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나라
양영희 지음, 장민주 옮김 / 씨네21북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아서 금방 읽고 난 참인데도, 이 책 제목이 <나의 조국>인줄 알고 검색을 해버렸다. 그러자 줄줄이 나오는 것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관련 음반뿐. 엉? 나의 조국이 아니었어? 그 비슷한 거였는데? 그럼 뭐지? 라면서 책을 다시 들여다보니 <가족의 나라>란다. <나의 조국>과 <가족의 나라>라, 어감상으로 온도 차이가 현격하다. 어쩜 바로 그것이 이 작가가 이 책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조국에는 내가 들어가 있지만 가족의 나라엔 내가 없다는 것. 내가 진심으로 선택한 내 나라가 아닌, 내 가족들의 당신들 나라라는 뜻으로 말이다.  아마도 그런 언어적인 뉘앙스 때문에 제목도 저렇게 지어졌겠지 싶다. 이렇게 보면 말이라는게 참 오묘하다.  똑같은 말로 해석이 될 수도 있는 두 문장이지만서도, 실은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니 말이다. 그렇게 작가는 제목만으로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우리를 자신의 인생속으로 초대를 한다. 과연 작가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하, 뭐 이런 기구한 인생이 있나 싶지만서도. 그리고 이렇게 꼬인 인생들이 있나 싶지만서도.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또 안타깝게도 우리 동포들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에 굉장히 놀라고 안타까웠다. 재일 조선인인 저자의 아버지는 조총련 간부로 일하면서 북한에서 선전하는 모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고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홍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자의 아버지는 북한 귀국선에 아들 셋을 몽땅 실려 보내고 만다. 이십대에서 열 네살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부모의 슬하에서 더 성장해야 하는 시기에 덜컥 김일성 부자의 은혜로운 손 아래에 떨여져 버리고 만 것이다. 일곱살때 오빠 셋과 생 이별을 하게 된 저자는 그것이 그들의 인생에 그토록이나 큰 피해를 끼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저 낙원에 가서 좋은 사람들과--아니 마음 놓고 협력할 수 있고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동포들과 함께--이상을 실현하고 삶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들을 몽땅 북한에 보내고 난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북한에 대한 안좋은 소리에 귀를 닫고 살았던 저자의 가족들은 결국 진실과 맞닥뜨리고 만다. 북한은 절대 낙원이 아니며, 그보단 오히려 탈출이 허용되지 않는 거대한 사이비 정치 집단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이상한 나라에서 부모도 없이 적응해야만 했던 저자의 오빠들은 서서히 인생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큰 오빠는 조울증을 앓다 정신줄을 놔버리고, 둘째 오빠는 미인 아내에게 버림 받은 후 자식들을 챙기는 삶만으로도 감지덕지 하게 된다. 북한에서 엘리트로 성장한 세째 오빠는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면의 고통을 감출 수는 없어 괴로워 한다. 그런 오빠들과 가족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분노하고 또 분노한다. 오빠들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든 북한 체제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저자 자신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던 책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나라에서 삶이라는 것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하다는 말에 욱했다가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엔 없는 그들에 연민을 느끼고 , 더 나아가 아무리 자신이 고통스럽고 분하다 한들 살고 있는 사람들만 하겠는가 라는 미안한 마음이 골고루 들어가 있었다. 어쩌다 이 가족의 인생은 이렇게 구구절절해졌는지, 그것이 다른사람도 아닌 아버지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나도 아니고 아들 셋을 몽땅 , 당신의 조국이라지만 아들들에겐 전혀 낯선 곳인 북한에 그렇게 선뜻 내어주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니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정말 가슴을 쳐야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이고, 그런 비뚤어진 과거를 살아내야 했던 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운명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도 왜 다정한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때는 시대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들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순한 양처럼 단순했던 그들은 그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버렸고 말이다. 과연 이제와서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정작 그런 일들을 기획하고 조종했던 사람들은 전혀 앞으로 나서지 않는 마당에 말이다.


아, 북한이 이런 사회였구나. 정말 끔찍스럽군. 이란 생각을 아니할 수 없게 만들던 책이었다. 그리고 6.25를 겪고 분단된 나라에 사는 우리 못지 않게 일본에 사는 재일 한국인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걸 알게 해주었다. 사실 놀라웠다. 일본이라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부자인 나라에서 사는 한국인들이 이렇게 고루한 사상에 젖어서 가족을 지옥으로 가게 만드는 결정을 그렇게 쉽게 해버렸다는 사실이 말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그같은 일이 벌어지도록 모두들 입 다물고 있었던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서도...누군가 자식들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당시엔 --70년대--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되었었다고 한다. 역시나 인간은...상식선에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인가 보다 싶다. 가장 극단이 오히려 진리가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북한은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도....


이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큰 오빠마저 죽은 지금, 저자는 예전에 만들었던 북한 체제 비판 다큐로 인해 북한에 더이상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정말 이제는 북한이 <가족의 나라>가 되버린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쓰면서도 저자는 조금은 북한이 변화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쓴 이런 책이나 영화, 다큐가 거기에 도움을 주었음 좋겠다는 바람이었을 것이고. 왜냐면 북한이란 나라는 그녀가 저버리기엔 너무도 질긴 인연의 나라이니 말이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혈육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에 신경을 끄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거 아니겠는가. 그녀는 오늘도 피터지게 말한다. 북한은 이렇다고...거긴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과연 누가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을까? 우리가? 글쎄...소름끼치도록 답답한 나라가 북한이라는 것은 잘 알았지만, 그리고 내가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 산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하게 만든 책이긴 했지만,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우리는 북한이 어떤지 과연 알고 싶을까 라는 생각에. 북한에 사랑하는 오빠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조카도 없는 북한에 대해 과연 우리가 진실을 알고 싶어할까? 그리고 그들의 변화가 어서 빨리 오기를 저자처럼 기도하게 될까? 그런 의미에서 어쩜 가족의 나라는 분단의 나라보다 훨씬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가족들의 비극이 한시바삐 사라지길 기도하면서 언젠가는 그 가족들 모두 모여 행복하게 사진을 찍는 풍경을 기대해본다. 아니면 적어도 저자의 조카 세대에서만은 저자같은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어 보다 개방된 사회에서 살게 되기를...적어도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니 만큼, 변화의 바람만 조금만 불어준다면 금세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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