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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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찾아왔어. 제대로 찾아왔어.


창비교육의 제 1회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꼬리와 파도』는 2021년 체육교사 무경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제자들을 보면서 이 '낯설지 않은 순간'이 자신의 일이였던 1999년도의 청소년 시절을 회상하게 되고, 그때의 도움이 꼬리가 되어 파도처럼 다시 현대의 연대로 이어지는 '모두가 지켜주고자 하는 이야기'이자 '지켜주는 이야기의 책이다.

이 책은 현재의 이야기로 시작해 과거의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다시 현재의 이야기로 돌아오는데, 이런 액자식 구성을 통해 시대별 청소년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폭력의 고리 역시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담아냈다.

교사와의 갈등에서는 세대간 인식 차이 및 권위의 악용과 맞서고, 이성 친구와의 갈등에서는 청소년들의 성문제를 다루고, 동성 친구와의 갈등에서는 사이버/물리적 폭력과 보이지 않는 서열에 대해 다룬다. 즉 다양한 개성을 지닌 각각의 청소년이 저마다의 위기와 시련을 겪으며 폭력과 권위에 맞서며 연대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친구들과 같은 박자로 뛸 때의 발소리.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뭐든 될 수 있을것 같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넓고 따뜻하고 단단한 집을 짓자.


축구와 태권도를 잘하여 여러모로 인기 많은 무경, 학교 폭력과 왕따로 강해지고 싶었던 예찬을 중심으로 주변에 저마다의 상처를 앉고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기 위해 애쓰는 친구들이 등장한다.

세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적인 갈등과 위기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생생하게 환기시킨다.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사건들은 우리가 보고 들어왔던 과거이자 바꾸지 못했던 현실이다. 결국 상처 입는건 청소년들이였고, 독자들은 이들의 성장을 바라면서 독자 자신의 성장의 발판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여고생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스쿨 미투 사건' 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의 여고생 버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 속에서의 일상은 성희롱과 언어폭력, 성추행은 만연하게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때문에 '내가 만만하니까' '그런 일'을 당하게 되는 것 같고, 성희롱과 차별 발언 제보를 한다 한들 조사를 받는 교사는 '친근함의 표현'이었을 뿐이였으며, 조사를 받고 돌아온 교사는 자신을 지목한 사람을 찾아 보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내놓기 쉽상이다. 그런 분위기라면 주변 사람들은 되려 '피해자'에게 그게 뭐가 '자랑'이라고 들춰내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게 되었기에 '그런일'들은 흔하게, 사라지지않고, 계속해서 일어났다.

억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지만, 조용히 지나가는것만이 답인것 같은 날들이 말이다.

나만 그런것도 아니지만, 나만 시끄럽게 굴일도 아닌것만 같은 날들이 말이다.


우리의 몸을 버리지 않으려면, '알아서 조심'해야 하고, 누군가에 의해 침범당한 것은 '개인'의 처신 문제인것 처럼 여겨지게 했다. '쯧쯧쯧, 조심좀 하지'라는 시선으로 '네'탓을 하는 것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고, 권리를 빼앗고, 인권을 빼앗는 2차, 3차가해로 이어진다는 것을 모른채.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 것인가.

잘못한 사람은 있지만 잘못한 사람이 저지를 일을 당한 사람의 그 다음은 없었다.


학교 안을 둥둥 떠다니다가

어느순간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무방비한 아이들을 찌르는 말들, 성차별적이고 성희롱인 말들.

그 말을 한느 사람들과 그들을 방관하는 사람들.

그런 말들과 사람들을 수면위로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수면 위로 들춰내고 싸우는 일은 외로웠고 주변에서 등을 돌리는 일은 흔한 일었다.

그럼에도 목로리를 내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분명 주변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또다른 용기를 퍼트리기 마련이다.


넌 잘못한 것 없다.

잘못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있었던 일이 없어지진 않아요.

아이들은 싸움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쓸데없이 흥분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목표를 위해서 차분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외로웠으나 의연했고, 두려웠으나 눈감진 않았다.

많은 것을 바꾸진 못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건 아니었다.


이들은 서로 품고 있던 상처를 드러내어 '너의 개인의 잘못이 아니며, 지나간 너의 상처와 앞으로 다가올 비슷한 상처로부터 지켜주겠다'는 연대의식으로 아픔을 나눈다.

스쿨 미투의 꼬리는 포스트잇이였다. 멀리서도 볼 수 있게 With you 라는 글자와 혼자가 아니야, 지켜줄게라는 글자가 나타나며 번지기 시작했다. 이 책 속의 꼬리는 유등축제에서 나타났다. 자신과 친구들이 겪은 일들을 리본에 적어 유등 축제장에 전시된 유등에 몰래 매달아 긴 파란 꼬리를 이루었고 큰 파도처럼 인터넷 카페와 언론의 관심을 얻어내면서 연대의 긍정적인 목소리로 앞으로 보다 올바른 길로 바로잡아가며 나아갈 수 있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용감한 일을 하려면 용감해져야지.

