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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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체크 말체프스키Jacek Malczewski  /죽음 Death 1902


얼마전 폴란드 전에 갔을때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작품중 하나가 야체크 말체프스키의 <죽음>이었다.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갔었는데 머리속에서 그림이 해석되자마자 좀 충격적이라고 해야 하나, 감명이 깊었다고 해야 하나, 다가가서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화가가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내가 저 그림에서 본 인상은 죽음의 사자가 고된 삶을 살아온 인간에게 " 고생하고 살아온 그대, 이제 쉴 지니라," 라고 축복을 내려 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해골과 낫과 망투로 상징되는 죽음의 사자를 한없이 자애로워 보이는 통통한 젊은 여성으로 그려 놓은 것도 주목할만했지만, 죽음의 선고를 받아들이는 할아버지의 저 표정이라니...마치 신의 축복을 받는 듯 감사해하는 표정이 아닌가. 삶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저주이고, 죽음이 오히려 그 저주에서 풀려나는 축복이라는 뉘앙스의 이 그림을 보면서 도대체 화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속에서 화가는 뚜렷하게,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지니, 왜냐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에...라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에서도 흔하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라서 충격적이고 흥미로웠다. 아니 ,사실 우리들 마음속에 한자락씩은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감히 누구도 나서서 그런 말을 입밖엔 꺼내 놓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신선하고 통쾌했다. 이렇다보니, 이런 금기같은 말을 당연한 것이라는 듯 단정적으로 그려낸 화가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 한 것도 이해가 가실 것이다. 놀라운 인생관 아닌가.화가가 만약 아직 살아계시다면,  당장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왠지 그는 시간과 장소가 달라진다고 해도 변하지 않은 진실의 한자락을 알고 있는 듯해서...그리고 이건 다른 말인데, 흔히들 사진이 원판만 못하다고 하는데 이 그림을 보니 확실히 알 것 같다. 원본속의 생생함이나 풍성함이 사진속에서는 흔적없이 사라진 것을 보니 말이다. 원본이 전해주는 감동을 이 사진만으로는 읽어낼 수 없다. 아마도 그래서 다들 비싼 돈을 내고 꾸역꾸역 전시회를 가는 것이겠지만서도...

<사는게 뭐라고>라는 책 리뷰를 쓰면서 뜬금없이 야체크 말체프스키의 그림을 들고 나온데는 두 작가가 어느정도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나의 엄마 시즈코상>의 저자 사노 요코, 치매를 20년 가까이 앓아온 90대의 노모를 잃은 뒤, 드디어 홀가분하게 사시는가 했더니만 그 2년 뒤에 그녀 역시 암으로 사망하셨다고 한다. 죽기 전까지 그녀가 성실하게(?) 끄적여온 몇 편의 수필을 모아 내놓은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죽음>이라는 그림을 봤으면 엄청 좋아했겠다 했다. 아마도 많은 위로를 받았겠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말이다. 사노 요코, 그녀는 의사가 암으로 기껏해야 1년 남짓 살 수 있다고 하자, 당장 나가서 재규어를 산다. 그 차가 2주만에 너덜너덜해졌지만, 어떠리, 마냥 태연하다. 신기하게도 평생 앓아오던 우울증이 단박에 낫더라며 신나한다. 이럴때 보면 어쩌면 삶 자체가 그녀에겐 우울증의 근원이었던 것도 같고...그녀의 지인들이 암이라서 어쩌냐, 죽음이 무섭지 않느냐고 울상짓자,  그녀는 오히려 잘됐다고. 어차피 인간 한번 죽는데, 암보다 더 고약한 것에 걸리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대답한다. 거기에 70에 죽고 싶었는데 소망이 이뤄진걸 보니 착하게 살아왔던 모양이라며 자신은 더 이루고 싶은 것고, 더 책임져야 할 것도 없으니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조용히 수긍한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기에 우리는 습관적으로, 내진 관습적으로 삶은 어떤 순간에서도 붙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 수도...


그렇게 인생 막바지에 선 저자의 시크한 매력이 돋보이던 책이다. 삶보다 죽음이 가까운 자의 솔직함이랄까, 내슝을 떨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좋아하는 한국 비디오도 비디오 가게 점원이 이상하게 볼까봐 대놓고 가서 빌리지 못할만큼 소심한 양반이 글속에서는 그런 자신을 비웃다가 변호하다가, 그럼에도 본인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 어쩌랴, 이게 나인걸...하는 할머니의 무대포 정신에, 만약 그녀가 현대에 살았더라면 훨씬 더 재밌게 잘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살았던 시절은 아이에게도 여성에게도 그닥 좋은 시절이 아니었어서 말이다.


<나의 엄마 시즈코상>을 읽으면서 그녀가 암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어놔서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었는데, 그녀의 사망 소식과 더불어 이런 책을 읽게 되서 다행이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 굉장히 서운하고 안 됐어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홀가분하게, 자신이 멋진 삶 까지는 아니라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삶은 아니었다고 자부하면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바라건데, 나 역시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했을때 그러할 수 있기를. 그것이 엄청나게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그런데 오해는 마셔야 할 것이, 여기서 말하는 이런 죽음은 노년의 죽음입니다요. 삶을 그리 오래도록 인내하고 살았으니, 그들에게 은혜같은 휴식을 주어도 된다고, 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젊은 이들은 착각하지 마시길...당신들에겐 인내하고 살아야 할 시간이 아직도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말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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