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이 선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내 연구는 ‘그렇지 않다‘는 믿음, 그 선은 넘을 수 있는 선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선한 쪽에 있는이유는 그들이 실제로 결코 시험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익명화하고 공격이 허용되는 상황에서는 대다수가 야수성을 드러낸다.
공동체를 의식한다는것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자기 지역의 재물이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다.
나는 이 모든 것을 30년 전 스탠퍼드 감옥에서의 실험과 결부시켰다. 당시에 가졌던 의문은 이러했다. 선한 사람을 악한 장소에 놓으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바로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함으로써 악이 탄생하는 것이다.(밀그램 연구) 하지만 누군가가 피실험자에게 무엇을 하라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경우도 흔하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있는 곳에 피실험자를 데려다놓기만 하면 된다.
장소가 이길까, 사람들이 이길까? 정답은 장소 대 사람이 1 대 0이었다.
가해자들은 탈개인화, 즉 익명성을 의식하고 있었다. - P93
아부그라이브에서는 누군가 앞장서서 일을 저지르는 사회 모델링이일어났다. 타인에게 열등한 존재, 무가치한 존재라는 꼬리표를 붙이는탈인간화도 일어났다. 개인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책임의 분산도 일어났다.
상황주의적 관점은 비록 때로는 그 생각이 옳을지 몰라도, 우리를 변하게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강력하지만 미묘한 사회적 힘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방치의 악은 그 교도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만이 아니라, 악을 보면서도 반대하지 않아서 그것이 계속되도록 허용하는 사회전체의 사람들에게도 존재한다.
영웅은 그런 상황의 압력에 저항하는 내면의 품성, 내면의 자원, 성격, 강점과 미덕을 지닌 사람이다.
교도소는 비밀주의라는 장막을 걷어야 한다. 언론과 변호사가 교도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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