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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소녀 라일리의 감정을 조정하는 다섯가지 감정, 기쁨, 슬픔, 까칠, 버럭, 소심등은 그간 자신들이 맡은바 소임을 충실히 해온 결과 라일리의 핵심 기억에 좋은 것들로만 가득차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문제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평온한 라일리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 평생을 살아온 미네소타를 벗어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온 라일리는 정든 고향과 친구,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던 하키를 버리고 떠나와야 했다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거기에 물설고 낯설은 샌프란시스코란 곳은 어쩜 그리도 맘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지...다섯 감정들 중 그간 라일리의 두뇌 속에서 대장 역활을 해왔던 기쁨은 라일리의 감정에 슬픔이 번져드는 것에 기겁을 한다. 감정통제부의 조정간에 슬쩍슬쩍 손을 대는 슬픔으로 말미암아 라일리의 감정은 널뛰기를 하고, 이에 위기를 느낀 기쁨은 슬픔에게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짱 박혀 있으라고 명령을 내린다. 고분고분 순종적이기만 할 것 같은 슬픔은 기쁨의 말을 곧잘 알아듣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은근슬쩍 앞으로 나와 조정간에 손을 댄다. 슬픔의 행동에 속이 터진 기쁨은 조정간에서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떼어 놓으려 애를 쓰지만, 슬픔의 뚝심도 만만찮아서 결국 둘의 다툼은 핵심 기억들과 더불어 둘이 통제센터를 튕겨져 나가게 되는 사건을 만들고 만다. 


자, 이제 사춘기의 문전, 11살이라는 마의 나이에다 이사라는 엄청난 사건만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기쁨과 슬픔마저 통제부를 벗어나게 되었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라일리의 뇌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 라일리의 행복만이 중요하다고 , 라일리는 행복해야해! 라면서 모든 희생을 마다치 않는 기쁨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쓰지만, 통제부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너무도 슬퍼서 한발자욱도 움직일 수 없다는 슬픔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랴, 기쁨의 마음은 조급과 안달과 불안으로 치닫는다. 한편 통제부에 남은 세가지 감정, 까칠 버럭 소심은 기쁨과 슬픔 없이 라일리의 감정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되었다는 것에 당황한다. 두 감정이 없음에도 그런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세 감정의 마음과는 달리, 라일리가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챈 부모는 왜 그녀의 행동이 달라졌는지 몰라 답답하기만 한데...


기대를 잔뜩하고 봤는데도 기대치를 훌쩍 넘기다 못해 상상 이상의 완벽함을 보여줘서 픽사에 새삼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게 하던 영화였다. 픽사의 상상력이 빅뱅 수준으로 폭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내고, 그걸 이렇게 깔끔한 이야기로 탈바꿈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게 되었을지 놀랍기만 하더라. 참신함 , 독창성, 이야기의 군더더기없는 전개에 더불어 감동적인 결론까지...내 인생에 더이상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 해왔었는데,--더이상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거라고-- 그 추측을 간단하게 제압해버린 엄청난 작품이 되겠다. 내가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인지 증명하면서 나를 놀리는 듯 했는데, 그것도 별거 아니라는 듯 가비얍게 말이다. 반가웠다. 세상이 넓다고는 하지만, 상상력과 창의성과 배려과 이해가 넘치는 사람이 이렇게 넘쳐날 줄 내 어찌 알았으리요. 아마도 하필 그런 사람들이 픽사에 우연히 몰려 있던 통에 이런 수작 애니가 탄생을 하게 된 모양인데, 영화 한 편을 보면서도 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해 준 것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이 영화가 상업 영화긴 하지만서도, 상업 영화 이상의 그 어떤 메시지와 감동을 전달해주고 있어서, 냉소적인 나조차 가슴이 찡했다.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 그리고 그걸 위해 인간에게 아부하는 영화가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 하면서도 공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자신감에 박수를 칠 수밖엔 없었다. 거기에 감성만이 아닌 이성에도 호소하는 영화였다는 점 역시 만족스러움을 더해주었다. 황당무개한 것 같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다 이치에 맞는다. 너무도 이치에 맞아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들 정도라니까? 다섯 감정이 뇌를 지배하고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어찌나 설득력있던지, 내가 왜 그걸 진작에 한번도 생각해내지 못했지? 이런 간단한 것을? 이라고 생각되어질 정도였다.


하여간 이 영화의 장점을 꼽으라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이 세상의 모든 찬사를 갖다 붙인다해도 이 영화에겐 진부하겠다 싶더라. 두려웠다. 근사한 말로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좀 기다려보면 좋은 것이 생각날까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결국 내 능력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니 턱없이 부족할 것이 분명한 서투른 찬사를 나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그것이 이 영화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다만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한가지는, 픽사에게 고맙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이해의 눈으로 보게 해준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간 내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을 생각나게 해준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행복하고 기쁨에 차 있던 아이들은 다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내내 궁금해하던 나는 이제 조카들을 키우면서 그들 역시 그런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불안할때가 많았다. 그런 시기가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을 어디서도 찾지 못할 것 같더니만, 어럅쇼. 누군가 이미 나와 같은 고민을 했고, 거기에 그럴싸한 대답까지 내놓은 것에 감격하고 말았다. 이런 깨달음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자신이 가진 의문에 고민하고 자문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픽사 관계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내어놓은 이 뻔하지 않는 진심에 감사할 뿐이다. 이것이 내가 이 영화에게 바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이 영화는 리뷰 쓰기가 쉽지 않겠는데 했다. 그리고 그런 부족한 글솜씨가 한편으로는 아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압도당한 나머지) 나를 입다물게 하는 것을 만난다는 것이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니여서 말이다. 하니 아이를 키우시는 부모들에게 꼭 보시라고 추천한다. 아이가 없으신 분들이라도 마음 속에 어린 시절의 아이를 갖고 있으신 분들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란 명목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아이가 봐도 좋다. 그들 역시 이 영화를 좋아하고 감동하고 울먹이겠지만서도, 그들이 느끼는 이해는 어른이 되어서 어쩜 더 크게 와 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아직 못보신 분들이 부러울 뿐이다. 그들에겐 이 영화로 인해 받게 될 감동과 신선한 충격이 남아 있을테니 말이다. 하니 챙겨가지 못하신 분들은 어서 어서 챙겨 가시길. 이 정도로 말을 했는데도 챙겨가지 못한다면 그건 당신 손해다.


추신 1--영화를 보면서 기쁨의 목소리 연기가 에이미 폴러라서 더 좋았다. 워낙 그녀의 팬이여서도 그랬고, 그녀의 호들갑스러우면서도 남을 진정으로 생각해주는 목소리 톤이 기쁨에 그보다 더 잘 어울리긴 힘들겠다 싶어서도 그랬다. 그리고 슬픔 역도 어찌나 싱크로율이 똑같은지 누굴까 궁금했었는데, 알고보니 미드 <오피스>의 필리스 스미스라고 한다. 어째 목소리가 친숙하다 했더니만, 역시나 아는 목소리여서 그랬는가 보다.


추신2--영화를 보면서 주저없이 별 다섯개를 준 영화는 <시민 케인> 이후로 처음이다. 과연 올해 이보다 더 완벽하고 좋은 영화가 나올지 의문이다. 그런데 아카데미 상에서 작품상에 애니를 줄 수도 있나요? 갑자기 그게 궁금하네...애니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에는 틀림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내년도 아카데미 상의 향방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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