우리는 마음을 꼬리라고 불렀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꼬리의 파도는 결국, '작지만 용기 있는 행동'이 결국 '변화'를 이끌어 갈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물결의 흐름으로, 우리의 지나치지 않는 실천력에 대한 호소이다. '나라도' 귀기울여 들어주겠다. 지나치지 않겠다.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잘 얘기했다고 다독이며 다정한 눈으로, 다정한 목소리로, 다정한 손길을 내밀어 주겠노라고. 그리하여 앞으로도 이어질 '성장과 연대의 가치'를 믿고 있노라고.

'우리'가 지켜줄게.

혼자서는 못하지만 우리가 되어 너를 지켜줄게.

친구들의 목소리에 응하는, 그런 마음으로.

'나도' 지켜줄게.


그리고 그 "지켜줄게"의 파도의 힘은 소설의 맨 처음 대사이기도 했던 '제대로, 잘 찾아왔어"라는 말과 다시한번 맞물리며 함께 다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대로 계속해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개개인의 목소리는 비록 작지만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성장하길 응원하는 친구와, 기꺼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어른과, 세상에 울림으로 퍼질 수 있도록 공동체가 모여진다면 세상은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한걸음씩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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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수호대 꿈꾸는돌 35
김중미 지음 / 돌베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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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이후 20년, 이른바 『대포읍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는김중미 작가의 신작 『느티나무 수호대』가 출간되었다.

이주민들의 가족들의 삶을 담은 이 책의 간단한 줄거리는 제목 그대로이다. 느티나무의 보호를 받던 친구들이 느티나무를 수호(守護: 지키고 보호함)하고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와서 인간사가 얼마나 복잡한지,

사람으로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지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한 곳에서 서서 수고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내가 부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도 봄부터 가을까지 쉼없이 일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땅 밑에서 하는 분주한 일들에 대해 잘 모른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도 인간 못지 않게 복잡다단하다.

우리는 주변의 다른 생물들과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왔지만

때때로 우리를 해치는 존재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그런것 처럼.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 꽉 들어찬 '숲'은, 나무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풀, 덩쿨을 비롯하여 작은 나무와 큰나무, 작은 동물과 큰동물들이 땅에서 어울렸으며 먼나라까지 여행갔던 철새들과 내그내새, 작은 벌레들까지 계절과 어울어지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숲의 속성이다.

지금은 비록 덩그러니 언덕 위에 홀로 남아 있는 느티나무가 하나 있다. 이 느티나무가 서있는 언덕을 이루는 '대포읍'이라는 마을은 베트남, 미얀마, 중국, 서아프리카 등 다문화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느티나무는 수백년전부터 이곳에서 자리를 마을 사람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마을을 지켜왔다.

당산나무, 큰나무, 해나무라는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나무는 대포읍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애어른 할것 없이 추억이 얽혀 있다.


나는 대포읍의 당산나무로 홀로 살아남은 것이

자랑스럽기보다 미안하고 아프다.

수시로 숲의 일원으로 살 때를 그리워했지만

사람들 속에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가장 평화로운 때는 아이들을 누여놓고 간 엄마들을 대신해

산들바람을 불어 줄 때였다.

아기들을 돌보며 나는 마을 공동체와 유대감을 느꼈다.

조금씩 도시의 소음에 길들여지고,

어둠이 사라진 밤을 견디는 법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도시의 속도를 아직 따라가지 못한다.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홀로 있지만 '숲'이라는 공동체를 이뤘었고, 지금은 '마을'과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 느티나무에는 판타지적인 비밀 한가지를 가지고 있다. 50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의 정령 '느티샘(홍규목)'이라는 사람의 모습으로 대포읍의 대포초등학교 기간제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것이다.


나아가 아이들을 느티나무 안쪽의 신비한 공간으로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라는 환대하며 맞이하기에 아이들에게 있어 '소중한 곳' 이 될 수 있었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서로 연대하며 자신들이 받은 소중함을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하기도 하면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다문화 꺼져라, 다문화로 감성팔이하냐", '"중국으로 꺼지래", "그런말 나도 똑같이 들었어. 아프리카로 가라는 말 한두번 들은게 아니야" 등의 말을 많이 들어왔던 친구들이였다. '다문화 아이들'을 '너희'라고 말하는 것에도 결코 다채롭고 다양하다는 뜻이 아닌 '루저'집단을 말하는 것만 같이 아파하던 시절도 있었다.


고맙고, 대견하다. 견뎌줘서. 너는 참 강한 아이구나

반가워. 언제든지 와서 쉬다 가도 돼.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환대 받는 기분, 처음 본 나를 환대해줬어.

