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아이
신상진 지음 / 삼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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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지 않지만 서로 아끼는 마음이 가득했던 한 가정이 있었다. 토요일을 잔소리 없는 날로 정하고 온 가족이 한강고수부지에 가서 자전거도 타고 저녁이면 오붓하게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던, 오래도록 아무 일 없을 것만 같던 그 가정에 갑자기 먹구름이 낀다. 둘째 아이 정수가 갑자기 늦게 들어오고 식구들의 돈을 훔치는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학이 되자 집이 싫어서 나간다는 짤막한 편지를 남겨놓고 가출을 했는데 며칠 후 걸려온 전화에서 엄마를 애처롭게 부르는 정수의 목소리를 듣고 엄마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정수의 행동에서 불길함을 느낀다. 엄마의 직감으로 정수가 철규라는 아이로부터 감금과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만 이미 철규라는 쇠사슬에 몸과 마음이 포박당한 정수는 쉽사리 두려움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피해자가 되고, 철규라는 거대한 두려움의 대상을 극복하지 못하는 중에도 청소년 보육센터에서 상담업무를 하며 그 사이의 괴리감으로 극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다섯 식구 중 한 명의 일탈만으로도 모든 식구가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며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모습이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몹시 가슴이 아팠다. 저자의 가족이 피해자 입장으로 직접 겪은 일이라서 나 또한 피해자의 입장에 몰입되어 상대방의 고통에 무감각한 규철의 모습이 많이 힘들었다.

아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저자를 보며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내 밑으로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쌍둥이 남동생들이 있는데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 놈씩 번갈아가며 사고를 치는 바람에 엄마, 아빠가 학교에 불려가기도 했다. 어느 날은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학교에서 막내가 안 왔다고 연락이 왔다며 같이 시내에 있는 PC방을 뒤져보자는 것이었다. 대학생이어서 요령만 잘 피우면 출석 문제없이 나올 수 있었지만 동생이 교복을 입고 있는데 설마 별 일이야 있겠나 싶었고,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귀찮아서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가 불호령이 떨어졌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함께 PC방을 다니는데 골목에 숨어 있는 PC방을 족집게처럼 찾아내는 엄마가 놀라웠다. 그때 혼잣말로 “울 엄마 눈도 밝네.”라고 하자 엄마가 “너도 네 새끼 낳아 키워봐라. 모르는 글자도 다 보인다.”라고 했는데 순간 머릿속이 띵해지면서 동생의 일을 남 일처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때 동생을 찾고 들어갔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당시 엄마가 한 말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만약 그때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우리 가족이 지금처럼 웃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책 속의 이야기에 비하면 헤프닝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저자의 가족이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이 서로 힘든 상황에서도 정수가 언젠가는 자기 자리로 돌아오리라 믿어주고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었던 점, 그리고 정수의 가정 자체가 가지고 있던 회복력에 있다고 보인다.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상흔을 지워버릴 수는 없지만 현재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상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그들의 행복을 기도했다.

 

 

16 - 사실 내가 지금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은 아이가 어떻게 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두려움의 근원은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 터이다. 나는 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아이에게 어떤 해와 악을 끼칠지 예상할 수 없다는 게 소름이 끼치도록 겁이 난다. 차라리 이쯤에서 날 포함해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은 잔인한 욕구에 시달린다.

51 - 아이가 힘들게 하니 서로에게 원망이 쏟아졌다. 그건 서로 평생볼 일이 없을 것 같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극단의 어려움 속에서 드러나는 서로의 바닥을 확인하는 일은 새로운 시련이었다. 남편과 나를 반반씩 닳았을 아이 모습 중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만 확대되어 보였다. ‘혹시 당신 닮의 거 아니야?’ 유치하고 설익은 비교와 핑곗거리를 찾는 내가 보였다. 아이를 미워하는 감정이 서로를 상처 내는 걸로 바뀐 것 같았다.

그러는 중에도 아이는 섬처럼 떨어져 나갔다. 매일매일 끝없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도저히 끌어올릴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55 - 이후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말없는 자리를 차지한건 음울한 우울 이었다. 남편은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매를 대지 않은 대신 눈에 띄게 기운을 잃는 듯했다. 나또한 길을 걷다 보면 불현듯 무릎이 푹 꺾이곤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죄인이었다. 더불어 날카로운 비판자였다. 그 비판의 날은 다시 돌아 서로를 찔렀다. 자괴감은 비난보다 더 아팠다. 차라리 날 선 비난이 나았다. 그때는 끌어올릴 힘이라도 있을 때였다. 조용한 절망의 원색적인 비난보다 더 슬펐다. 슬픔은 무기력을 불러왔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고슴도치처럼 각자 뭉쳐 있었다. 닿으면 아팠고, 옆에 없으면 겁이 났다.

66 - 전에 공부하면서 단장이라는 말 배웠었지? 새끼 잃은 원숭이 배를 갈라보니 장이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지금 엄마가 그런 것 같아. 엄마 아빠는 네가 아름답게 성장하는 과정일거라 생각하고 널 믿어.

109 - 정수는 미세하게 금이 간 유리병 같았다. 잘못 건드리면 와르르 부서져 버릴 것처럼 약하디 약해 보였다. 도대체 왜 그랬는가. 어디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너무나 생경해 오히려 비현실적인 아이의 고통이 가슴에 둔하게 부딪친다.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구나. 부모도 친구도 아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너 혼자 있었구나. 왜 정수가 그 아이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질문에 그 누구도 답해 주지 않는다. 슬픔을 넘어 아무도 없다는 극도의 외로움으로 눈물이 고였다.

140 - 그 아이는 이 모든 게 장난이었다고 한다. 재미로 한 일이라고. 심각성도 상대방의 고통도 모르는 그들의 무감각함이 갑충의 껍질처럼 질기고 단단했다. 그들을 보는 일이 지겨웠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 슬픔이 어떤 것인지 도저히 실감하질 못하는 것 같았다.

155 - 부모가 믿질 않으면 아이는 돌아올 데가 없어요. 애들이 한참 엇나갈 때 보면 맘대로 튀어나가길 원하는 것 같으면서도 진짜 자기를 놓는 것 같으면 불안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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