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여자가 되는 법 - 영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영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괴짜 칼럼니스트의 여자 생태보고서
케이틀린 모란 지음, 고유라 옮김 / 돋을새김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받아들자 마자 나는 언제나처럼 표지 맨 앞 쪽 날개에 쓰여진 저자 소개말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한눈에도 괴짜임이 분명해 보이는,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많이 달라요...라는 표정의 저자 사진과 그리고 저자의 이름이 케이틀린 모란이라는 것, 그리고 그 아래 주르르 펼쳐진 저자의 이력서. 그런데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머리속에서는 의혹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야 말았다. 그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1990년, 15세의 케이틀린 모란에게 친구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이른바 그때 그녀가 수퍼 울트라 괴짜 소녀였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라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괴짜라고 해도 친구가 단 한명도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리 괴짜라고 해도 괴짜 친구가 있기 마련이고, 또 그런 괴짜를 참아주는 정상적이면서 멍청한 친구도 한 명 정도는 있는게 정상이다. 아시다시피, 인간사회는 대개 이성적이나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면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조금은 넉넉하게 괴짜를 받아주는 그런 여유가 있는 법 아니겠는가. 해서 나는' 에이~~말이 안 되지, 어떻게 친구가 한 명도 없나, 아무리 책을 팔기 위해서라지만 과장이 심했네.' 라며 표지의 주장을 간단히 일축해 버렸다.


 그로부터 몇 분 뒤, 겨우 책 두어쪽 읽어 내려 간 후, 나는 그 표지의 말이 한마디 보탬도 섞이지 않은 사실이라는걸 알게 된다. 왜냐면 그 짧은 시간 안에, 나는 그녀가 진짜로 싫어졌기 때문이다. 놀라운 능력이었다.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을 몇 마디 문장만으로도 쉽게 정나미 떨어지게 할 수 있다니 말이다. 내가 그런 마당이니 그녀를 가까이에서 접해봤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 것이라는 건 안 봐도 훤했다. 와~~정말로 이런 사람이 존재하긴 하구나. 만약 소설이었다면 어디서 이상한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이렇게 밥 맛없는 캐릭터는 존재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 책은  저자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초장부터 저자에게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지고 나니, 이제 문제는 그 다음을 어떻게 읽어 내려 가야 할까라는 것이었다. 그저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여자가 된다는 것이 대한 공감을 얻고 싶었을 뿐인데, 그건 고사하고 튀어 나온 것은 온통 정신 사나운, 평소에 정신줄 놓고 사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여자의 한도 끝도 없는 넋두리였으니 말이다. 내 자신이 여성이긴 하지만  진짜 여자답다고 하기엔 한 50% 부족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에, 그런 나를 위해서 진짜 여자의 개념 정의와 진짜 여자가 되기 위한 조언을 얻었음 했던 것이 이 책을 읽은 이유였건만,그 단순한 바람이 이렇게 크나큰 고통을 가져다 줄 줄 그 누가 알았으리요. 재난에 버금가는 대참사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라면서 리뷰를 쓰기 위해 하는 수 없이 꾸역꾸역 읽어 내려 갔는데, 슬픈 내 예감은 종내 틀리지 않아 첫 문장의 인상이 끝까지 쭈욱 이어지더라. 물론 뒤로 갈수록 그나마 참고 들어줄만한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서도, 처음 1/3에서 하도 호들갑에 오도방정에 난리 법썩을 떠는 바람에 그마저도 진중하게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초반에 확실하게 나를 보내준 덕분이다.


