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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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라는 거, 알아요? 일본어 발음으로 기우. 한자로는 귀신의 비란 뜻의 '鬼雨'라고 쓰는데, 무시무시한 양의 비가 내리는 걸 말해요. 이 경우에 '귀(鬼)'는 상식의 정도를 벗어난 것을 가리키는 뜻이죠. 같은 '기우'란 발음 중에는 비를 바란다는 뜻의 '기우(祈雨)', 가뭄 끝에 내리는 반가운 비란 뜻의 '희우(喜雨)'도 있어요. 내가 딱히 아는 게 많은 게 아니라, 어릴 적에 할머니에게 들었던 내용일 뿐이에요. 그게 머리에 남아 있어서 그 여자한테 그런 이름을 붙인 거라고 봐요. p230


표지 속에 등장하는 노란 우비의 여자가 보이는가? 마치 숨어서 이쪽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다. "비도 내리지 않는데 우천용 모자를 쓰고, 레인코트에 장화를 신고, 우산까지 들고 있지 뭐야." p231  맑은 날 노란색 우비와 장화, 우산까지 중무장한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이 보이거든 이것 하나만 명심하자. 절대 눈 마주치지 말 것! 만약 당신이 눈을 보고 말까지 걸었다면 그 뒤에 일은 책임질 수 없다.


호러 미스터리 작가가 들려주는 6편의 호러 이야기 '괴담의 테이프'. 그 시작은 저자와 편집자가 만나서 책의 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진행된다. 여섯 개의 단편은 호러 미스터리 작가 '나'가 주변인에게 들었거나 건너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완전 허구의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막간에 들어가는 이야기 역시 편집자가 '나'의 작업을 돕기 위해 괴담 테이프 녹취록을 작성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바로 메타 픽션풍 괴담집. 읽으면서 당연히 허구이겠지 싶다가도 헷갈리게 되는, 너무나도 그럴싸한 이야기다. 책을 읽을 때는 센척하며 피식 하다가도 어두운 밤 홀로 누웠을때 문득 떠오르며 섬뜩해지는 이야기. 어릴 적 유행처럼 번지며 뉴스에까지 등장했던 괴담 '빨간 마스크'가 떠오른다. 키가 2미터에, 찢어진 입을 가리기 위해 빨간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100미터를 2초에 돌파한다는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고 많은 아이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물론 그 속에 나도 있었다. 바로 그런 '있을 법한 이야기'가 괴담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친구의 친구가 겪었다거나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겪은 일이라며 듣게 되는 기묘한 이야기들 말이다.


여섯 편의 단편집과 막간에 등장하는 체험담을 하나로 아우르는 공통점이 있는데, 천천히 공포를 음미하면서 이를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되겠다. 기이한 일을 겪었음에도 줄곧 책의 출간을 열렬히 돕던 편집자는 종장에 책의 출간을 반대한다는 말을 끝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나'는 호러 미스터리 작가라는 넘치는 자부심으로 책을 출간했다. 그저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오싹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는 무책임한 말과 함께 출간해버렸다. 공교롭게도 비 내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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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손님 (반양장)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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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소매를 걷어 올린 파란 셔츠를 펄럭이며 그해의 여름 손님이 도착했다. 늘 그렇듯 잔잔하게 지나갈 줄 알았던 여름은 두 사람의 삶을 영원히 바꿔 놓는다. 그의 특이한 말버릇, 어딘지 냉정해 보이는 시선, 파란색 셔츠, 에스파듀, 그가 천국이라 부르는 해변, 천국에서 그와 함께하는 평온한 시간. 절절한 엘리오의 감정은 마치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존재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느끼는 첫사랑의 순수함과 열망. 그동안 잊고 살아온 사랑의 낱낱을 엘리오의 열렬한 마음이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그가 우리 집을 빨리 떠나서 모든 게 끝났으면 했다. 차라리 그가 죽었으면 하기도 했다. 계속 그가 생각나고 언제나 볼지 알 수 없는데 적어도 그가 죽으면 모든 게 끝날 테니까. 내 손으로 그를 죽이고 싶기도 했다. 그의 존재가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누구든 무엇이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 태평함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55p

