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pped (Paperback, 미국판) - 영화 '플립' 원작 소설
Van Draanen, Wendelin / Ember / 200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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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섬세하다. 가끔 어린 시절 책이나 영화를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모습을 많이 성찰하게 된다.

‘나’는 나를 이루는 내 부분들의 합, 그 이상인가?

나무, 구름, 들판, 새
모든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되듯이
인간도 장/단점을 따지기 어려운 특징들이 모여
하나의 개성을 만들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그 존재(전체)가 내 어떠한 특징(부분)들을 모은 것보다 못하다면 어떨까?

내가 ‘훌륭한 작품’까진 아니더라도 ‘괜찮은 사람’으로 과연 잘 살고 있는 건지 계속 반성하게 될 것 같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건 책 속에서 지혜를 찾고, 경험을 통해 배우며, 나의 좋은 ‘부분’들을 늘려나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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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는 다른 대단한 것을 보여줘야 해‘라는 무언의 압박감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냥 이게 난데 뭐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훨씬 더 자유로워질 수도 있어요.

보통 꿈이 현실이 되기 전에는 ‘이뤄지기만 하면 더바랄 게 없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만약 꿈이이뤄졌을 때도 그때의 마음이 생각난다면, 지금의 삶이 보너스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

스무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나면 아마 울 거 같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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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우리 삶의 구석구석이 디지털화되어 이제 우리는 물질세계 위에 0과 1로 구성된 평행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러니 미래에 다양한 기술 기업이 거의 모든경제 분야를 주무르는 상황을 피하기란 무척 어려워 보인다.

망이 커질수록 새로운 가입자는 이전 가입자보다 전화망에 더 큰 가치를 더한다.
이 개념을 수학으로 표현한 것이 망의 가치가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멧커프의 법칙Metcalles law 이다.

페이팔 설립자 피터 틸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경쟁은 패배자나 하는 것>에서 "오래 지속하는 가치를 생성해 확보하고 싶다면 독점기업을 세울 방법을 찾아라."라고 적었다.

어쨌든 독점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개발에 뛰어들게 하는 주요 동기가 된다. 즉, 독점 가능성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자본을 유인할미끼" 노릇을 한다.

경제를 지배하는 어떤 회사도 그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날 존재하는 독점기업도 머잖아 "창조적 파괴라는 끊이지 않는 돌풍"에 멀리 날아가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기술들의 정치적 힘을 우려한다. 우리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를, 우리 사회가 아니라 이 기업들이 통제해 결정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쉽게 말해 우리의 정치 생활이 사유화될 위험이 있다.

《미래 정치학》이 명확히 밝히, 핵심 질문은 기술 대기업의 정치적 힘이 적법하냐 아니냐다. 그리고 사람들이 기술 대기업의 상품과 서비스에 행복을 느낀다 해서 동의가 성립하지는않는다. 소비자 만족이 회사의 경제적 힘, 이윤, 경영진의 보수에 대한정당성을 뒷받침할지는 몰라도, 정치적 힘을 이런 식으로 사고팔아서는 안 된다.

일은 프로이트가 보기에는 사회 질서의 원천이었고, 베버가 보기에는 사람들에게 더 원대한 목적을 제공했고, 야호다가 보기에는 삶의 체계와 방향을 제시했다.

우리 대다수에게 일은 새로운 아편이다.

아게실라오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스파르타인들의 교육 과정을 살펴보면, 누구나 분명 놀랄 것이다. 아고게goge라고 부른 이 과정은 본래 전쟁에 대비해 전사를 교육하도록 설계한 20년제 체육 교육이었다. 오늘날 학교에서 편성한 체육 시간은 아마 체육 교사 말고는 아무도 낙담하지 않게도 많아야 한 주에 서너 시간으로 제한된다. 젊은이를 전사로 훈련할 필요가 더는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더는 이들을 노동자로 훈련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때는 젊은이들에게 일이 아니라여가를 이용해 성공한 삶을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lohn Stuart은 물었다. "사회가 산업 발전을 이용해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목적은무엇인가? 발전이 멈출 때, 우리는 어떤 상태에 놓일까? 아마 우리는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정부가 역할을 하기를 바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을 괴롭혔던 경제 문제, 모든 사람이 먹고살 만큼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문제는 사라질 것이고, 세 가지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첫째 문제는 불평등으로, 경제적 번영을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어떻게 나눌지를 산출해야 한다. 둘째 문제는 정치적 힘으로, 이런 번영을 불러온 기술을 누가 어떤 조건으로 통제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셋째 문제는 삶의 의미로, 이런 번영을 이용해 그저 일이 없이도 그럭저럭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잘 살아갈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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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타인이 나를 표현하는 말에 너무 타이틀을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공감을 더 잘해줘야 한다고의도하는 순간부터는 숙제가 되거든요. 그러면 공감능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어요. 관심 없는 거에는 관심 안 보이는 것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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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노동자를 밀어내는 대체하는 힘이 다른 곳에서 이들의 노동 수요를 늘리는 보완하는 힘보다 약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두 힘의 이런 균형이 반대로 기울어질 확률이 높다. 그것도 영원히.

