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슬리스 드엔

나는 수학, 아니 적어도 산술과 수 이론은 오로지 기호 표기 능력과 수량을 나타내고 이해하는 비언어적 능력을 기반으로 한, 점점 더 추상적인 마음의 구축물들로 이루어진 피라미드라고 확신한다.

수는 색깔과 아주 비슷하다. 우리는 움직일 수 있는 독립된 대상으로 가득한 세계에 살기 때문에 수를 추출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에게 매우 유용하다.

나는 수를 위한 언어의 습득이 매우 중요하며, 그 단계에서 문화와 교육이 차이를 빚어낸다고 생각한다.

성차를 비롯하여 수학 능력에 타고난 차이가 있다는 증거들을 다수 검토한 나는 수 능력에 개인별 차이가 나타나는 상당 부분이타고난 재능‘ 의 차이 때문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교육이 핵심이며, 긍정적인 정서가 수 능력의 성공을 추진하는 엔진이다.

수학 천재의 존재는 이 견해에 반하는 듯 보일 수도 있다. 그들의 실력은 마치 딴 세상에 속한 것 같아서 우리와 아예 뇌 자체가 다르다고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태어났을때에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기본적인 재능, 즉 기초적인수 감각, 수 관계에 관한 직관을 가지고 삶을 시작한다. 어른이 되었을때 그들의 뇌가 어떻게 달라졌든 간에, 그것은 성공적인 교육, 전략, 암기의 결과다. 사실 제곱근 구하기에서 여러 자릿수의 곱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실력은 노력할 의지를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배울 수있는 단순한 요령으로 설명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아주 비슷한 뇌를 지니고 삶을 시작한다. 즉 선천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문화를 통해 어느 정도 다듬어질 수 있을 만큼의 유연성도 지닌 초보적인 수 감각을 지니고태어난다.

나는 많은 사회 구성주의자들과 반대로, 수학적 구조는 특정 인류 문화를 초월한다는 가드너의 견해에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인류 문화가 같은 수학적 선율에 공명하는 똑같은 뇌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렇다면 사람에게서는 어떨까? 현재 톡소에 감염된 사람을 대상으로신경심리학 검사를 한 연구 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톡소에 감염되면 좀 더 충동적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넓게 보면,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우리 행동을 훨씬 덜 자율적으로 만드는 다른 미지의 생물학 세계가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보편적인 측면들을 연구한다. 우리 의식 속에서모든 사람이 같은 요소, 같은 능력을 지닌 것으로 판단되는 구조와 적응 형질이 그렇다. 반면에 행동유전학은 전통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연구한다. 예를 들어 지능의 차이, 개성의 차이가 그렇다. 따라서양쪽은 서로 목적이 달랐다.

이해시켜야 할 한 가지는 유전과 개인차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긍정적인 측면을 지닌다는 점이다. 특히 부모의 경우에 그렇다.

교육의 질과 교수법의 질을 제대로 측정하려면, 학생들이 입학할 때는 어떠했고 졸업할 때는 어떻게 변했는지를 측정해야 한다. 부가가치를 측정해야 한다.

인간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이 모든 풍성한 심리적 형질들을 토대로 짝을 고른다는 연구 결과들을 통해서 진화생물학, 성격이론, 진화심리학의 놀라운 융합을 발견할 수 있다.

음악은 개인의 창의성, 운동 제어, 자신감을 비롯하여 구애에 중요한 많은 형질들을 시사한다.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하는지 알려면 어떤 규칙, 즉 일관성을 띤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만, 얼마나 창의적인지 얼마나 혁신적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런 기본 요소와 규칙들을 갖고 놀 수도 있어야 한다. 음악은 그쪽으로도 많은 여지를 제공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데거

이렇게 인간존재가 닫혀 있지 않고 열린 존재라는 뜻에서 하이데거는 다자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Dasein의 da는 ‘열려 있다는 뜻도 된다), 인간은 답답하게 응고된 실체가 아니라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창문과도 같은 존재다.

인간존재, 다자인으로서 우리는 숙명적으로 존재와 존재자를 물을 수밖에 없지만 불행히도 그 근원에는 오직 물음의 형식만 가능하게 하고 답은 없는 무가 놓여 있다. 이것은 명백히 인식의 한계이며 인간의 숙명이다.

인간은 세계 속에 있으면서 세계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하이데거가 인간존재, 곧 다자인을 세계-내-존재라고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 트웬지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은 20대 중반이 된 이 세대에게 불안증, 우울증, 강박증 등 정신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답니다. 전문가들이 이유가 무엇일까 연구해 보니 스마트폰 사용, 특히 소셜 미디어 사용과 관련이 있다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연결이 끊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 소셜 미디어를 통한 끊임없는 비교, 자기와 의견이 다른 타인을 인정하지 못하는 소셜 미디어 또래 집단의 문화 등등. 저희들이 이야기했던 여러 문제들이 모두 10대 때 이들이 경험한 것이죠.

라캉식으로 말하면 실재계, 상징계, 상상계가 있습니다. 상징계는 담론 이성의 영역이에요. 이것이 지금 무력화되었단 말이죠. 그래서 이미지로 구성된 상상계에 대중들이 사는 거예요. 실제 현실에서는 남들 사는 걸 보면서 상처를 많이 받지만, 인스타그램 안에서나마 "나 이렇게 사랑받으며 살아요"라면서 상상계를 만드는 거예요. 지긋지긋한 현실인 실재계에서는 세계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양극화가 계속 심해지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이것을 대면하자니 답답하고 힘듭니다.

실재계에 있는 현실의 문제를 끄집어내서 사회문제화, 이슈화, 어젠다화 한 뒤 그 솔루션을 찾아 나가는 것을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했잖아요. 이제는 언론이나 미디어마저 상상계를 만드는 데 봉사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래야 돈이 벌리거든요. 이렇게 되다 보니 ‘대안적 사실이 등장하는 것이죠.

왜냐면 판단의 기준이 진위(眞僞)가 아니라 호오(好惡)로 바뀌었거든요.

대담 시작할 때 말씀드렸듯이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적 합의가 무너져 버렸어요.

"언어가 말을 한다(Die Sprache spricht." 하이데거의 말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떤 프레임을 받아들이면 계속 그 프레임이 허용하는 말만 하게 된다는 거죠.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라, 뇌에 입력된 프레임이 그의 입을 움직이는 거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이 1개거나 5개거나..
사람마다 견해는 다를 수 있으니
궁금해서 읽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