갑자기 나타난 그를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으면 두려우면서도 흥분되었다. 그가 언제 나타날지 두려웠다. 나타나지 않아도 두려웠고 나를 쳐다봐도 두려웠다. 쳐다보지 않으면 더욱 두려워졌다. 결국 고뇌가 나를 완전히 지치게 했고 피부가 데일 정도로 뜨거운 오후면 그냥 거실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꿈을 꾸면서도 누가 거실에 있고 까치발로 오가는지, 누가 서서 나를 얼마나 쳐다보는지, 최대한 소리 내지 않고 오늘 자 신문을 보다 포기하는지, 누가 오늘 상영 영화를 확인하고 나를 깨워야 할까 고민하는지 다 알았다. 77p


내일 아침 일찍 수영을 하러 간다면 지금 과도하게 넘치는 자기혐오를 이겨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자기혐오에 익숙해지기도 하는지 궁금했다. 아니면 누적된 불안이 너무 커서 유예 기간을 가진 한 덩어리 감정으로 압축시키는 것일까? 어제만 해도 침입자처럼 느껴지던 타인이 내가 지옥에 빠지는 걸 막아주는 존재가 되는 걸까? 새벽에는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밤에는 그 고통을 없애 줄 사람이 되는 것일까? 195p



정체가 탄로나면 끝나버리는 게임처럼 엘리오의 사랑은 조심스럽기 짝이 없다.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챌까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애타는 마음을 영영 알아주지 않을까 겁이 나는 것은 비단 동성간의 사랑만은 아니다. 감정의 형태는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다.

'사랑', 그 복합적인 감정 속에 자리한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을 야기한다. 그저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감정은 설렘, 기쁨, 흥분, 집착, 질투, 고통, 절망, 상실, 자기혐오 등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그러다 마침내, 절망 속에서 빠져나와 평소와 다름없는 당신을 봤을 때에야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내가 지독한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우리는 한때 별을 찾았다. 나와 당신. 일생에 한 번만 주어지는 일이다. 300p



일생에 한 번만 주어지는 일. 단순히 사랑을 넘어서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사람, 나보다 더 나와 같은 사람. 일생에 한 번뿐이라 했으니 나에게도 나만의 별을 찾을 기회가 주어진다는 전제하에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나는 당신을 알아볼 수 있을까. 당신 앞에 솔직할 수 있을까. 일생을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찬란한 빛을 뒤로 하고 올리버처럼 익숙함을 택할까. 특별함이 영원을 약속하진 않는다. 만약 올리버와 엘리오가 함께 했더라도 밝게 빛났던 그 여름의 기억이 인생에 가장 찬란한 한때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을 택하건 따라붙는 후회와 미련. 그러나 선택지를 쥔 것이 정말 '나'일까? '사회'일까?


동성애 소설 보다는 끝나가는 여름에 읽는 한 소년의 아릿한 성장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엘리오가 첫만남에서 작별의 순간을 떠올렸듯 그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지만 앞으로 다가올 무수한 여름에, 아마도 그들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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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연대기 클래식 호러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 / 책세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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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아이티 섬의 형법 249조항은 다음과 같다.

<실제적 사망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무력한 혼수상태를 야기하여 상당 기간 지속시키는 물질을 사람에게 적용하여 그의 의지에 반해 고용하는 행위는 살인 미수에 준한다. 그런 물질을 주입한 사람을 매장할 경우, 그 결과와 상관없이 그 행위는 살인으로 간주한다.>


무슨 소린고 하니 이른바 '좀비화'를 법으로 금지한다는 조항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오락거리에 불과한 '좀비'가, 한때 아이티에선 실질적 문제였던 것이다. 아이티 섬 뿐만 아니라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곳곳의 섬에서 이와 같은 미스터리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빠르게 달리며, 늘 분노해 있고, 살아있는 사람을 공격해 굶주린 배를 채우는 요즘 좀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북소리. 부두교 주술사(Bokor)에 의해 무덤에서 되살아난 시체는 자의식이 없고 명령에 복종하며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주로 사탕수수밭에서 노예로 부려지는 이 부활한 시체들에게는 공통된 금기사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소금. 음식은 섭취하나 나트륨은 금물인 이들에게 금기사항이 깨졌을때 벌어지는 난장판은 소설을 통해 확인하시길.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나 좀비를 알아볼 수 있다. 좀비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앞쪽만 응시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좀비로 의심되는 자에게 짠 음식을 줘보면 된다. 좀비는 소금을 먹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혹은 좀비에게는 소금 맛을 보고 나면 자신이 죽었음을 깨닫고 무덤이 어디에 있든 기필코 자신이 묻힌 곳을 찾아가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 단편집에 이런 짠내나는 노예 좀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단편은 '야성의 부름'을 쓴 작가 '잭 런던'의 짧고 강렬한 '천번의 죽음'이었다. 과학적 접근방식을 택한 이 소설은 불멸의 영혼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로, 좀비 소설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었다. 결말부에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아이러니하다.




