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 - 진화심리학으로 보는 연애 이야기
김성한 지음 / 연암서가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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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에 정말 감명(?) 깊게 읽었던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그땐 리뷰를 쓰지 않아서 그 내용은 다 잊었지만 읽으면서 정말 소름끼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이후로는 연애학에 관한 책을 거의 안 읽다가 생뚱맞게 결혼 이후에 1년에 두세 권씩 꼭 읽었다. 설레임에서 익숙함으로 변한 사이가 편안해서 좋지만 한 가닥 남은 긴장감까지 끊어버리고 싶지 않은 여자로서의 마지막 자존심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은 사회생물학자, 진화인류학자, 인지과학자, 심리학자들이 한데 모여 인간 본성에 대해 함께 성찰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범학문적 분야라고 한다. 우리의 마음을 읽어주는 이 매력적인 학문을 통해 살펴보는 남녀의 연애가 시작부터 흥미로웠다. 책은 1부 남녀의 성 특징, 2부 연애의 기술, 3부 연애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여성이기에 1부의 남성의 성 특징을 눈여겨보았는데 남성이 다수의 성 파트너를 원하고, 성에 대한 독점욕이 강하고, 젊고 건강한 여성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를 진화론에 입각해 읽으니 그 행동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여성의 성 특징은 남성과 다른데 그 차이가 서로 유전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생물학적 선택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부와 3부는 보편적인 연애 기술에 관한 내용인데 저자가 우리나라 남녀 연예인이나 노래 가사를 예로 들어 독자들의 이해와 공감을 끌어내는 센스가 돋보였다. 현재 결혼 3년차인데 이때쯤 권태기가 찾아온다고 하여 제일 관심 있었던 부분이 3장의 ‘권태기’였다. 친구에게 심한 권태기가 찾아와서 옷걸이에 걸려 있는 남편의 옷만 봐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더욱 꼼꼼하게 읽었는데 권태기는 호르몬의 변화가 주원인이라는 결론을 보니 왠지 안심이 되었다. 이어서 권태기를 이겨내기 위한 조언들이 있어서 앞으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연애서가 있지만 이 책은 진화론을 기초로 상대방의 행동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있다는데 차별성이 있다. 책에 나오는 남녀의 특징이 일반적인 것이긴 하지만 연애에 관한 문제로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성 특징과 선호하는 이상형, 기본적인 연애 기술을 앎으로써 연애 이론이 탄탄해질 것이고 연애를 잘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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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경영 - 복합학문으로서의 전망
박신의 지음 / 이음스토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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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경영이라는 단어를 따로 떼어놓고 본 적은 많지만 한 단어로 합쳐서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문화와 예술은 창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경영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서구에서는 문화예술경영이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진행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10여 년이 갓 넘은 학문이여서 그런지 생소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저자의 문화예술경영과 관련한 논문을 선별한 것으로 총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문화예술경영의 경영학적 토대와 복합학문적 성격, 학문의 출발과 21세기 들어 급격히 팽창한 이유, 예술 영역에서 시도하는 바이럴 마케팅의 형태, 2장에서는 문화예술시설의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안, 3장에서는 한국사회의 정책사업과 관련한 문화예술경영의 접근을 다뤘다.

지방에 살던 내가 혼자 또는 친구와 함께 서울로 전시회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때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부터인 것 같다. 내가 전시회 정보를 알게 되는 경로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클럽을 통해서였다. 일촌(현재 블로그의 이웃과 비슷한 개념)들이 전시회나 연주회, 시사회에 가서 찍은 사진을 보면 그 대열에 합류하고픈 열망이 일었다. 예술 문외한이었지만 그곳에 갔다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나 자신이 있어 보인다고(?) 느끼는 약간의 허세감도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고 나서 되새겨 보니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경영이라는 복합학문이 시작된 게 바로 그 시기이고, 예술과 문화 관련 종사자들이 의도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그것이 일종의 예술분야의 바이럴 마케팅이 아니었나 싶다.