환대해 준 덕분에 용기가 났거든.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고맙다, 대견하다, 반갑다는 말은 어려운 말이 아님에도 자주 건내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를 반갑게 맞이해 주며 정성껏 후하게 대접하면서 존재하며 견뎌냈을 애씀과 대견함을 인정해주고, 지금껏 힘내서 살아와줘서, 그리고 존재만으로도 고맙다는 이 따뜻함이 가득 담긴 말은, 온 몸으로 '환대'받는 기분 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환대의 경험은 '인정'에서 나아가 '응원'이 된다. 앞으로의 삶에도 살아갈 '힘' '용기'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용기는 전달되어 퍼지게 된다. 이는 '희망'이 되어 더 나은 삶을 향해 세대와 세대를 이어준다.


마을의 재개발추진으로 느티 언덕이 통채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언제든 끝이 있는 법이야" 라며 계속해서 사라지던 숲과 자신의 가족과 조금씩 변하고 있던 주변 환경 속에서 이미 자신의 끝을 받아들인 느티샘과는 달리 아이들은 샘을 지키고 싶어 한다. 재개발과 느티샘의 이야기를 듣고 망설임 없이 '레인보우 크루' 2기를 만들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티 언덕을 알리고 지켜내고자 한다.

"이번 청소년 댄스 대회는 온라인으로 열린대. 각 팀이 동영상을 찍어 올리면 거기서 열팀을 뽑아서 한국 결선 대회를 열고 유튜브로 중계한대. 그때 우리 느티나무 얘길 하려고."

BTS는 러브 마이셀프 캠페인을 통해 환경, 평화 등의 주제를 많이 알렸던 그룹이다. 때문에 BTS의 노래와 춤으로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같고 같이 목소리를 낸다는 목표의식을 갖고 이들은 '다문화 청소년 댄스 그룹'인 '레인보우 크루'를 다시한번 만들어 내고자 했다. 춤을 통해 이전과 달라진 자신감 있는 모습과 그 자신감과 용기가 이어질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하며 스스로의 능력을 끌어 올리면서도 공동체 문화까지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린 서로 다 다르지만 그것이 차별의 이유가 되진 않아요.

이렇게 대포읍에서 서로 차이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거예요.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레인보우 크루 친구들은 우리 모두 '동등'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으며 '함께'하는 책임감, 우정, 연대 의식으로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오래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기대거나 일방적으로 빼앗기보다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 받으며 살아왔다.

위기가 닥치면 나 이외의 존재에게 더 집중하고 살핀다.

위기일수록 이웃과의 협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들만큼 슬기롭고 이타적인 존재는 드물다.

내게는 그것만이 희망이다.

나는 아직도 절망보다는 희망을 더 믿는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 안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힘을 믿는다.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느티나무 수호대』 의 느티샘과 대포읍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기대거나 일방적으로 빼앗기보다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 받으며 살아왔다.' 일방적인 의존이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지지와 버팀목이 되어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줄 알며, '함께' 살아갈 줄 안다. 느티샘에게 받았던 다정함을 기꺼이 타인에게 베풀고 공유하며 키워나가는 모습은 아직은 우리에게 누구도 다스리지 않고 살아가는 연대의 힘을 믿고싶게 만든다.


나는 사람과 함께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

누구도 다스리지 않고 서로 협력해가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느티나무수호대 #돌베개 #김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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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서 배워라 - 해나 개즈비의 코미디 여정
해나 개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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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업 코미디언 스타 해나 개즈비만의 농담이 담긴 에세이 『차이에서 배워라』가 출간되었다.

1997년까지 호주의 태즈메이니아에서는 동성애가 범죄였다. 그런 '태즈메이니아 출신의 뚱뚱하고 뭘 해도 어색한 레즈비언' 인 그녀는 한때 ‘자기비하 유머’를 구사하는 코미디언이었다.

사회적 약자들을 서슴없이 웃음거리로 삼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그러한 기존의 코미디 문법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그렇게 넷플릭스에서 방영하게된 스탠드 업 코미디 쇼가 바로 「Nanette」(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이다.


이제 해로운 농담은 끝내야 한다.

그런 코미디는 하지 않겠습니다.

스텐드업 코미디 쇼, 나네트 中


스스로 '코미디 역사상 가장 의도적으로, 철저하게, 웃기지 않는 한시간 짜리 무대'이자 '스탠드업 카타르시스', '트라우마 변환 실험' 이라고 평가한 이 무대는, 미투운동이 한창이던 시대 한가운데에 투척되었다. 가부장제를 비웃는 장광설을 시작으로 이 속에는 복잡한 모녀관계, 커밍아웃, 트라우마, 우울증, 성인 ADHD와 자폐 진단, 자기혐오, 그루밍 성폭행, 술과 마약 중독, 젠더퀴어라는 성수자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차이를 포용하지 못하고 다양성을 억압하는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신랄한 코미디를 선보인다. 또한 창작자로서의 작품 창작 과정 등에 대한 경험을 섬세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경험과 상처들을 과감없이 드러내며 이를 농담으로 승화시키기에 우리는 그녀의 노련한 입담에 웃음, 분노, 성찰, 용기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 제 생각에 저의 문제는, 코미디때문에 아직도 청년기에 머물러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이 매번 농담이죠.