나는 이것을 ‘우월성 추정uperiority assumption‘이라 부른다. 역사에서 보완하는 힘이 강하게 작용했던 다양한 사례를 들어 미래를 낙관할 때, 이런추정이 바삐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업무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그 업무를 수행하기에 인간이 기계보다 유리하리라고 믿는다.

19세기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ohn Stuart 이 일과 관련하여 남긴 말이있다. "재화의 수요가 곧 노동의 수요는 아니다." 밀이 일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이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염두에 뒀을지도 모르겠다.

레온티예프의 말대로, "말의 먹이를 줄이면 말이 트랙터에 대체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듯이, 노동자의 임금이 내려가면 기계에 대체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대체 과정을 잠시 늦출 뿐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인 로이 아마라 Roy Amara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기술의 단기 영향은 과대평가하고 장기 영향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하는 데 유용한 조언이다.

보유하지 못한다. 케네디 대통령은 "밀물은 모든 배를 밀어 올린다."라는유명한 말로, 경제 성장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이롭다는 뜻을 재치 있게 전달했다. 하지만 그가 놓친 부분이 있다. 물살이 거셀 때 어쩌다 보니 배가 없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자본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그저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앞으로 기계의 손이 미치지 못할 업무가 정확히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이 불확실성이라는 단단한 장막에 뒤덮여 있다는 점이다.

평범한 학생이 1대1로 맞춤형 교육을 받으면 기존 교실 수업을 받는 일반학생 98퍼센트보다 더 높은 학업 성과를 보인다. 교육 연구자들은 이 효과를 ‘2시그마 문제‘라 부른다. 왜 2시그마냐 하면, 1대1 교육을 받은 평범한 학생의 학업 성취도가 기존 교육을 받은 일반 학생보다 표준편차기준으로 2시그마(수학적으로 표시하자면 20)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는 고용이 일상이지도, 실업이 예외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길항력 ‘countervaling power‘ 이라는 용어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만든 것으로 경제력의 집중을 억제하는 힘을 가리킨다. 21세기에는 노동자들이 행사하는 길항력이 줄어들므로 정부가 개입해 노동자 대신 길항력을 행사해야 한다.

‘애가 타도록 괴롭히다‘라는 뜻의 단어 ‘Tantalize‘의 어원이기도 한 탄탈로스이야기는 기술적 실업의 특성을 정확히 담아낸다. 이 실업을 마찰적frictional‘ 기술 실업이라 부를 수 있다. 마찰적 기술 실업이 나타나는 상황에서는 사람이 맡을 일거리가 있다. 문제는 모든 노동자가 그 일거리에손을 뻗쳐 일감을 차지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마찰‘은 이직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더라도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경제를 커다란 기계로 비유하면 바퀴에 모래가 끼어 부드럽게 굴러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흔히들 이런 환상을 품는다. 기술이 진보하면 성에 차지 않는 지루하고 따분한 업무는 기계가 맡고 사람은 의미 있는 업무만 맡을 터이므로, 일이 더 흥미로워지리라. 기계 덕분에 우리가 일에서 벗어나 "정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무엇인가를 하리라." (이 생각은우리가 자동화를 말할 때 사용하는 바로 그 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로봇이라는 말의 어원은 체코어 robota‘로, 힘들고 고된 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착각이다.

그런데 실업률이 가진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자리의 성격이 아니라 일자리 수에만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경제사가 뚜렷이 보여 주듯이, 신기술은 일거리의 양뿐 아니라 매력도 줄인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대신 precarious(불안정한)와 프롤레타리아트를 합성한 프리케리아트precariat라는 말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말은 임금이 갈수록 형편없이 낮아질뿐더러,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긴장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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