책을 읽기 전에는 경영이라는 학문이 예술의 창조성과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섰는데 저자가 예술경영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를 정확히 짚어주어서 얕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지역만 해도 주변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여러 곳 있는데 그곳에 쉽사리 발길이 가지 않는다.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그 가치가 소중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을 텐데 많은 돈을 투자한 문화예술시설이 외면 받지 않으려면 뮤지엄 플래너라는 전문인이 꼭 필요할 것 같다. 결국 문화예술경영이라는 복합학문이 발전해야 그러한 시설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또한 예술에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과의 거리도 좁힐 수 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모네의 그림을 보기 위해 프랑스까지 찾아가는 것을 보면 경영학이 문화예술과 결합해 복합학문으로 발전한 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야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발전이 더욱 기대된다.

 

이 책은 출판사의 제공으로 읽고 남긴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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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부모들의 자녀양육법
제임스 캠벨.조석희 지음 / 루이앤휴잇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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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매일 배우고 느끼는 바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은 육아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는 걷고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데 내가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그 순간부터 양육이 아니라 보육으로 변하게 된다. 아이가 누워 있을 때는 책도 많이 읽어주고 여러 장르의 음악도 들려주며 이것저것 신경을 썼는데 육아가 장기전으로 돌입하니 첫 마음이 흐트러져 요즘에는 그때보다 양적으로 나 질적으로 아이를 위해 해 주는 게 적은 느낌이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을 겸 이 책을 읽었다.

슈퍼부모란 자녀를 극성으로, 그러나 지혜롭게 돌봐서 뛰어난 성취를 하게 만든 부모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19개월 간 키워오면서 읽은 육아서들은 대부분 엄마의 조건 없는 사랑이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었는데 ‘자녀를 극성으로’라는 말이 조금 의아했다. 국제수학과 과학올림피아드 입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라서 일반 부모한테는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아이는 타고난 능력이 아닌 부모의 영향에 의해서 완성된다’라는 프롤로그를 읽고 나니 슈퍼부모들이 어떻게 아이를 키웠는지 궁금했다.

부모가 아이의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방법을 9개 파트로 나누어 설명해 주는데 우리나라 부모들이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파트는 5파트인 것 같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부모의 그릇된 상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내용인데 ‘그릇된 상식’이란 ‘이해집단에 따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근거 없는 믿음’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유난히 교육열이 높아서 그런지 부모 마음을 악용한 교육적인 상술이 많은 것 같다. 다른 파트도 좋은 내용이 많았지만 부모가 자녀 교육에 있어서 중심을 잡으려면 5파트를 반드시 읽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독서가 주는 힘이 정말 막강하다는 것과 부모와 아이가 피드백을 주고받으려면 부모 또한 지혜롭고 현명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평소에 아이에게 기대감을 표현하면 부담감을 느껴서 정서적으로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적절한 기대는 아이에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동기는 성취, 자신감과 연결되어 아이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이에게 엄마의 기대감을 조금씩 표현해볼까 한다. 슈퍼부모들의 양육법이라고 해서 어려울 줄 알았는데 자녀에게 좋은 습관과 자세를 길러주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간과하고 지나치는 부모와 남들보다 ‘극성스럽게’ 좋은 습관을 길러주는 부모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막연히 좋은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부터는 내가 어떤 부모가 되길 원하는지 잘 생각해보아야겠다.

102 - 많이 읽고, 배우면 지식정장고가 풍부해지고, 새로운 시각과 통찰, 새로운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풍부한 관심과 정보가 많은 아이는 주위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재미있어 하고, 주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많아지며, 호기심 역시 풍부해지게 된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공부를 너무 많이 하는 아이들의 경우 전인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성취를 잘 한 아이들’에 관한 우리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전혀 근거가 없다. 뛰어난 성취를 하는 아이일수 록 오히려 여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런 아이들일 수록 훈육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악기를 연주하거나, 글을 쓰거나, 신문기사를 편집하거나, 기타 여러 가지 활동을 해나가는 데 있어 필요한 규율을 잘 지킨다.

