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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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언니가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전화가 왔었는데 집주인이 원하는 전세금이 꽤 높아서 계약을 연장할지 다른 곳으로 이사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곳에 이사 온 지 7개월이 되어 가는데 그 사이에 전세금이 2,000만 원이나 오르다니. 매년 물가상승률이 임금상승률을 상회하니 아무리 돈을 아끼려고 발버둥 쳐도 단기간에 목돈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 그런데 이런 사정 아랑곳없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세금에 나도 2년 후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2년 후 전세금 시세에 맞춰 나름대로 대비를 하겠지만 가계 사정으로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현실 때문인지 저축에 앞서 생각나는 게 대출금이다. TV에서 처음 대부업체 광고를 보았을 땐 거부감이 느껴졌는데 요즘은 나도 모르게 CM송을 흥얼거릴 정도로 거부감이 사라지고 익숙해졌다. 그만큼 주변에 대부업체들이 산재해 있어서 급전이 필요한데 수중에 돈이 없다면 대출을 찾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빚으로 지은 집’의 저자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는 이 책에서 여러 자료를 통해 가계 부채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2000년대 후반에 일어난 미국의 대침체가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것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 역사를 통틀어서 대침체와 견줄 만한 사례가 딱 한 번 있었는데 그게 바로 대공황이다. 두 저자는 대공황과 대침체가 있기 직전에 모두 가계 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곧바로 가계 지출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급감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러나 은행이 회복되어 대출이 정상화되면 경제 전체가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 주장하는 은행 대출 시각이 이미 사회적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인지 두 저자는 명탐정 셜록 홈즈의 소설 <보헤미아의 스캔들>에 나온 글귀를 인용한 뒤 자신들이 밝혀낸 사실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자료와 함께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대침체 이전의 상황을 간추리면 대략 이렇다. 신용 평점이 낮은 저소득층의 대출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집값에 거품이 끼며 상승한다. 이후 주택 시장의 활황세가 돌아서면 주택 가격이 모기지 대출액보다 더 낮게 떨어져 깡통주택이 발생하고 이것은 압류와 투매 현상을 일으킨다. 이것은 해당 지역의 모든 집값을 동시에 하락하게 만드는데 그 이유는 대부자는 재산 보유 의향이 없고, 차입자는 재산 보유 여력이 없어서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기 때문이다. 집값 하락으로 인한 손실은 빚이 많은 가계에 집중되어 부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데 문제는 빚이 많은 가계의 한계 소비 성향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집값이 떨어지고 이들이 소비를 적극적으로 줄이며 나라는 거시적 경제 위기의 늪에 빠지게 된다.

책의 초중반부에 “왜 심각한 불황들이 발생하는가? 우리는 대침체와 그로 인한 결과를 막을 수 있었는가? 우리는 이런 위기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면 후반부는 우리가 왜 고통을 같이 분담해야 하는지 이유를 역설한다. 미국에서 대침체를 겪을 당시 일각에서 가계 부채의 위험을 경고하며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무책임하게 빚을 많이 진 사람들의 책임을 왜 같이 분담해야 하느냐며 거부당했다. 사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빚을 같이 갚자는 의견에 쉽게 수긍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유례없는 경기 침체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이에 두 저자는 채권자가 채무자를 하방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집값이 오를 경우 채무자는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득의 5%를 채권자에게 지불한다는 내용의 <책임 분담 모기지>를 제안한다. 이미 은행을 구제하는 정책이 경기 진작에 전혀 도움 되지 않았음이 밝혀진 만큼 이들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며칠 전 인터넷 뉴스로 우리나라 11월 가계대출이 급증했다는 기사와 저물가 상황이 장기화되는데도 소비가 오히려 줄어들어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 한 상황을 보며 책을 읽는 내내 우리가 탄 배가 어디로 가고 향하는 건지 불안해졌다. 2000대 초반부터 미국보다 더 심각한 레버드 로스의 악순환이 시작된 스페인은 현재까지도 무너진 경제를 회복하지 못했는데 정책적 실수를 인정한 미국과 달리 현재도 채무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잔인한 모기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나는 평생 은행 돈을 갚기 위해 일할 것 같습니다. 돈을 버는 족족 은행이 가져가기 때문에 살면서 어떤 것도 소유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스페인의 어느 청년의 인터뷰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건 정말 우리가 모두 한배를 타고 있다는 저자의 진심이 담긴 충고 때문이리라. 이제라도 가계 부채가 경기 침체의 근본 원인임이 밝혀졌으니 우리는 한마음으로 이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열린책들 독자 서평단 3기◀

