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노동자를 밀어내는 대체하는 힘이 다른 곳에서 이들의 노동 수요를 늘리는 보완하는 힘보다 약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두 힘의 이런 균형이 반대로 기울어질 확률이 높다. 그것도 영원히.
나는 이것을 ‘우월성 추정uperiority assumption‘이라 부른다. 역사에서 보완하는 힘이 강하게 작용했던 다양한 사례를 들어 미래를 낙관할 때, 이런추정이 바삐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업무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그 업무를 수행하기에 인간이 기계보다 유리하리라고 믿는다.
19세기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ohn Stuart 이 일과 관련하여 남긴 말이있다. "재화의 수요가 곧 노동의 수요는 아니다." 밀이 일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이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염두에 뒀을지도 모르겠다.
레온티예프의 말대로, "말의 먹이를 줄이면 말이 트랙터에 대체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듯이, 노동자의 임금이 내려가면 기계에 대체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대체 과정을 잠시 늦출 뿐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인 로이 아마라 Roy Amara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기술의 단기 영향은 과대평가하고 장기 영향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하는 데 유용한 조언이다.
보유하지 못한다. 케네디 대통령은 "밀물은 모든 배를 밀어 올린다."라는유명한 말로, 경제 성장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이롭다는 뜻을 재치 있게 전달했다. 하지만 그가 놓친 부분이 있다. 물살이 거셀 때 어쩌다 보니 배가 없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자본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그저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앞으로 기계의 손이 미치지 못할 업무가 정확히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이 불확실성이라는 단단한 장막에 뒤덮여 있다는 점이다.
평범한 학생이 1대1로 맞춤형 교육을 받으면 기존 교실 수업을 받는 일반학생 98퍼센트보다 더 높은 학업 성과를 보인다. 교육 연구자들은 이 효과를 ‘2시그마 문제‘라 부른다. 왜 2시그마냐 하면, 1대1 교육을 받은 평범한 학생의 학업 성취도가 기존 교육을 받은 일반 학생보다 표준편차기준으로 2시그마(수학적으로 표시하자면 20)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는 고용이 일상이지도, 실업이 예외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길항력 ‘countervaling power‘ 이라는 용어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만든 것으로 경제력의 집중을 억제하는 힘을 가리킨다. 21세기에는 노동자들이 행사하는 길항력이 줄어들므로 정부가 개입해 노동자 대신 길항력을 행사해야 한다.
‘애가 타도록 괴롭히다‘라는 뜻의 단어 ‘Tantalize‘의 어원이기도 한 탄탈로스이야기는 기술적 실업의 특성을 정확히 담아낸다. 이 실업을 마찰적frictional‘ 기술 실업이라 부를 수 있다. 마찰적 기술 실업이 나타나는 상황에서는 사람이 맡을 일거리가 있다. 문제는 모든 노동자가 그 일거리에손을 뻗쳐 일감을 차지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마찰‘은 이직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더라도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경제를 커다란 기계로 비유하면 바퀴에 모래가 끼어 부드럽게 굴러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흔히들 이런 환상을 품는다. 기술이 진보하면 성에 차지 않는 지루하고 따분한 업무는 기계가 맡고 사람은 의미 있는 업무만 맡을 터이므로, 일이 더 흥미로워지리라. 기계 덕분에 우리가 일에서 벗어나 "정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무엇인가를 하리라." (이 생각은우리가 자동화를 말할 때 사용하는 바로 그 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로봇이라는 말의 어원은 체코어 robota‘로, 힘들고 고된 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착각이다.
그런데 실업률이 가진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자리의 성격이 아니라 일자리 수에만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경제사가 뚜렷이 보여 주듯이, 신기술은 일거리의 양뿐 아니라 매력도 줄인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대신 precarious(불안정한)와 프롤레타리아트를 합성한 프리케리아트precariat라는 말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말은 임금이 갈수록 형편없이 낮아질뿐더러,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긴장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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