104 - 자신감은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아이가 어떤 성취를 하게 되면 자신감은 그만큼 증가한다. 그런 면에서 자신감과 성취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또한 자신감은 더 뛰어난 성취를 낳는다. 운동이나 공부 모두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부모는 자녀가 학업적인 면에서 점점 더 자신감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 이에 모든 일을 확고하게 하고, 한계를 분명히 정해 주며 일관성 있게 지도할 필요가 있다.

110~111 - 부모가 자녀에게 반드시 물어봐야 할 세 가지 전문이 있다.

"너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니?"

"거기까지 어떻게 갈 생각이니?"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거니?"

166 - 슈퍼부모의 63%가 아이에게 압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고 답하였다. 그들 대부분은 아이에게 ‘관심과 걱정’수준의 압력을 행사했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부모 중 누가 압력을 중점적으로 행사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만 압력을 행사한다면 다른 사람은 아이를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243 - 부모는 응원단장처럼 반응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를 대신해서 직접 뛰는 선수가 아니다. 자녀들이 필요로 한하는 것을 돕고, 지지하며, 잘하라고 응원하는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 옆에서 응원을 해 주는 부모가 있으면 아이들은 더욱 신이 나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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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아이
신상진 지음 / 삼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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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지 않지만 서로 아끼는 마음이 가득했던 한 가정이 있었다. 토요일을 잔소리 없는 날로 정하고 온 가족이 한강고수부지에 가서 자전거도 타고 저녁이면 오붓하게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던, 오래도록 아무 일 없을 것만 같던 그 가정에 갑자기 먹구름이 낀다. 둘째 아이 정수가 갑자기 늦게 들어오고 식구들의 돈을 훔치는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학이 되자 집이 싫어서 나간다는 짤막한 편지를 남겨놓고 가출을 했는데 며칠 후 걸려온 전화에서 엄마를 애처롭게 부르는 정수의 목소리를 듣고 엄마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정수의 행동에서 불길함을 느낀다. 엄마의 직감으로 정수가 철규라는 아이로부터 감금과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만 이미 철규라는 쇠사슬에 몸과 마음이 포박당한 정수는 쉽사리 두려움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피해자가 되고, 철규라는 거대한 두려움의 대상을 극복하지 못하는 중에도 청소년 보육센터에서 상담업무를 하며 그 사이의 괴리감으로 극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다섯 식구 중 한 명의 일탈만으로도 모든 식구가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며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모습이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몹시 가슴이 아팠다. 저자의 가족이 피해자 입장으로 직접 겪은 일이라서 나 또한 피해자의 입장에 몰입되어 상대방의 고통에 무감각한 규철의 모습이 많이 힘들었다.

아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저자를 보며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내 밑으로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쌍둥이 남동생들이 있는데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 놈씩 번갈아가며 사고를 치는 바람에 엄마, 아빠가 학교에 불려가기도 했다. 어느 날은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학교에서 막내가 안 왔다고 연락이 왔다며 같이 시내에 있는 PC방을 뒤져보자는 것이었다. 대학생이어서 요령만 잘 피우면 출석 문제없이 나올 수 있었지만 동생이 교복을 입고 있는데 설마 별 일이야 있겠나 싶었고,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귀찮아서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가 불호령이 떨어졌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함께 PC방을 다니는데 골목에 숨어 있는 PC방을 족집게처럼 찾아내는 엄마가 놀라웠다. 그때 혼잣말로 “울 엄마 눈도 밝네.”라고 하자 엄마가 “너도 네 새끼 낳아 키워봐라. 모르는 글자도 다 보인다.”라고 했는데 순간 머릿속이 띵해지면서 동생의 일을 남 일처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때 동생을 찾고 들어갔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당시 엄마가 한 말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만약 그때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우리 가족이 지금처럼 웃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책 속의 이야기에 비하면 헤프닝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저자의 가족이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이 서로 힘든 상황에서도 정수가 언젠가는 자기 자리로 돌아오리라 믿어주고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었던 점, 그리고 정수의 가정 자체가 가지고 있던 회복력에 있다고 보인다.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상흔을 지워버릴 수는 없지만 현재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상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그들의 행복을 기도했다.

