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9살 텐진은 못마땅한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난생처음 보는 아버지는 무뚝뚝하기 그지없고, 도시에서 살던 그에게 이제 보이는 것이라곤 지평선까지 펼쳐진 너른 초원뿐이니까요.  어른이라도 적응하기 쉽지 않은 급격한 변화인데, 혈육라고는 하나 남이나 다를바 없는 아버지와 함께 남겨진 그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런 텐진의 막막함을 헤아리지 못한 아버지는 초원에서의 생존은 강인함에 달렸다며 그가 알아서 적응하도록 방치합니다. 텐진은 초원에서 의사 노릇을 하겠다고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하루 하루를 버텨 보려 애쓰는 그에게 현실은 여전히 퍽퍽하죠. 음식은 맛없지, 양치기는 어렵지, 아버지는 자기 마음대로지, 또래 아이들은 도시에서 온 아이라면서 왕따시키지...재미라곤 하나도 없다고 외치는 그에게 어디선가 황금색 개가 나타나 그를 곰으로부터 지켜줍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횡하니 사라진 황금색 개...텐진은 한순간에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그것이 마지막일줄 알았던 황금색 개와의 만남은 양치기 개들과의 영역싸움에서 황금색 개가 다침으로써 이어지게 됩니다. 정성들여 간호를 한 텐진은 황금색 개의 신뢰를 얻게 되고, 그 개에게 도제라는 이름을 붙이고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도제 덕분에 텐진에게도 초원 생활의 황금기가 찾아온 거죠. 도제와 초원을 누비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텐진은 도제에게서 이상한 버릇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종종 어디론가 사라져 한참만에 나타난다는 것이었죠. 처음엔 떠돌이 개라서 그런 것이려니 하던 텐진은 초원 주변에 악마라고 불리는 살인 동물이 출몰한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어른들은 그 괴물의 정체가 도제일거라 확신을 하고, 이제 그를 죽이겠다고 나서는데요, 과연 도제는 그들이 말하는 살인 괴물이 맞는 것일까요? 도제가 사람을 해칠리 없다고 강력하게 믿는 텐진은 과연 어른들에게 그것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리뷰가 길어져봤자 읽기만 지루함으로, 대충 내가 느낀 점들만 추려 보자면...

1.일단 요즘 애니 수준을 상상하시고 들어가신다면 실망하실 겁니다. 일본 애니 필이 충만하긴 한데, 지난 10년간 축적된 일본 애니의 기술력을 수혜받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우리가 말하는 대화체로 풀어 설명해 본다면 약간 후졌어요. 정리를 해보자면 <프란다스의 개>-- <코난> --<초원의 왕 도제>-- <늑대 아이>의 순 정도? 엉성하게 나마 이야기의 집중력을 잃지 않고 풀어나갔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문제는 그게 다라는 것. 요즘의 애니를 만들어내는 수준을 생각하면 디테일에 있어서 한참 떨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티벳의 설화를 바탕으로 애니를 만들은 것 같은데, 소재의 고갈을 그런 식으로 메우려 한 것은 잘 했지 싶습니다. 다소 미심쩍던 부분은 여기에 나오는 몽고인들은 왠지 진짜 몽고인들 같지 않더라는 점. 아마도 진짜 몽고인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 우리가 저렇다고?" 라면서 반문할지도 모르겠어요. 일본인들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몽고인들이라는 느낌? 오래전 미국 드라마에서 서울이라면서 사람들은 아오자이에 고깔 모자를 쓰고 인력거가 다니는 장면이 나와서 실소한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도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일본인들은 타민족을 자기 민족인양 잘도 그려낸 전통이 있었지 싶긴 하네요. < 빨간 머리의 앤>이나 <붉은 돼지>가 일본 애니라는 소리에 놀란 기억이 있으니까요. 하긴 실사도 아니고 상상력으로 그려내는데, 약간의 현실성 없음이 뭐 그리 문제가 되겠나요. 하여간 치명적이라고 할만한 단점은 아니었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2. 이 영화,  전체 관람가로 판정이 나서 시사회장에 젖먹이 아기까지 안고 들어오는 어머니도 계시던데, 그건 둘 다 아니지 싶어요.  등장인물들의 대화에만 나오긴 하지만 살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잔인하게 괴물에게 살해 당하는 장면도 있고...아직 어린 아이가 감당할만한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보는 나조차도 섬뜩했으니 말여요. 적어도 7세 이상 관람가로 정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이건 관계청에서 알아서 하기 이전에 부모님들이 먼저 체크하고 들어가심 좋을 것 같아요. 진짜로 이 영화는 7세 이하에겐 무리거든요. 개가 나온다고 해서 프란다스의 개처럼 온화한 이야기가 아니니 새겨 들으시길...

3. 말을 하는 것이 주로 인간이라, 영화는 인간의 입장에서 서술되지만,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도제의 입장에서 바라본 상황이었어요. 그가 어떻게 텐진이 살고 있는 초원에 굴러 들어왔으며, 거기에 정착을 하게 되고, 새로운 삶을 찾았음에도 왜 수상스럽게 굴게 되었는지 대한 것들. 처음에는 떠돌이 개가 우연히 텐진을 구한 것이라만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원래 그 개는 그런 개였고, 자신의 본분은 언제나 다 하고 있었다는걸 알게 되는 과정들이요. 우리가 누군가를 파악할때는 간간히 본 것만으로 전부를 헤아리게 되잖아요?  이 영화속의 도제처럼, 그를 다 알게 되는 것은 전체적인 맥락을 다 들어본 다음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런지요. 도제의 그런 면이 나에겐 조금은 감동이었네요.

4. 이렇게 딱히 크게 칭찬할만한 구석이 없음에도, 재밌게는 봤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아직도 아이들과 정신연령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아이들과 함께 싱글거리면서 보는데 전혀 무리가 없더라구요. 특히나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감정잡고 있는데, 함께 관람한 꼬마들이 안돼~~~하고 단체로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웃고 말았어요. 아이들은 울고 어른들은 그게 귀여워서 웃는 참으로 이상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는데, 그게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볼때의 좋은 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말도 안되게 어린 아이들을 끌고 와서는 관람 분위기를 왕창 망치는 몰지각한 어른들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도 내내 기분이 불쾌했는데, 그나마 그 기분을 날려 버릴만한 에피소드였어요.

5. 그래서 결론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보기엔 괜찮지만, 어른들이 본다면 싱겁다고 하시지 않을까 싶다는거. 중국과 일본 합작으로 만든듯 하던데, 합작한거 치고 이 정도면 잘 나온 편이죠. 특히나 도제의 위용스런 자태는 모두를 압도하고도 남아서, 실제 도제의 모델 견이라는 견공을 시사회 전에 보고는 조금은 실소를 했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정말 도제같은 황금색 개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굉장히 인기를 끌 것 같은데 말이죠.  이 영화를 보고나선 나에게도 의문이 하나 생겼는데, 난 왜 개가 죽은 장면만 나오면 눈물이 나오는 걸까요.  다른 동물이 죽는것에는 눈물까지 흘려본 기억이 없는데, <프란다스의 개>이어 이 영화까지...영낙없네요. 아마도 내 어린 시절에 나도 모르는 트라우마가 있는가 봐요. 누가 이런걸 연구하는 사람 없으려나요? 흥미로운 주제일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 웃음을 담당하고 있는 귀요미. 다들 도제만 좋아하는게 아니라는걸 보여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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