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러시아 할머니의 미제 진공청소기 NFF (New Face of Fiction)
메이어 샬레브 지음, 정영문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요즘 일단 왠만한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될 것 같다. 그간 나를 지배하고 있던 까탈스러움이 일신상의 문제와 겹쳐서 극을 항해 치닫고 있다고 할까? 그러니까, 예전에는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봐줄만한 책들도 이젠 가차없이 , 초장부터 퇴짜를 받기 일쑤라는 것이 요즘 내가 갖고 있는 고민중의 하나다. 이렇게 나가다간 책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잃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니 말이다. 과연 내가 책에 대한 관심 없이 무슨 낙으로 살아갈지 저의기 절망스럽다고나 할까. 대체할만한 다른 것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 마당에서, 이렇게 책에 대해 흥미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걱정해야 할만한 사안일 것이다. 해서 뭐, 원래 책에 관한 한 너그럽지 못한 성격이었음에도, 앞으로 나갈 리뷰에 대해서는 유난히 친절하지 못한 것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 어쩌면, 지금 아닌 다른 때 봤더라면 그래도 이렇게 야박한 평이 내려지진 않았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이렇게 구구절절 연막을 미리 쳐놓고 시작하는걸 보니 , 이 책이 별로인갑다 생각하실텐데...실은 그렇진 않다. 그마나 요즘 읽었던 책들 중에서는 잘 쓴 책에 속했으니 말이다. 우선 첫 장을 읽어 내려 가는데, 흠...호감이 들었다. 이 작가 , 이스라엘에서 유명한 원로 작가라고 하던데, 정말 글을 쓰실 줄 아시는군. 이라는게 나의 첫 인상이었다. 이대로만 나간다면 괜찮은 책이 나오겠어 싶은...우선 유머감각에 무엇이 독자들에게 주목을 끌게 하는지 직감적으로 아는 감각, 이야기꾼다운 자연스러운 허풍에, 좋은 작가라면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매력적인 성품까지....왜 내가 기대를 하게 됐을지 짐작이 되실 것이다. 더군다나 이 작가에겐 너무도 다행스럽게도, 이 분에게는 유난히 특별난 가족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자손손 전설로 이야기를 남긴다고 해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기괴하고 유별난 분들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미 이야기가 끝난 것이다. 이야기꾼의 유산이 남아있는데다, 개성 넘치는 인간들이 가족들로 포진을 했다고? 작가에겐 그야말로 천혜의 조건이 아니겠는가. 이런 환경에서 글을 잘 쓰지 못한다면 오히려 바보일 것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느긋해졌다. 오랜만에 읽을만한 작가를 만났구만 하면서...아, 오해는 마시라. 이때의 오랜만이라는 것은 내가 최근에 읽은 두 세너권의 책을 읽은 정도의 시간이니 말이다. 대단히 오랜 시간이 아닌 겨우 이틀에서 삼일 정도? 진짜 오래 가봐야 한달 ,보통은 일 주일...그렇다. 나는 다른건 몰라도 천성적인 엄살장이였던 것이다.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좋은 책 없냐고 징징해면서, 문학을 죽은게 아니냐고 걱정을 해대면서 비극적인 드라마를 써대는. 해서 하여간 내 기준에 의하면 오랜만에 괜찮을 만났는가 보다고 좋아했는데 말이지. 이거 초반을 넘어가면서 서서히 암담해 지기 시작하더란 것이다. 작가의 할머니적부터 시작한 작가의 가족의 가족사가 실제로 작가가 의도한 것보다 지루하게 느껴져서 말이다. 더군다나, 그 놈의 미제 청소기는 또 어찌나 감질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사람 애 간장을 태우는지...결국 중반을 넘어가다 보니 짜증이 나더라. 내가 만약 할머니의 손녀였다면 그냥 확 없애 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순박했지만 순박함 못지 않게 괴상함도 지니고 있던 작가의 할머니 토니야. 그녀는 사별한 연상의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해 험난한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무능까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집단 농장에서 농부를 하기엔 무언가 부족함이 있었던 남편을 대신해 토니야는 억척스럽게 자신의 가족을 건사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억척스러움은 집안을 청결 그 자체로 하는데 강박적으로 몰두함으로써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듣는 사람 모두를 질리게 할 정도의 청결에 대한 집착은 결국 그녀를 마을 전체를 통틀어 기괴한 할머니라고 여기게 만들었고, 미국에서 온 대단한 미제 청소기가 제 역활을 못하고 40년간 골방에 갖히게 하는 원인이 되고야 만다. 작가는 그의 할머니를 회상하면서 이스라엘에 정착한 러시아 유대인들의 애환과 그들의 역사를 어렵지 않게 풀어나가고 있었다. 뭐, 그건 좋다. 적어도 어렵게 읽히지는 않았으니까. 다만, 간간히 지루해진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할머니의 청소 강박증이 불러온 단순한 사건을 너무 늘이고 늘이고 늘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심도 지울 수 없었다. 그냥 별로 쓸 말이 없는 이야기를 길게 이어붙였다는 뜻이다. 그건 작가가 그만큼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뜻이기도 할 거이다. 별게 없는 이야기를 그렇게 늘려 놓는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로 영리하고 잘 쓰는 작가라면, 중간에 뭔가 다른 흥미로운 것들을 집어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여간 칼럼으로 읽으면 딱 좋았을 듯한 길이의 이야기로 책 하나를 만들어 낸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나마 마무리를 훈훈하게 한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그렇지 않았다면 정말로 사기 당한 기분이 들었을테니 말이다. 적어도 작가가 진심이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야기가 부족했을 뿐. 이 책에서는 기대한만큼의 재미는 얻지 못했지만서도, 그럼에도 요즘 읽은 작가들 중에서는 가장 글을 잘 썼다. 그의 다음 글을 기대해 본다. 기대해도 좋을만한 재능이었으니 말이다.하긴 이렇게 이야기꾼이 범람하는 가정에서 자랐는데, 이정도도 쓰지 못한다면 그건 가문의 유산에 먹칠을 하는 것이 되는 것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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