 

 

16 - 사실 내가 지금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은 아이가 어떻게 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두려움의 근원은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 터이다. 나는 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아이에게 어떤 해와 악을 끼칠지 예상할 수 없다는 게 소름이 끼치도록 겁이 난다. 차라리 이쯤에서 날 포함해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은 잔인한 욕구에 시달린다.

51 - 아이가 힘들게 하니 서로에게 원망이 쏟아졌다. 그건 서로 평생볼 일이 없을 것 같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극단의 어려움 속에서 드러나는 서로의 바닥을 확인하는 일은 새로운 시련이었다. 남편과 나를 반반씩 닳았을 아이 모습 중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만 확대되어 보였다. ‘혹시 당신 닮의 거 아니야?’ 유치하고 설익은 비교와 핑곗거리를 찾는 내가 보였다. 아이를 미워하는 감정이 서로를 상처 내는 걸로 바뀐 것 같았다.

그러는 중에도 아이는 섬처럼 떨어져 나갔다. 매일매일 끝없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도저히 끌어올릴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55 - 이후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말없는 자리를 차지한건 음울한 우울 이었다. 남편은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매를 대지 않은 대신 눈에 띄게 기운을 잃는 듯했다. 나또한 길을 걷다 보면 불현듯 무릎이 푹 꺾이곤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죄인이었다. 더불어 날카로운 비판자였다. 그 비판의 날은 다시 돌아 서로를 찔렀다. 자괴감은 비난보다 더 아팠다. 차라리 날 선 비난이 나았다. 그때는 끌어올릴 힘이라도 있을 때였다. 조용한 절망의 원색적인 비난보다 더 슬펐다. 슬픔은 무기력을 불러왔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고슴도치처럼 각자 뭉쳐 있었다. 닿으면 아팠고, 옆에 없으면 겁이 났다.

66 - 전에 공부하면서 단장이라는 말 배웠었지? 새끼 잃은 원숭이 배를 갈라보니 장이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지금 엄마가 그런 것 같아. 엄마 아빠는 네가 아름답게 성장하는 과정일거라 생각하고 널 믿어.

109 - 정수는 미세하게 금이 간 유리병 같았다. 잘못 건드리면 와르르 부서져 버릴 것처럼 약하디 약해 보였다. 도대체 왜 그랬는가. 어디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너무나 생경해 오히려 비현실적인 아이의 고통이 가슴에 둔하게 부딪친다.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구나. 부모도 친구도 아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너 혼자 있었구나. 왜 정수가 그 아이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질문에 그 누구도 답해 주지 않는다. 슬픔을 넘어 아무도 없다는 극도의 외로움으로 눈물이 고였다.

140 - 그 아이는 이 모든 게 장난이었다고 한다. 재미로 한 일이라고. 심각성도 상대방의 고통도 모르는 그들의 무감각함이 갑충의 껍질처럼 질기고 단단했다. 그들을 보는 일이 지겨웠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 슬픔이 어떤 것인지 도저히 실감하질 못하는 것 같았다.

