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테일 안전가옥 FIC-PICK 2
서미애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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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애 출판사 중 하나인 안전가옥에서 '픽-픽(FIC-PICK)'이라는 시리즈의 단편집이 나왔다. 이번에는 고전 설화/동화를 각색한 작품들인데, 종종 고전을 읽을 때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점들을 보란 듯이 꼬집었다는 점에서 읽는 맛이 퍽 유쾌했다. 총 다섯 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이름과 전작을 접해본 작가도 있고 이름만 보고는 몰랐는데 전작을 접해본 작가도 있었다. 최근 장르 소설을 많이 찾아 읽었는데(안전가옥의 비중이 팔할) 그래서인지 그 분야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조금 뿌듯.

다섯 작품 모두 신선하고 재밌었지만 가장 좋았던 건 첫 번째와 두 번째 글이다. 서미애 작가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와 민지형 작가의 <신데렐라 프로젝트>. 먼저 <떡 하나>는 기존 오누이 설화(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해서, 호랑이라는 존재를 가정 학대의 가해자로 빗댄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 피해자 위치에 놓인 아이들의 마음가짐이(스포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에둘러 말하는 중) 오히려 내게 채찍질이 됐다. 글이 너무 좋아서 뒤늦게 프로필을 읽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이라는 소설로 등단하신 분이라고. 근데 소설 제목이 낯이 익다해서 보니까 내가 스무살에 올린 학과 연극 대본의 원작이었다. 혹시... 운명?(아님) 게다가 일도 열심히 하셔서 책을 여러 권 내셨다. 이렇게 덕질할 작가가 늘었다.

두 번째 작품인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원형 비틀기의 정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흔히 '온달 콤플렉스'라고 명명했던 남성들의 신데렐라 드림을 주제로 삼았다. 인사팀 팀장인 '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헛웃음이 나면서도 짜증이 나고 허탈하고 화가 났다. 전에 편혜영 작가의 <홀>을 읽고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는데, 익숙하고 설득되면서도 여지없이 짜증이 나고야 마는 감각이었다. 이 정도면 대충 감이 왔을까?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한 피나는 노력... 민지형 작가 역시 최근에 카카오페이지에서 재밌게 보고 있는 웹툰의 원작 작가였다. 제목은 무려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인데, 웹툰은 연재가 진행 중이라 애가 닳아서 책을 읽어야지 하던 중에 이 단편을 읽게 됐다. 민지형 작가의 주특기인 것 같은데, 나와 정반대의 성별이 하는 생각을 너무 자연스럽게 서술해서 불쾌해진다... 하지만 이 또한 그들의 권력이겠지^^




가끔 구전되는 설화나 동화를 비튼 글을 읽고 실망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모던 테일>은 흥미로운 장르 소설로의 전환이 성공적일 뿐 아니라 뚜렷한 시사점을 담고 있어서 울림이 있었다. 특히 <떡 하나>가 책장을 덮고도 계속 기억에 남는다. 한 번도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그렇게 해석해본 적이 없었는데, 머리가 띵하기도 했고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선한 오지랖을 부리고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모던 테일>을 읽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에 더 확신이 들었고, 어릴 때 부모님의 맞벌이 덕에 실컷 들은 할머니의 창작 동화가 떠올랐다. 이제는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동생이 주인공이 되었던 어스름한 이야기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가붓이 쓸어주시던 거친 손과 가물하게 어둑해지던 시야 같은 것들. 너무 오래 잊고 산 것 아닌가? 그러니 잠자리에 들기 전 읽음직한 다정한 이야기들을 나도 한 번 써봐야 하겠고, 더 많이 읽어봐야 하겠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안전가옥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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