농담과 달리 이야기에는 3가지가 필요해요. 서론,본론,결론.

농담에는 2가지만 필요하죠. (배경과 펀치라인이 들어간) 서론, 본론이요.

저는 커밍아웃에 대한 코미디쇼를 진행하면서,

가장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성장의 시기를 상처로 남기고 농담으로 매듭짓고 말았어요.

그 이야기가 원동력이 되어 명성이 쌓였지만 결국 그건 농담으로만 남았고, 그 농담은 제 기억을 희석했죠. 제가 현실에서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는데에는 역부족이었답니다.

펀치라인엔 상처가 필요해요.

펀치라인엔 긴장이 필요하고, 긴장은 상처로부터 나오거든요.

저는 동성애가 범죄로 치부되는 도시에서 자라면서, 저 자신까지 혐오하게 되고 말았죠.

뼛속까지 혐오했어요. 자존감은 외부로부터 오는데 한번 심어주면 울창한 숲이됩니다.

아이는 중력처럼 자기 혐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죠.

그렇게 수치심에 숨어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벽장 안에 숨어있었습니다.

숨는다는건 눈만 가릴뿐 수치심을 막지 못해요.

하지만 저는 제 이야기를 '제대로' '온전히' 전달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무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걸 저는 큰 대가를 치르고 배웠거든요. "


'나의 커밍아웃을 가지고 코미디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성장기의 아픈 경험을 상처로 남기고 농담으로 매듭지어버렸습니다. 내 이야기가 소재가 되어 반복되다 보니 내 실제 기억을 흐려버렸어요.' 라는 그녀의 말 속에서 자신의 소수자성을 농담거리 소재로 삼으며 코미디를 이어온 그런류의 농담이 결국에는 자기 존재를 해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면서, 상처와 수치심을 진정성 있게 털어놓으며 진정성 있는 새로운 코미디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새로운 농담을 발명했다.


해나 개즈비는 2006년 호주 '맬버른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으며 10년 넘게 영국과 호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던 스타였다. 「Nanette(2018)」로 코미디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평을 듣던 그녀는 그해 에미상 버라이어티 스페션 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다른 나라에도 유명해 질 수 있었는데, 미국의 어느 토크쇼에서 '하루 아침에 유명해지니 어떤 기분이냐'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의 무례함이 아니라, 뭔가 아시아인, 흑인, 성소수자, 여성, 흑인등에 대해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들에 대한 사전 조사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잣대로 판단하는 일종의 '주류 문화'의 거만한 시선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 책은 해나 개즈비의 비 전형적(atypical)인 두뇌가 들려주는 독특한 방식의 이야기 이다. 엉뚱하고 신선해서 도무지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결말은 어떻게 마무리 지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입담'이 담겨있다.

일본에는 '만담'이, 미국과 영국에는 '스텐드업 코미디' 라 장르가 우리나라에게는 사실 크게 익숙하지는 않다. '토크쇼' 정도로 생각하면 될런지도 모르겠다. 이번 책을 계기로 나네트를 챙겨보았는데, 뮤지컬이나 콘서트가 아닌 단 한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서서 한시간 동안 '말'만 하는 것을 보기위해(오락 도구가 오직 '언어'뿐) 그 비싼 티켓팅을 하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가득 매울정도로 사람들이 모이는 '스텐드업 코미디'가 우리 문화에 잘 정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마디 한마디 할때마다 꺄르르르 웃어주는 청중들의 모습도 신기했다. 처음엔 영어권의 농담과는 개그코드가 잘 맞는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몰라했지만, 중반부쯤부터는 그녀의 몇가지 말에 '오 좋은 말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마지막엔 '스탠드 업 코미디란 이런거구나' 라며 적응 하게 되었다.

미술사학을 전공했던 그녀가 '남성들이 부흥시켰던 예술'로 인해 미술관에 발가벗고 있는 여자들에 대한 불편한 심리와 그속에도 레즈비언은 없었겠지 하는 생각, 고흐의 약물 복용과 예술의 상관성이라던가 피카소의 큐비즘과는 별개로 여성 편력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줄때는 매우 흥미롭기도 했다.


"(미투시대 이후) 지금이 격변의 시기라는거 압니다. 처음으로 주류에서 벗어났으니 당황했겠죠. (남성) 여러분도 이제 새로운 롤모델을 찾아야 될겁니다.

제가 인간대 인간으로 드리고 싶은 조언은, 방어적인 자세를 버리라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여유가 생기면 유머를 배우라는거죠.

웃음은 사람에게 좋은게 사실이에요. 긴장이 완화되죠. 웃음은 전염성이 짙어요.

사람들 많은곳에서 함께 웃으면 긴장의 완화력도 더 커지죠.

다른 사람들게 함께 웃는겉이 혼자 웃는것 보다 낫기도 하고요.

