르소설 #모던테일 #단편집 #픽픽 #안전가옥 #안전가옥단편집 #장르소설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