이 책은 출판사의 제공으로 읽고 남긴 리뷰임을 밝힙니다.

 

17쪽 - 명탐정 셜록 홈즈는 추리 소설 ‘보헤미아의 스캔들’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자료를 보기 전에 이론부터 세우는 것은 중대한 실수다. 왜냐 하면 그럴 경우 사실에 부합하는 이론을 만드는 대신부지불식간에 이론에 부합하도록 사실을 비틀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도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이론부터 서둘러 세우는 우를 범하기 쉽다.

42쪽 - 집값 폭락과 결합한 과도한 부채는 이미 크게 벌어져 있는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려 놓았다. 맞다, 가난한 사람들은 원래 가난했다. 그러나 이들은 집값의 폭락으로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조차 모두 잃어버렸다. 이들이 진 빚이 일으킨 레버리지 승수 효과가 이들의 순자산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빚의 근본적인 특징이다. 빚은 정확히 가장 가진 것이 없는 계층에 엄청난 손실을 입힌다.

90쪽 - 레버드 로스로 초래된 경제위기를 논할 때 도덕적 판단을 내리며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빚을 너무 많이 져서 집을 산 결과이므로 그 사람들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도덕적 훈계는 위기 상황에서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레버드 로스는 경제 전체로 빠르게 퍼져 가며 빚을 진 가계의 수요 감소는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5쪽 - 은행 채권자와 주주에 대한 구제 금융은 한계소비성향을 매우 낮은 계층에 납세자의 돈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즉 은행 대출 시각에 따르면 도움을 제일 적게 필요로 하는 계층에 납세자의 돈을 가져다주는 셈이다.

은행들이 곤란에 빠진 진짜 이유는 가계 지출의 급락이 불황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가 은행을 구하길 원한다면, 은행을 구제하는 것보다 가계 부채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문제해결을 위한 더 나은 접근법이 될 것이다.

205쪽 - 원금 탕감은 주택 시장 붕괴에 따른 손실을 고르게 부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채무자가 모든 손실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와 채권자 모두 손실을 고르게 나누어 져야만 한다. 채권자에 비해 채무자가 소득수준이 낮고 레버리지가 높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손실을 보다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한계 소비 성향이 낮은 계층으로부터 높은 계층으로 부를 이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는 경제 전체의 수요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채권자는 지갑 속의 1달러가 없어 질 때 소비를 거의 줄이지 않지만, 채무자는 지갑 속에 1달러를 채워 주면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한다. 우리가 3장에서 강조했듯이 채무 가계는 부의 변화에 따른 한계 소비 성향이 다른 계층에 비해 세배 내지 다섯 배 크기 때문이다."

모든 경제 정책이 한계 소비 성향이 가장 큰 계층에게 자금을 몰아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각한 불황인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왜냐 하면 총수요 감소가 경제전체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해서 거시적 실패를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272쪽 - 우리가 제안하는 바는 금융시스템이 본래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계는 집을 사거나 교육에 투자할 때 수반되는 위험을 금융시스템을 통해 분산시킬 수 있어야 한다. 투자자들은 눈먼 정부 보조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당하는 위험에 부합하는 정당한 수익을 얻기 위해 금융시스템을 활용해야 한다. 금융 시스템은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경제 안정에도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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