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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ㅣ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평점 :
난 왜 이 책에 그렇게 기대를 했던 것일까? 그럴 필요 없었는데 말이다. 책이 나왔을때의 열광적인 리뷰어들의 반응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표제의 문구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가면을 쓴 자의 호텔이라는 제목때문이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해선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던 탓에 작가의 이름 때문이라는건 조금 의문이 있고, 그나마 가장 내가 이해 가능한 것은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람들의 색다른 면모를 뷔페 차린 듯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혼자 열심히 했었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런 저런 상상을 했었더랬다. 이런 저런 내용이 있지 않을까 라는...그리고 작가의 명성에 미뤄 짐작컨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말로 맛깔나고 재미지게 서술하지 않았을까 라는 느슨한 믿음 정도? 상상과 믿음이 만났을때 그것은 어설프게 부풀어지게 마련이고, 그럴때 내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실망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안전판을 만들어 놔야 했다는 것인데, 왠일인지 이 책에는 그런걸 전혀 마련하지 않았더란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추락밖에 할 게 더 있겠는가. 한없이 높아져 올라간 기대치의 다이빙 보드에서 바닥으로 아무런 장치 없이 떨어지는 경험을...줄곧 내려오기만 하다 보니,한번이라도 올라가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나마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이더라. 혹시나 라는 기대를 하지 않게 해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여간 기대 잔뜩하고 봤다가, 도무지 왜 이 책에 그렇게 기대를 했던 것일까 그럴 필요 전혀 없었는데 라는 자조를 하게 했던 책이 되겠다.
내용은 이렇다. 최근에 벌어진 세 건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그것이 연쇄 살인 사건이며 , 다음번 타겟이 모 호텔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단서를 얻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살인에 대비해 잠복 근무를 하는 것. 문제는 살인의 수법상, 누가 범인인지 누구를 대상으로 살인을 벌일 것인지 미정이라는 것. 그저 무작정 수상한 사람을 탐지해 내야 하는 사건의 성격상 형사 하나가 호텔리어로 잠복 근무에 나서게 된다. 처음엔 호텔리어라는 직업 자체를 무시하던 형사는 점차 그들의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투덜투덜대면서 전혀 호텔리어로써의 기본 자질을 숙지하려 하지 않던 형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일의 성격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할 일은 살인범을 잡는 일...하지만 정체를 모르는 살인범을 알아낸다는 것은 이모저모로 꼬여만 가는데...
일단 정체를 모르는 살인범을 잡겠다고 이렇게 솔선수범해서 호텔을 점령하는 경찰들이 있다는 점에 의문이 들었다. 예고 살인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가 흘린 단서들을 주어 모아 수수께끼 풀 듯 풀어낸 것에 불과한데, 그걸로 경찰 수뇌부들을 움직였다는 설정 자체가 신빙성이 들지 않더라. 일본의 경찰들이 이렇게 한가할 수 있는가도 금시 초문이고, 부하들의 말에 이렇게 전적으로 믿음을 보내는 상사도 본 적이 없으며, 경찰이라는 상명하복 지휘하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미심쩍은 단서 하나에 부서 전체가 움직인다는 설정을 과연 어디까지 믿어 줘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거기에 호텔리어로 근무하게된 형사와 진짜 호텔리어 사이의 티격태격이 어찌나 유치하던지, 둘이 처음엔 그런 사이였다는 설정으로 가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는건 이해한다고 쳐도 정말 재미 없더라. 조금 이해 가능하게 굴었더라면 둘의 캐미가 그럭저럭 볼만했을지 모르겠으나, 형사는 무조건 인간 모두이 의심투성이에 불만이고, 직업이 호텔리어인 여자는 무조건 저자세로 일관하던데, 천편일률적인 인물 묘사에 짜증이 나다 못해 하늘을 뚫은 지경이다. 맛깔나다는 표현과는 거리가 먼 그런 어설픈 모습에 감동이나 재미를 느낄 수는 없는 법이지. 요즘엔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극단적으로 인물 묘사를 하지 않는데 말이다. 세번째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살인범을 잡기 위해 추리를 해나가는 과정이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다는 듯이 꼬아 놓기만 한 듯한 느낌? 일본 추리 소설에서 자주 보게 되는 위험한 트릭인, 전적으로 추리 소설만을 위해 만든 추리 소설용 살인 사건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 역시 그다지 신빙성 있어 보이지 않았고 말이다. 거기에 호텔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찌나 일본스럽던지...왕따등의 가학 문제가 심한 나라라고 들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왕따의 정도만큼 내성적인 피학도 못지 않게 심각한 나라가 일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감성이라고 해야 하나? 부끄러움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소심함? 뒷끝 작렬의 나라? 하여간 오래전 당한 일로 사람을 함부로 갈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묘사되는 일본 소설을 보게 되면 피곤해진다. 읽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나쁜 의미로 일본 작가의 지극히 일본적인 소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한 소설. 뭐, 이 책이 그동안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중에서 제일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기대를 많이 하고 봤는데 실망이 컸다는 뜻이다. 낙차가 너무 컸던 탓에 이제 왠만하면 이 작가의 책은 읽고 싶지 않을 듯하다. 뭐, 더 쓰고 싶은 말은 남은 것 같지만서도, 이 정도면 이 책에 대한 실망에 대해 충분히 아쉬움은 토로한 듯 하니 여기서 접기로 한다. 그나저나 나 이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와는 별로 연대가 맞지 않은 듯 싶다. 그나마 그동안 쌓아온 이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이번 한방으로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히가시노 게이고, 드디어 내 그녀의 이름을 외웠는데 하필이면 그 책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였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 하겠다. 그녀의 책을 더이상 기대하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