긴장은 인간을 고립시키고, 웃음은 소통의 장이 되어줍니다."

그녀는 웃음으로 소통하는 '웃음의 힘'을 믿으며 어떤 존재도 소외하거나 모욕하지 않는 방식으로 다양성의 가치와 다름을 존중받을 권리에 대해 논하며 자신만의 웃음 코드로 쉬온 농담 뒤에 존재하는 진실을 표현하려 했다. 그녀의 진솔함과 솔직함을 갖춘 이야기의 힘 덕분에 성소수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은 물론, 인생에서 실패를 겪어보거나 세상과의 불화로 자기 자신을 쉽게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그녀의 이야기에 웃고, 분노하고, 공감하며 대중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속에는 어쩌다 이 모양으로 태어나 이해할 수 없는 사회에 내던져져

감당하기 벅찬 생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연약한 인간이 있다.

고통 한가운데에서도 어떻게든 죽지 않고 버텨가며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어제보다 나아지려 몸부림 치는 사람.

이걸 생존본능이라 해야 할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실은 우리 대부분이 이렇게 살고 있는것 같다.

해나 개즈비, 『차이에서 배워라』 서문 해나 개츠비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인 이유 中


우리가 타인의 삶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이나 영화 등의 창작물로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이유는 내가 겪은 생을 기준으로 비슷한 삶의 모습에 '공감'하거나, '홀로 있지 않음'에 안심하며 '연대'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한 인간을 깊이 알아가고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가장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깊이 있게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우리는 외롭게 홀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는 매일 우울과 자책 속에서도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하고, 일을 하고, 사랑을 주고 받기 위해 노력하고, 아파하고, 치료하고, 그러다가도 가끔은 세상이 잠깐씩 환해져 행복해지기도 하고, 제자리걸음인것 같다가도, 어느순간 돌아보면 멀리 걸어온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렇게 삶의 모양은 제각각이여도 문득 드는 삶에 대한 생각은 비슷하다. 그럼에도 우린 '솔직'하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과 생각들을 다른 곳에서 찾게 될 때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되는것 같다. 유머와 분노의 그 어딘가 쯤에 존재하는 이 '블랙 코미디'에서 우리는 수치심을 성찰로 바꿀 수 있는 용기를 배우게 된다.


해나 개즈비는 '솔직함'이 가지고 올 역효과를 반복적으로 우려하고 있다.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너의 이야기가 결국 아니며 공감을 가져올 순 있지만 모든 트라우마들이 하나로 연결될 수는 없다고.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해 나간다.

이 책은 크게 두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코미디언이 되기 전의 초년 인생과 코미디 업계로 진출하기로 한 이후의 이야기다. 크게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성장기, 방랑과 자기비하의 세월, 신경다양인으로의 진단과 수치심에 대한 받아들임, 새로운 농담을 발명하며 젠더 퀴어 자폐인의 코미디를 만들어 내기, 나네트:나의 이야기의 완성까지의 이야기 단계를 밟는다.


예술가는 시대 정신을 창조하지 않습니다.

시대 정신에 응답하죠.

스텐드업 코미디 쇼, 나네트 中


그리고 그 시대정신에 응하는 예술가에는 '블랙 코미디'를 선사하는 코미디언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자랄 때 우리집 모든 여자는 '바늘'을 사용했다.

나는 그 '바늘'에 매혹되곤 했다.

바늘은 '마법'을 만들어냈다.

바늘은 구멍이나 찢어진 곳을 '수선'할 때 사용했다.

잘못을 '용서'하겠다는 뜻 같았다.

그리고 절대 공격적이지 않다.

'바늘'이지 '핀'이 아니니까.

루이즈 부르주아


말은 '바늘'같아서 '핀'처럼 사용하면 상대를 찔러 아프고 공격적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실을 꿰어 서로에게 이어주며 벌어진 상처를 '수선'하여 치유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유머' 한 꼬집이 더해지면, 우리는 웃으며 인생을 말할 수있을것이다. '그때'의 그 무엇이 '지금'의 그 무엇이 되었는지를.


차이에서 배워라를 읽으며 깊은 분노를 일으킬 만큼 웃긴 안티 코미디 를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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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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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어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주변이 어둑해지고,

수조 앞 유리벽에 굉장히 아름답고도 복잡한 지문 그림들이 남는다.

한번씩 이 그림들을 한참 들여다 보며 연구한다.

각각의 그림이 모두 다르다. 지문은 고유한 형태를 지닌 열쇠와 같다.

나는 지금껏 본 그림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

나는 내 수조를 들여다본 모든 인간의 얼굴을 기억한다.

유리에 남긴 지문만으로 정확히 누가 내 수조를 만졌는지 안다.

듣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들을 수 있다.

보고자 한다면 내눈은 더 없이 정밀해진다.

