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본 거 없고 가본 곳 없어 인터넷 중매 사이트에서도 왕따를 당하는 월터 미티. 17살 이후로 가족의 부양을 책임지고 살아온 이 42살의 남자에게서 한때 모히칸 머리를 하고 킥보드 우승을 거머쥐던 꿈많은 소년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지금의 직장인 <라이프>지에서 사진 인화 당담을 해온 지 어언 16년,  성실하고 착하게만 살아온 그의 인생은 어찌보면 단조롭고 소심하게 보입니다. 그런 그의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생겨나죠. 아니, 변화라기 보단 변화를 시도하고픈 일이 생겨났다는 것이 정확한 것일 겁니다. 바로 그의 직장에 어여쁜 이혼녀 쉐릴이 들어온 것이여요. 그녀에게 반한 월터는 어떻게해서든 그녀에게 관심을 끌어보려 하지만 그의 소심함은 이때에도 그의 발목을 붙들게 됩니다. 우연히 쉐릴이 e-하모니란 중매 사이트에 가입했다는 말을 줏어들은 월터는 그녀에게 접근해볼 생각으로 큰 맘 먹고 그 사이트에 가입을 합니다. 하지만 프로필 난에 아무것도 채우지 못하는 살아있는 좀비같은 그의 이력은 매칭 시스템 자체에서 그를 걸러지게 만드는 수모를 당하게 되죠. 상상속에서만은 누구보다 용감하고 재밌고 말발 죽여주는 그지만,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현실속의 그일뿐이니 말입니다. 이에 자신이 한심스러워진 월터, 하지만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개선을 위해 행동에 옮긴다는 것은 별개의 일일 것입니다. 그는 다시 소심하게 주저앉고 말죠. 그렇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내보았던 것이 수포로 돌아가려는 찰나, 그의 인생에 엄청난 일이 벌어집니다. 그의 직장인 <라이프>지 사가 하룻밤새 팔려 버린 것이죠.월터는 이제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잡지의 마지막 호를 위해 사진을 인화해야 합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에 마지막 호를 발행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모자라, 그 기념비적인 마지막 호를 장식해줄 표지 사진이 사라져 버립니다. 사방군데를 찾아봐도 사진은 나타나지 않고, 결국 월터는 사진 작가인 숀을 찾아 나서기로 합니다. 혹시나 그가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죠. 문제는 숀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모험과 아름다움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니는 방랑가라는 것이고, 해서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 벼랑위에 서 있는 월터, 과연 그는 그의 마지막 사진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요?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우직하고 책임감이 강한 소시민을 위한 찬가라고나 할까? 세계적인 영화배우긴 하지만 어딘지 루저의 인상이 짙은 벤 스틸러가 자신에게 딱 맞는 역을 가지고 멋진 영화를 만들었다. 루저들에게 연민과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준다는 점에서 벤 자신이 무척 선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얼마든지 거들먹 거리면서 승자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음에도,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에 치이고 치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착한, 그래서 험난한 세상에 더 치이고 치이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그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려는 것이 한 눈에 보였다고나 할까, 해서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벤 스틸러가 감독겸 배우를 했다.)의 메시지에 태클을 거는 사람들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적어도 메시지 자체는 훌륭했다는 뜻이다. 거기에 무엇보다 화면이 화려하다. 난 벤 스틸러가 이렇게 영화를 그림같이 찍으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의 감독으로써의 역량을 다시 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는데, 곳곳의 풍광이나 화면을 구성하는 면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멋지더라. 월터의 직장을 <라이프>지로 한 것도 다 이런 화면을 위해서였구나 싶을 정도로 화면들이 탁월했다. 영화들 중에서는 이야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굳이 큰 화면에서 보지 않아도 충분한 영화가 있고, 3D 촬영을 했다고는 하지만 2D로 보는 것이 더 나은 영화들도 있다. 제작사에서 내건 것과 실제로 보면 다른 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큰 화면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집에서 작은 TV 화면으로 본 영상과 직접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본 영상이 너무 큰 차이가 나서 하는 말이다. 아마도 굉장히 공들여서 찍었을 듯한 곳곳의 풍광들은 그 자체로 눈을 시원하게 했다. 안구 정화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야 라는 듯 말이다. 하니, 만약 월터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솔깃하신 분들이라면 되도록이면 영화관에서 보시라고 권해 드린다. 다시 말하지만 작은 화면으로는 감독이 보여주려 한 풍광들의 감흥이 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영화는 어쩌면 그 풍광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람료 값을 하지 않을까 한다. 화면이 그만큼 신선했다.

 

등장인물들의 따스함이나 정감 같은 인간적인 면모, 커다란 화면을 꽉 채우는 탁월한 영상미, 그리고 배우들의 허술하지 않은 연기등 장점들이 많은, 그래서 TV에서 광고 영상을 보여주는데 왠지 내가 전에 가본 여행지를 우연히 둘러 보는 듯한 아련함과 애틋함이 배어나는 장점이 많은 영화임에도, 다만 단점이라면 이야기가 비교적 단조롭다는 것이다. 초반을 지나고 나면 대충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짐작이 되고, 더이상 뻗어나갈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감독은 타협을 한게 아닐까 싶었다. 최소한의 배우들과 최소한의 이야기로 대신 영상만큼은 최대한으로 하자는 선에서 말이다. 그의 선택이 최선이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가본 곳 없음 해본 곳 없음에 동의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바다. 아마도 그의 프로필 난이 nothing에서 something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들에 같이 환호성을 지르게 되질 않을런지... 적어도 난 그랬으니 말이다. 더불어, 이 영화의 핵심 키 플레이어인 숀이 말한 Life의 정수를 담은 25번째 사진은 정말로 기발했다. 마지막 감동을 위한 반전용으로 이보다 더 적절하긴 어렵겠다 중얼 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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