155 - 부모가 믿질 않으면 아이는 돌아올 데가 없어요. 애들이 한참 엇나갈 때 보면 맘대로 튀어나가길 원하는 것 같으면서도 진짜 자기를 놓는 것 같으면 불안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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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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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언니가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전화가 왔었는데 집주인이 원하는 전세금이 꽤 높아서 계약을 연장할지 다른 곳으로 이사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곳에 이사 온 지 7개월이 되어 가는데 그 사이에 전세금이 2,000만 원이나 오르다니. 매년 물가상승률이 임금상승률을 상회하니 아무리 돈을 아끼려고 발버둥 쳐도 단기간에 목돈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 그런데 이런 사정 아랑곳없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세금에 나도 2년 후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2년 후 전세금 시세에 맞춰 나름대로 대비를 하겠지만 가계 사정으로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현실 때문인지 저축에 앞서 생각나는 게 대출금이다. TV에서 처음 대부업체 광고를 보았을 땐 거부감이 느껴졌는데 요즘은 나도 모르게 CM송을 흥얼거릴 정도로 거부감이 사라지고 익숙해졌다. 그만큼 주변에 대부업체들이 산재해 있어서 급전이 필요한데 수중에 돈이 없다면 대출을 찾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빚으로 지은 집’의 저자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는 이 책에서 여러 자료를 통해 가계 부채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2000년대 후반에 일어난 미국의 대침체가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것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 역사를 통틀어서 대침체와 견줄 만한 사례가 딱 한 번 있었는데 그게 바로 대공황이다. 두 저자는 대공황과 대침체가 있기 직전에 모두 가계 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곧바로 가계 지출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급감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러나 은행이 회복되어 대출이 정상화되면 경제 전체가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 주장하는 은행 대출 시각이 이미 사회적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인지 두 저자는 명탐정 셜록 홈즈의 소설 <보헤미아의 스캔들>에 나온 글귀를 인용한 뒤 자신들이 밝혀낸 사실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자료와 함께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대침체 이전의 상황을 간추리면 대략 이렇다. 신용 평점이 낮은 저소득층의 대출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집값에 거품이 끼며 상승한다. 이후 주택 시장의 활황세가 돌아서면 주택 가격이 모기지 대출액보다 더 낮게 떨어져 깡통주택이 발생하고 이것은 압류와 투매 현상을 일으킨다. 이것은 해당 지역의 모든 집값을 동시에 하락하게 만드는데 그 이유는 대부자는 재산 보유 의향이 없고, 차입자는 재산 보유 여력이 없어서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기 때문이다. 집값 하락으로 인한 손실은 빚이 많은 가계에 집중되어 부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데 문제는 빚이 많은 가계의 한계 소비 성향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집값이 떨어지고 이들이 소비를 적극적으로 줄이며 나라는 거시적 경제 위기의 늪에 빠지게 된다.

책의 초중반부에 “왜 심각한 불황들이 발생하는가? 우리는 대침체와 그로 인한 결과를 막을 수 있었는가? 우리는 이런 위기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면 후반부는 우리가 왜 고통을 같이 분담해야 하는지 이유를 역설한다. 미국에서 대침체를 겪을 당시 일각에서 가계 부채의 위험을 경고하며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무책임하게 빚을 많이 진 사람들의 책임을 왜 같이 분담해야 하느냐며 거부당했다. 사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빚을 같이 갚자는 의견에 쉽게 수긍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유례없는 경기 침체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이에 두 저자는 채권자가 채무자를 하방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집값이 오를 경우 채무자는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득의 5%를 채권자에게 지불한다는 내용의 <책임 분담 모기지>를 제안한다. 이미 은행을 구제하는 정책이 경기 진작에 전혀 도움 되지 않았음이 밝혀진 만큼 이들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며칠 전 인터넷 뉴스로 우리나라 11월 가계대출이 급증했다는 기사와 저물가 상황이 장기화되는데도 소비가 오히려 줄어들어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 한 상황을 보며 책을 읽는 내내 우리가 탄 배가 어디로 가고 향하는 건지 불안해졌다. 2000대 초반부터 미국보다 더 심각한 레버드 로스의 악순환이 시작된 스페인은 현재까지도 무너진 경제를 회복하지 못했는데 정책적 실수를 인정한 미국과 달리 현재도 채무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잔인한 모기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나는 평생 은행 돈을 갚기 위해 일할 것 같습니다. 돈을 버는 족족 은행이 가져가기 때문에 살면서 어떤 것도 소유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스페인의 어느 청년의 인터뷰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건 정말 우리가 모두 한배를 타고 있다는 저자의 진심이 담긴 충고 때문이리라. 이제라도 가계 부채가 경기 침체의 근본 원인임이 밝혀졌으니 우리는 한마음으로 이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열린책들 독자 서평단 3기◀