셀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中


문어의 수명은 약 1460일(4년)이다. 수조에 '감금'되어 수명을 세고 있는 마셀러스와 누구도 꼼꼼하게 청소하리라 기대하지 않지만 늘 최선을 다하는 일흔살의 야간 청소부 할머니 토바.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에 의해 수조에 갖힌 거대 태평양 문어와 청소하는 할머니의 종을 뛰어넘는 유대감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은 동물들을 우리나 수조에 가두고 묶어두지만, 인간 역시 실체없는 어딘가에 갖혀 있고 무언가에 얽매여 있는건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외롭고 고립되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반대로 누군가에게 언제든 기대고 연대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의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토바는 수족관을 탈출하는 모험을 즐기던 마셀레스가 곤경에 처했을때 구해준적이 있었고, 마셀레스는 토바가 잃어버렸던 열쇠를 돌려주며 그녀의 상실에 위로를 전했다. 그는 그녀를 은둔속에 가두고 한동한 삶을 지배한 슬픔이 그녀를 더 끔찍한 곳으로 이끌게 될까 늘 노심초사해 했다. 그녀 역시 늙은 문어의 야밤의 여행에 행여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마음이 가닿았기 때문일까, 토바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문어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현실적'인 토바는 수조 속 생물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위로 받았고, 그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바의 부상으로 대신 일하게 된 새로운 청년 청소부 '캐머런'에게 그와 친구가 되는 법을 알려주기로 한다.


"뜻밖의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라는 말로 설득하며 마음을 여는법과 기다려 주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똑똑한 우리의 자이언트 문어는, 청년과 할머니사이의 관계를 확신했다. 그렇게 감금1341일째,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It won't be long now)라는 농담을 들으며 웃지 못하는 문어이지만 피할수 없는 자신의 끝을 예감하며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똑똑한 문어 마셀러스를 보면서 '문어'에 대해서 찾아봤다.

마셀러스의 모험심 많은 성격, 사람을 기억하고 구분하는 능력, 심장이 세개라는 혼잣말, 단독 수족관 생활, 야행성으로 밤에 수족관을 탈출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는 지능과 문제해결능력 등 모든 것이 문어의 일반적인 특징에 해당했다.

작가의 완전한 상상이 아니라 문어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에서 비롯된 픽션이였던 것이다. 아시아권에서는 문어는 식재료 정도였지만, 미국이나 유럽쪽에서는 영리하고 꺼려지는 동물로 크라켄 등의 괴물로 묘사되며 잘 먹지 않았다는 정보도 놀라웠다. 그래서 더욱이 문어에 대한 상상력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생애 주기별로 인간을 봤지만

그들은 부인할 여지 없이 언제나 인간 모습 그대로였다.

성장하며 몸집이 커지고,

삶의 끝에 가까워지며 다시 작아지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네개의 팔다리와 스무개의 손발가락, 머리 앞쪽에 달린 두개의 눈은 변함없다.

인간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기간은 대단히 길다.

신체적으로 자립해나가도

기이하게도 그들은 사소한 일로 엄마나 아빠를 부른다.

어린 인간은 분명 바다에서 혹독한 실패를 맛보게 될것이다.

셀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中


수족관에서 사는 마셀러스는 낮에는 인간을 구경하고 밤에는 자신만의 모험을 즐긴다. 그가 보는 많은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 연인, 친구 등 다양한 군중의 모습으로 나타날것이다. '단독 생활을 하는 육식동물'인 탓에 '다른 문어'들과도 접점도 없는 문어는 부모 자식 세대 간의 접점도 없다고 한다. 수컷은 교미 후 죽거나 암컷에게 잡아먹히고, 암컷은 산란 후 내내 알만 품다가 죽는다. 따라서 모든 문어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홀로서야 하기에 부모와의 교류는 커녕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것이다. 문어의 생애와 특징을 알고 글귀를 다시 읽으면 인간의 혹독한 '실패'를 상상하며 하찮게 대하는 시선이 아닌, 어쩌면 한가득 안고 있는 '궁금함'이 서려있는지도 모른다. 마셀러스 입장에서는 '의존'이 강한 인간의 모습은 마냥 신기하면서도 한심해 보였다기 보다, 어쩌면 '의문'과 함께 부러움의 마음이 자리잡아있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외롭다.

내 비밀을 나눌 누군가가 있다면 외로움이 덜해질지도 모른다.

비밀은 어디에나 있다.

어떤 인간들은 비밀로 가득차있다.

최악의 의사소통 능력, 그것이 인간이란 종의 특징인 듯 하다.

청어조차 자신이 속한 무리가 어느방향으로 가는지 알며

그에 따라 헤엄쳐 나가는데

왜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에게 속 시원히 말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수백만개의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걸까?

