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4중주

감독
야론 질버맨
출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크리스토퍼 월켄, 캐서린 키너, 마크 이바니어
개봉
2012 미국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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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 25주년째를 맞게 된 현악 4중주단 <푸가>는 새로운 시즌을 맞이해 공연 연습에 돌입합니다. 평범하게 공연을 준비하던 그들의 일상은 하지만 첼리스트 피터의 파킨스병 발병으로 흔들리게 되죠. 다른 단원보다 30살이나 나이가 많은 피터는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은퇴를 선언합니다. 다른 단원들을 충격으로 휘청거리죠. 그나마 제 1 바이올리니스트인  다니엘은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피터를 아버지처럼 따랐던 비올리스트 줄리엣은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려 합니다. 줄리엣의 남편으로 그간 묵묵히 제 2 바이올리니트스를 맡아왔던 로버트는 이제 자신도 제 1 바이올리니스트를 해보겠다고 선언합니다. 한 자리에서 묵묵히 25년을 지낸 사이, 어쩌면 그들의 소리는 완성도가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중년을 넘긴 그들에겐 말못할 갑갑함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비난을 해대기 시작합니다. 재능이 없다고, 열정적이지 못하다고, 겁쟁이라고, 무정했다고... 얼마전까지만해도 남들이 감탄할만한 완벽하고 탄탄한 결속력을 자랑하던 그들이었건만, 이제 남은 것은 서로가 서로를 견뎌내지 못한다는 진실 뿐입니다. 25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그들은 순식간에 붕괴되어 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없더라도<푸가>의 명맥만은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던 피터는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단원들때문에 마음이 상합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명맥을 잇는 것은 고사하고 현재의 <푸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지경입니다. 과연 그들은 25주년 결성 기념 콘서트를 열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피터는 그 콘서트를 자신의 은퇴 무대로 하고 싶다면서, 연주곡으로 가장 연주하기 어렵다는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을 해보자고 합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서 말이죠.

 

 " 베토벤 현악 4 중주 14번은 총 7악장인데, 각 악장이 연결되어 있어 연주자들은 중간에 쉬어선 안 되지. 이렇게 쉼없이 오래 연주하면 각 악기들의 음률이 서로 어긋나게 돼.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할까? 연주를 멈추어야 할까? 아니면 불협화음이 생겨도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춰가야만 할까? 정답은 나도 몰라."

 

베토벤이 한 인간의 전 인생을 그리며 작곡했다는 14번은 시작부터 비통한 음색으로 연주자들이 감정 잡기가 쉽지 않은 곡이라고 합니다. 완벽한 결속력과 하모니를 자랑할때도 어려웠을 그 곡을 완전히 음률이 어긋나 버린 이 시점에서 그들은 연주해 낼 수 있을까요? 그들은 과연 어떻게 연주를 할까요? 


                                

세련된 각본, 연륜이 느껴지게 하는 배우들의 헉소리 나는 연기, 그리고 내내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베토벤의 선율까지, 삼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앙상블을 자랑하던 영화였다. 내용이 좋으면서도 재밌기는 어려우며, 인생을 이야기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기란 힘든 법인데, 이 영화는 그 두 개를 멋지게 해내고 있더라. 자극적이지 않은 , 어쩌면 지극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만한 이야기를 흥미를 잃지 않게 하면서 풀어 나가는 솜씨에는 감탄스러웠고, 그것을 그렇게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연결해 내는 점에서는 놀라고 말았다. 도무지 이음새를 발견해낼 수 없었을만치 물 흐르듯 그렇게 흘러 가던데, 이 영화의 중심 소재인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의 정신을 영화속에서도 구현하고 있었지 않는가 한다. 

 

인생이란 쉼 없이 흘러 가는 것, 연주곡 속에 들어있는 악장간 쉼이나 연극에서의 막간처럼 ,우리에겐 새롭게 재정비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달리고 달리고 달릴 뿐인데,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우리가 시작한 곳에서, 그리고 상상했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 이 영화속에서도 인생의 끝과 중간에 선 <푸가>의 단원들은 정신없이 연주를 해야 할 상황에서 자신의 악기에 음률이 미묘하게 틀어져 버린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대부분이 인생 어느 시점에서 깨닫게 되듯이 말이다. 그럴때 우리도 역시, 베토벤이나 피터가 했던 고민을 똑같이 하게 될 것이다. 과연 멈춰야 할까? 아니면 필사적으로 상대의 음률에 맞춰가며 연주를 해야 하는 것일까? 답은 결국 본인, 자신만이 내리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왜냐면 우리에게 단 하나 주어진 것이 있다면 우리 각자의 인생뿐이니 말이다. 이 영화속에는 각기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는 <푸가>의 단원들이 있다. 그들의 대답이 듣고 싶다시는 분들은 꼭 보시길...시간을 들여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이니 말이다. 특히나 피터로 분한 크리스토퍼 웰켄의 연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저 연세에 그렇게 대단한 연기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드문 축복인지, 또 그걸 볼 수 있는 우리 관객들에겐 크나큰 은혜였고 말이다. 나이듦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신 그에게 박수를... <디어 헌터> 이래로 그에겐 최적의 배역이자 최고의 연기였다고 생각되던데, 그가 멋지게 살아남아서 이런 연기를 보여준다는 자체가 넘 감격스러웠었다. 단지 연기를 잘 해서 아니라 인생의 연륜이 배여서 나온 연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인생에서 한 수 배우고자 하시는 분들이나, 감동적인 음악 선율과 함께 울려 퍼지는 품격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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