이 책은 출판사의 제공으로 읽고 남긴 리뷰임을 밝힙니다.

 

17쪽 - 명탐정 셜록 홈즈는 추리 소설 ‘보헤미아의 스캔들’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자료를 보기 전에 이론부터 세우는 것은 중대한 실수다. 왜냐 하면 그럴 경우 사실에 부합하는 이론을 만드는 대신부지불식간에 이론에 부합하도록 사실을 비틀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도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이론부터 서둘러 세우는 우를 범하기 쉽다.

42쪽 - 집값 폭락과 결합한 과도한 부채는 이미 크게 벌어져 있는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려 놓았다. 맞다, 가난한 사람들은 원래 가난했다. 그러나 이들은 집값의 폭락으로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조차 모두 잃어버렸다. 이들이 진 빚이 일으킨 레버리지 승수 효과가 이들의 순자산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빚의 근본적인 특징이다. 빚은 정확히 가장 가진 것이 없는 계층에 엄청난 손실을 입힌다.

90쪽 - 레버드 로스로 초래된 경제위기를 논할 때 도덕적 판단을 내리며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빚을 너무 많이 져서 집을 산 결과이므로 그 사람들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도덕적 훈계는 위기 상황에서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레버드 로스는 경제 전체로 빠르게 퍼져 가며 빚을 진 가계의 수요 감소는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5쪽 - 은행 채권자와 주주에 대한 구제 금융은 한계소비성향을 매우 낮은 계층에 납세자의 돈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즉 은행 대출 시각에 따르면 도움을 제일 적게 필요로 하는 계층에 납세자의 돈을 가져다주는 셈이다.

은행들이 곤란에 빠진 진짜 이유는 가계 지출의 급락이 불황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가 은행을 구하길 원한다면, 은행을 구제하는 것보다 가계 부채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문제해결을 위한 더 나은 접근법이 될 것이다.

205쪽 - 원금 탕감은 주택 시장 붕괴에 따른 손실을 고르게 부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채무자가 모든 손실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와 채권자 모두 손실을 고르게 나누어 져야만 한다. 채권자에 비해 채무자가 소득수준이 낮고 레버리지가 높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손실을 보다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한계 소비 성향이 낮은 계층으로부터 높은 계층으로 부를 이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는 경제 전체의 수요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채권자는 지갑 속의 1달러가 없어 질 때 소비를 거의 줄이지 않지만, 채무자는 지갑 속에 1달러를 채워 주면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한다. 우리가 3장에서 강조했듯이 채무 가계는 부의 변화에 따른 한계 소비 성향이 다른 계층에 비해 세배 내지 다섯 배 크기 때문이다."

모든 경제 정책이 한계 소비 성향이 가장 큰 계층에게 자금을 몰아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각한 불황인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왜냐 하면 총수요 감소가 경제전체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해서 거시적 실패를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272쪽 - 우리가 제안하는 바는 금융시스템이 본래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계는 집을 사거나 교육에 투자할 때 수반되는 위험을 금융시스템을 통해 분산시킬 수 있어야 한다. 투자자들은 눈먼 정부 보조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당하는 위험에 부합하는 정당한 수익을 얻기 위해 금융시스템을 활용해야 한다. 금융 시스템은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경제 안정에도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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