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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ㅣ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평점 :
처음 몇 장을 읽어 나가자마자, 이렇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나 라는 생각에 피곤해졌다. 절세 미인인 엄마가 아닌 추남인 아빠를 닮아서 고민이던 사춘기 딸이 가출을 했다는 설정에서부터 말이다. 처음엔 그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식겁했는데, 계속 읽어 내려 가는데 이건 아니지 싶은 것이다. 사춘기 시절에 외모에 집착할 수도 있고, 그것때문에 고민이 될 수도 있는건 사실이지만서도, 그것이 과연 가출의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아니, 되어야 하나? 라는 가소롭다는 느낌...사는 것에는 그보다 더 큰 일이 많고 많은데, 고작 그것때문에 사랑하는 부모에게 대못을 박고 무책임하게 가출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이다. 아니, 물론 그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이 이렇게 소란을 떨면서 감정 이입을 해줘야 하는 사항인지가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지극히 일본스러운 호들갑이 처음부터 이 책에 대한 집중을 방해했다. 재밌다는 느낌보다는 굉장히 피곤하다는 느낌만 들어서 말이다. 10년 동안 작가가 두문불출하면서 쓰셨다고 하던데, 작가도 이 책을 쓰시면서 얼마나 피곤하셨을까 그런 안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읽는데 이렇게 피곤하다면 쓰는데는 더 할 것 같아서 말이다. 하여간 열심히 쓰셨다는 작가에게 고맙다는 마음보다 안스럽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점에서 보듯, 10년만에 내놓으신 작품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퀄리티는 아니었지 싶다. 그나마 피곤함을 무릎쓰고, 꾸역꾸역 읽어 내려 갔더니만, 결말에 가서는 조금 탁 트이는 기분이 들더라. 결론을 위해 그렇게 미련하고 답답하게 초반을 꾸려 나갔구나 라는 생각...하지만 결론으로 초반의 지루함을 만회하기엔 이미 너무 많이 점수를 잃었다는 것이 이 책의 최대 함정. 결론만 보자면 참 괜찮은 소설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적어도 작가가 꽤나 많이 구상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말이다. 그런데 초반에서부터 중반까지가 읽기가 힘들 정도로 재미가 없다. 공감도 안 되고, 여기 저기 답답한 구석 뿐이며, 암울하고, 지루한데다, 피곤하기까지 하다. 어떻게 이런 책이 일본에서 히트를 쳤다는 것인지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아귀조차 맞지 않은 형편없는 소설들에 비하면 이 책은 그나마 이야기에 완결이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결말이 박진감 넘친다는 점에서 봐줄만한 구석이 있는건 사실이지만서도, 걸작이라는 이름이 붙기에는 많이 부족하지 않았는가 한다. 그럼에도 만약 이 책이 드라마화 된다면 아마 굉장히 재밌는 내용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일본 드라마 작가들이 워낙 별게 아닌 내용들로 맛깔난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걸 봐와서 말이다. 어쩌면 드라마화된 <64>를 보면서는 걸작이라고 두 엄지를 치켜 세우고 있을지도...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미래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