셀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中


바다 속에 깊숙한 곳곳에 숨어 있는 비밀들은 바다는 잘 품어주고 있다. 바다가 품고 있는 비밀들과 어울어진 해양 생물이여서 일까, 문어의 눈에는 다른 의미에서 비밀을 많이 품고 있는 인간이 그저 신기하다. 그는 그 비밀을 나눌 누군가 없어서 외로운데 인간은 비밀을 만들어 숨기면서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해 질 수 있는데 쓸 수 있는 수십개의 단어들을, 거짓말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최악의 의사소통을 지녔다고 말하는 이 풍자적인 멘트는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이 드러나는 듯도 보였다.


정말 행복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말하는 것이 진짜 행복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 지식으로 나는 '만족감'과 비슷한 무언가를 경험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지만 '고통의 일시적인 감소'다.

아, (모르는게 복이야라는 말따위의)'무지'로 '행복'을 얻는 인간이란!

동물의 왕국에 무지는(상어의 존재를 모르는 청어같이)곧 '위험'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간도 무지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내눈에는 보인다.

매일 경험하는 일이다.

셀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中


그렇게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마셀러스는 '행복'에 대해 논한다.

마셀러스는 '차라리 비극이 짧은 간격으로 연이어 닥치면 먼저 맞닥뜨린 날것같은 고통을 유용하게 활용해 한번에 상황을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들, 남편, 오빠의 상실을 연이어 겪은 토바가 행복하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상실함으로써 겪는 절망의 깊이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토바 역시 알고 있었다. 스마트 쿠키 마셀러스는 친구 토바의 슬픔을 안다. 그 상실에 위로도 건낸다. 토바와 마셀러스는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두사람의 닮지 않은 외로움과 상실(맞이한 상실과 다가올 상실)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기회를 몇번이나 제공했는지 삶이 기록하고 있다면 밀린 기회들이 아주 많이 쌓여있을 인간들은 기회를 놓치고, 실수를 미화하고, 외로움을 자처하고, 솔직하지 못할뿐더러, 무지로 인해 상처받는 안쓰러운 존재다.

동물의 눈에서도 뻔히 보이는 것들을 우리는 많이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어가 주인공이 되어 인간과 교감하는 이야기가 신선했다.

마셀러스가 화자가 되어 말하는 부분은 오만한것 같으면서도 유쾌하고, 결국 유대감과 '정'을 보여주었기에 읽는 독자 역시도 '정'이 간다.

진심으로 모두 행복해졌으면 바라는 힘이 있다.

책 표지에 나와있는 '상실이라는 주제안에서 우리의 외로움이 다른 존재와 이어졌을때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케빈 윌슨의 서평에 크게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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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샤 창비청소년문학 117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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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에서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를,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에서는 탈북 여성을,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에서는 장애인을, 그리고 『버샤』에서는 난민을. 창비에서 최근 나온 신간들은 모두 주류에서 다소 벗어난 소외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아직 내리지 않은 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아직 짓지 않은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아직 마시지 않은 당신 술에 벌써 취하였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전쟁에 상처 입고 죽었습니다.

상상과 현실의 차이를 나는 더 이상 모릅니다.

그림자처럼,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13C 페리스안 시인 루미,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소설 중간에 나오는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라는 시는 이러한 난민들의 입장을 짧고 강렬하게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표지는 히잡을 쓴 여성이 출국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두가지를 알 수 있다. '이란', '공항'

그리고 그 두 단어는 영화 터미널의 모티브가 되었던 나세리를 떠올리게 한다. 작년에 얼핏 지나가는 뉴스로 공항을 떠났던 나세리가 결국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실제로는 이란의 왕정 반대운동으로 추방당한 나세리가 난민신청을 하여 영국으로 가던 도중 프랑스에서 난민서류를 도난당해 무국적상태가 되어 터미널에 머물게 되었지만, 영화 터미널에서는 톰행크스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모국에서 쿠테타가 일어나 서류가 무효화 되어 입국을 거부당하면서 난민신세가 되어 뉴욕 공항에 머무는 이야기로 그려졌다.

실화건 영화건 모두 난민이 되어 공항에서 머무는 이야기로, 이 소설 속에서의 이란 가족 역시 아직 영토구역이 아닌 공항에서 한 난민 심사 신청이 효력을 갖지 못하고 불회부결정이 나면서 공항에서 머물게 된 이야기를 다룬다.


생활이 곤궁해서, 전쟁이나 천재지변의 재난으로 어쩔 수 없이, 종교나 사상 등의 정치적 이유로 자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집단적 망명자, 이재민들을 "난민"이라 한다.

거대한 성이자 화려한 시장통 같은 "공항"은 사람들이 여행 등으로 멀리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엇갈리며 오가는 사람들로 닫혀있으면서도 열린 공간이자 설렘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우리의 마음이 서로에게 가 닿았으니

우린 이미 국경을 넘어선 거예요.

표명희 『버샤』 中


'국경'과 '마음'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 대화는, 이 책이 '난민'과 '공항'에 관한 이야기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난민 인정 심사를 볼기위해 기다리던 중 세계적 전염병 유행으로 공항이 폐쇄되고 텅 빈 출국장에서 생활하는 버샤 가족들을 통해 공항의 재발견과 난민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져준다. 표명희 작가는 『어느 날 난민』이라는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무슬림 가족들이 난민 심사를 위해 공항에 체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소설『버샤』로 써냈다.


