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의 잊지 못할 비행 무민 그림동화 13
토베 얀손 글.그림, 이지영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책들이 아직도 종종 기억이 나는걸 보면 신기하다. 어떤 책은 지금도 너무도 보고 싶지만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서 애가 타기도 하고 ( 다락방인지 마루밑인지에 작은 소인들이 산다는 설정의 동화를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제보 바랍니다. 그 책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서 찾을 수가 없네요. 어렸을 적에 참 재밌게 읽었었던 책인데...) 어떤 책은 이 무민처럼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하고는 반가움에 반색을 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4학년때 같은 반 부반장 부모님은 우리동네에서 유일하게 교육열이 높으신 분들이었다. 그 말인 즉슨, 그녀의 집에 가면 전집으로 된 책들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재밌는 것은 내 친구는 공부는 잘 했지만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부모님이 사다준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덕분에 그녀의 부모님들의 원래 취지와는 달리 그 책들을 몽땅 다 읽은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였다는 것이다. 그녀의 집에 가면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 나는 감지덕지였고, 그녀는 자신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책을 내가 왜 그렇게 허겁지겁 읽어 내려 가는지 이해할 수 없어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녀가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랬더라면 아마 내가 자신의 책을 그렇게 읽어 치우는 것을 그다지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하여간 그 많은 전집 책들 중에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몇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무민 시리즈가 그렇다. 무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당시 내가 이 책을 정말로 좋아해서 그녀의 집에 갈때마다 거듭해서 싫증내지 않고 읽었기 때문이다. 천진스러운 무민 가족들이 사랑스럽기도 해서 그렇지만, 이런 상상속의 세계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따스함이 무엇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그때 아직 어려서, 정말로 어딘가에는 무민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존재할 것이라 믿었었다. 그래서 그 어딘가에서 그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라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한장면은 무민의 여자 친구로 유난히 치장에 신경을 쓰는 스노크 아가씨가 좀 더 예뻐 보이려고 앞 머리를 손질하다가 불에 태워 먹은 씬이다. 불에 그을려 대머리가 되어 버린 앞머리 때문에 울상이 된 스노크 아가씨의 모습이 넘 웃겼고, 그것이 그녀의 허영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괜찮다고 예쁘다고 위로를 해주는 무님 가족들이 넘 좋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4학년용 이상향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아련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무민 가족들 이야기가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후인 지금에도 나온다는 걸 알았을때 얼마나 놀랐는지...어찌나 오래전 이야기인지 지금은 전생에서 읽은 듯한 기분이 드는 책이 지금까지도 읽힌다는 것이 신기해서였다. 그리고 궁금했다. 어렸을 적 그렇게 매혹에 빠졌던 무민이 어른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매혹적일까라는...


결론은 어렸을 때의 낭만이랄까, 아련함은 없지만 그럼에도 좋은 책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는 것이다. 동글동글 통통통, 한없이 매력적인 무민 가족들의 몸매도 그렇거니와 낙천적이고 천진난만한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사건들도 지금 읽어도 그다지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유아용 동화책이지만, 등장인물들 각자 개성들이 뚜렷하다는 점도 무시못할 장점. 그래서 새로운 권이 나올때마다 과연 이번엔 누가 사고를 칠까, 그리고 그것의 수습은 어떻게 할까 그것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누구라기 보단 무민네 남자들이 단체로 열기구를 타고 모험을 나서는 것에서부터 사고가 시작된다. 여자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을 뒤로하고 비행 모험에 나선 길, 처음엔 모든 것이 다 좋았지만 갑작스레 폭풍이 몰려 오면서 문제는 시작된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나침반이 필요한데 심하게 흔들리는 열기구 안에서 이리 저리 휩쓸리다가 그만 잃어 버리고 만 것...이에 열기구에 타고 있던 무민 일행들은 다들 겁에 질리기 시작한다. 밤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보시길...참 알 수 없는 일은 어렸을 적 무민 시리즈를 읽을때마다 내 느낌상으로는 장편 대하 소설 하나씩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달랑 26페이지라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왜 어렸을 적 기억에 이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듯이 느껴지는 것일까? 어릴적 내 머리 용량으로는 26페이지가 지금의 400 페이지에 맞먹는 분량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 당시에는 이보다 많은 내용들이 들어있었던 것일까?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면 굉장히 풍성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단 느낌인데, 과연 26페이지의 내용을 가지고 그 안에 차곡차곡 내가 무엇을 채워 넣었었던 것인지가 궁금하다. 단지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왜곡된 기억에 불과한 것일 뿐일까? 하여간 오랜만에 무민 시리즈를 만나서 반가웠다. 내가 어린 시절 봤던 그런 향수는 머리가 굵을대로 굵어버린 지금 느낄 수 없었지만서도, 그럼에도 반가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아직도 난 여전히 무민들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반가운 책을 조카가 놀러오면 읽어줄 참이다. 녀석은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참으로 궁금하다. 나완 다른 시절에 태어나고 자란 녀석이라 감수성이 나와 다른다는걸 생각하면 뭐라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무민의 다른 책들을 읽어줘봤더니 의외로 고분고분 귀를 쫑긋하면서 재밌어 했었다. 이 책도 그러길 바라면서...녀석도 나 만큼의 상상력으로 이 책의 빈 공간을 마음껏 채워 나가길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