아버지에겐 이성이 전부였고, 타자에 대한 사랑이나 연민 같은 것들은 그저 극복해야 하는 나약한 결점일 뿐, 그는 그런 감정을 느끼거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보니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네게 생명을 주었으니, 그것을 가져갈 권리 또한 나한테 있지 않겠냐?" 그렇다고 해서 그걸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단지 필요할 때마다 내 생명을 빌렸다가 적절한 시기에 다시 돌려주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물론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지만, 너는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이란 게 원래 위험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죽어서까지 죽지 못하고 노동력을 착취 당하는 흑인 노예. 부두교 주술에 벌벌떠는 유색인종과 그들의 우둔함에 코웃음 치는 백인들. 민간 설화와도 같은 '좀비 연대기'는 대부분의 소설이 19세기 후반에 쓰여졌는데, 판타지 장르이지만 당대 시대상을 유추해볼 수 있다. 흉폭하고 날쌘 좀비가 주는 공포와는 또다른 섬뜩함을 만나고 싶다면 12편의 단편집 '좀비 연대기'를 통해 좀비 원형의 매력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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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 : 주사위는 던져졌다 레오나 시리즈 The Leona Series
제니 롱느뷔 지음, 박여명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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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채 피칠갑이 된 어린 아이가 은행에 들어선다. 녹음기에선 돈을 요구하는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주변인들은 아이의 안전을 염려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 돈을 챙긴 아이는 은행을 빠져 나간 뒤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사건은 베테랑 형사 레오나가 맡게 되고, 수사를 진행하지만 단서는 나오지 않는다. 와중에 레오나를 협박하는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한다.


형사, 엄마, 아내. 그리고 범죄소설에서 여성이 주인공일때, 벌써 우리 머릿속에는 정형화 된 캐릭터가 몇몇 떠오른다. 그러나 여기 '레오나'라는 인물은 다르다. 바쁜 직장 일로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진다거나, 정의감에 불타 사건 해결에 힘쓰지도, 상사 앞에서 고분고분하지도 않다. 감정적이지도, 또한 도덕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기존 범죄수사물에서 보여지던 남성적 캐릭터에 가깝다. 부모에게 정신적 학대와 남자형제들과 다른 차별대우를 당했던 유년시절로 레오나는 타고난 본성을 억누르고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감정적 결여를 숨긴 채 연극하듯 인생을 살아온 그녀는 이제 더이상 이 공허함을 참을 수가 없다.


충격적 오프닝으로 시리즈의 문을 연 '레오나'의 저자 제니 롱느뷔는 전직 수사관 출신으로 그 밖에도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데뷔작으로 그는 북유럽 누아르의 새로운 여왕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반사회적 성향을 지닌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보통의 범죄 스릴러물과는 다른 재미를 보여주는 레오나.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떤 결말을 내릴지 앞으로 나올 시리즈가 기다려진다.



이토록 소모적이며,
이토록 무의미하다.



이것이었다. 내가 거부하고 싶었던 바로 그 인생. 예전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물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인생을 사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다르게 살기 위해 애쓰지만 않으면, 흐름을 거르스지만 않으면, 그것에 대항하려는 의지나 결연함을 가지고 있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도심 외곽 지역의 아주 전형적인 단독 주택에 살게 될 것이고, 그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며, 큰 집과 멋진 자동차에 투자한 만큼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다면 그 끝은?  가족을 위한 시간이 없어질 것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내게는 그런 삶이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이러한 인생을 얻기 위해 매일매일을 싸워야만 했다. 그리고 자문했다. 대체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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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산 형사 베니 시리즈 1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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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온 메이어를 확실히 각인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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