그래, 여자가 되는 법? 그거 어렵긴 하다. 여자로 산다는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건 비단 여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여자건 남자건 간에...이 저자는 살아가면서 아무 것도 겪을 생각 없이 태어난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매 순간이 놀람이고 고통이고 비극이고 재난의 연속인지 모르겠지만서도, 그것을 마치 여자라서, 여자인 관계로 살기 힘들다는 양 극도로 과장해서 이야기하는데 이건 아니지 싶었다. 아이로 태어나 여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때론 놀랍고 당황스럽고 불필요 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게 살아가는 과정인걸 어쩌랴. 우린 그렇게 태어나 성장해 죽어가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저자가 호들갑을 떠는 만큼 그렇게 고비 고비를 끔찍하게 넘기지 않는다. 무난하게 이해하고 적응해 간다는 것이다. 이 여자 혼자 극단의 나라에, 하루종일 조증인 상태로 지내는게 아닌가 싶던데, 왜 저자는 여자가 거쳐가야 하는 모든 과정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극단의 최악이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며, 여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재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렇다보니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저자의 호들갑에 공감이 되긴 보단 읽는 자체가 기분이 상했다. 똑같이 겪는 증상일텐데도, 공감에서부터 삐걱대니 거기서 무언가를 들을만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접는 것이 좋을 성 싶었다. 또 그랬고 말이다. 분명 그녀는 자신을 모든 여성들의 대명사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는데, 여자인 내가 말하는데, 우리 이렇지 않다. 그녀가 독특한 것이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만...공감이 되지 않았던 예를 들자면 이런 문장들...라면서 문장을 옮기려고 보니, 안 하는게 낫겠다 싶다. 이런 리뷰에 굳이 써넣을만한 문장은 아닌 거 같아서 말이다. 뭐, 궁금하시다면 이 책 전체가 다~~몽땅 다~~진짜로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고 보심 된다. 공감이 갈만한 문장들도 이 작가분이 어찌나 오바하면서 호들갑을 떨어대던지...짜증이 났다. 생리나 출산에 대해 그렇게 난리 법석을 떨어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우린 그저 조용히 우리의 삶을 살아가도 별 문제 없는데 말이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이 저자는 이런 책을 쓰면 안 되는 분이 아니신가 한다. 일단 그녀가 별로 진짜 여자같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보단 <수퍼 울트라 괴짜 여자>라면 그녀에게 정확한 타이틀이 될 것이다. 어째 꼬리잘린 여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꼬리가 잘렸기에, 다른 모든 여우들에게 꼬리를 자르라고 설득하는...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으시는 분들은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서 이 저자를 싫어한다고 오해하실 수도 있겠다 싶다. 분명 말하지만 나 페미니스트다. 이 책을 읽은 이유도 이 저자가 강력하게 페미니스트를 주장한다고 하기에 읽은 것이었다. 이효리의 솔직 당당함에 매력을 느끼고, 남녀 평등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여성계의 대모들에게 늘 존경을 보내지 마지 않는 나였기에 이 책의 주제에 당연하게 공감하리라 그렇게 짐작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책은 선배 페미니스트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오랜 투쟁, 진실을 알리기 위한 헌신, 무엇보다 그들의 명쾌하고 선명하며 군더더기 없는 통찰력을 한순간에 저 아래로 추락시킨 것 같아서 심히 불쾌했다. 그러니 제발, 진짜 여자가 되는 법이라는 책의 제목이 이 책에 어울린다고 말하지 마라. 그건 여성에게 대한 모욕이며,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조롱이다. 하여간 이 저자가 영국에서 잘 나가는 칼럼니스트라는 사실에 놀랐으며, 이런 내용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좋은 책들이 많고 많은데, 왜 하필 이런 책이 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어서 말이다. 간만에 입맛 제대로 버린 책, 그것의 제목이 진짜 여자가 되는 법이라는 것은 또 뭔 아이러니인지...그런데 나, 이 책을 보고 알았다. 난 조증에 걸린 여자를 진짜로 질색한다는 사실을...조증보단 울증이 낫다. 그리고 이 여자를 참아주는 남성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렸다. 여자들도 참아 주지 못하는 여자를 견뎌내주는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때론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아마도 그래서 지구에는 양성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같은 성에서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들을 다른 성이 참아 주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아마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멸종을 피하게 된 이유중 하나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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