뱅크시가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남긴 벽화 '발레리나'처럼 무모하지만 경쾌하고 매력적인 창작물에 감명받은 작가는 버샤 역시 내전 중 실어증에 걸렸지만 공항에 머물면서 무엇을 보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문제에 직면하여 어떻게 목소리를 찾아가게 되는지 그 과정 속에서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쿠란에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이 엄연히 나와있는데도 '남녀 유별'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듯 소외된 무슬림의 딸들은 그런 풍토에 적응해 오며 자유를 모르고 살아왔기에 불의와 구속도 자각하지 못하는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무슬림 '여자'로 길들여 온 결정적인 수단이 히잡이라는 생각에 히잡을 싫어하던 버샤는 달랐다. 이슬람을 사랑하면서도 '일방통행'처럼 무슬림 딸들에게 하나의 길만 주어진 가부장제, 남자는 가해자여도 거리낄게 없지만 여자는 피해자여도 죄인이 되는 이슬람 문화는 과감하게 비판할 줄 아는 독립적인 성향의 버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익명의 '난민'이 아니라, 정체성 고민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인권에 대한 환대의 가치를 깊이있게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줄거리는 크게 난민 가족 버샤가족이 어쩌다 난민이 되었으며 공항 출국장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전반부 이야기와, '한국판 터미널'로 난민을 주제로 기사화 되었다가 점점 버샤의 '개인적 사건'에 초점을 맞추며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기사로 인한 갈등, sns의 파급력, 인권변호사와의 만남, 진우와의 로맨스를 담은 중반부 이야기, usb 편지, 교회 바자회, 코로나로 인한 공항 폐쇄, 버샤의 '개인적인 사건'에 숨겨진 반전과, 목소리를 되찾으며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연을 자신의 목소리로 드러내며 극복하려 용기내는 후반부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자칫 잘못하면 무거울 수 있는 주제들을 어린 버샤와 더 어린 버샤의 동생들의 시선으로 그려나갔다는 점이다.

'난민 수용소에서는 난민처럼 있어도 되지만 공항에서는 이용객처럼 있어야 한다'라는 규칙아래 '난민 인정을 간절히 바라는 난민'으로서 국민도 아니고 난민도 아닌 존재로 공항에서 불편하게 지내야 하는 버샤 가족.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머물 곳을 찾지 못해 정처 없이 떠도는 유렁'일 지언정 '난민 캠프에 비하면 호텔급'인 공항은 마냥 놀이터처럼 그려졌다. 수많은 면세점을 보면서 놀이공원이나 백화점에 놀러온것 같은 기분으로 게이트를 누비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수'가 쏟아지는 화장실을 내집처럼 드나들고, 여행에 들뜬 사람들이 탑승 게이트에서 잃어버리고 간 물건들을 주워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던 공항의 모습을 '문화적 차이'라는 관점과 '어른과 아이의 차이'라는 큰 틀 안에서 색다른 시점에서 관찰되고 묘사된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흥미로운 관점 두번째는, 이 중동 아랍소녀와 교류하게 되는 공항 비정규직 근무자 진우(J)가 버샤와 가깝게 지내면서 중동 현대사 공부를 비롯하여 중동 문화에 대해 알아가고 우리와 가깝게 느끼는 장면들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건 그 사람의 '배경'과 '환경'도 함께 다가온다는 것이기에, 진우는 버샤가 속해있는 문화를 우리와 다른, 먼곳의 이야기가 아닌 밀접한 교집합 관계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렇게 진우와 진우 친구를 통해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대한 인식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지와 입장 차이 까지도 폭넓게 다룬다.


그리고 우리의 통념, 상식, 편견 들에 대해서도 친구들과의 의견다툼으로 다루면서 거꾸로 우리 사회에 적용시켜 보도록 하는 화법이 이 자칫 사회적인 문제로 무겁게 다룰 수 있는 이야기를 무겁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큰 역할을 한다.



반항,분노에서 시작한 혁명은 결코 성공 할 수 없어.

그건 사랑에서 출발해야한단다.

사랑의 힘으로 넘지 못할건 세상에 없단다.

표명희 『버샤』 中


더욱이 이야기는 무겁지 않도록 다루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포용, 연대, 영향력, 그렇게 결국 '사랑'으로 흘러가게 된다.


버샤가 버샤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스스로 말하게 되기까지 주변의 영향력이 컸다. 그리고 버샤는 이제 그 영향력을 다시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할일을 찾았어요"라는 J의 말은, 이 책으로 우리가 할 일을 찾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함께 부딪혔던 여러 난관과 편견과 소수목소리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모두 포함하여 이제는 생각을 접고 우리 역시 실천할 때다.

섣부르지 앓게 차분하고 치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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