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이른 작별 - 자살 유가족, 그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칼라 파인 지음, 김운하 옮김 / 궁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은 <너무 이른 작별>이지만, 원제는 No time to say goodbye 즉, 작별의 인사를 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이별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바로  자살자의 유가족들 이야기.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그녀 역시 그 유가족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성공한 내과의의 아내로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결혼 생활을 개선해갈 생각이던 칼라 파인은 남편이 마흔 네번째 생일을 한달 앞두고 자살을 해버리자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20여년의 결혼 생활조차 아무 의미가 없다는 듯,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아무런 인사도 남기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가 버렸다. 뒤에 남은 그녀에게 혼란과 고통, 죄책감과 무기력, 분노, 외로움을 남겨둔 채 말이다. 이 책은 그런 고통속에 홀로 남겨진 그녀가 어떻게 다시 자신의 삶을 되찾게 되었는지 그 지난하고 기나긴 여정을 담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의 자살이라...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냥 평범하게 사별하는 것도 굉장한 충격인데,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자살을 했다면 어떤 이유로건 충격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칼라 파인 역시 그랬다. 비교적 성공한 내과의였던 남편은 연달아 부모를 잃은 뒤 우울증이 시달리다, 그만 자신의 사무실에서 약물 투여로 자살하게 된다.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자 사무실로 달려간 칼라는 남편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 이후로 전혀 원치 않던 ,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을 세계로 떨어져 버리게 된다. 남편이 자살을 목격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인데, 경찰은 남편이 자살한게 맞는지, 혹시 그녀가 살해한 것은 아닌지 라는 의혹을 맨먼저 품었다고 하니,  세상이 험한 관계로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이 당연할지 모르겠으나, 자살한 가족을 둔 사람에게는 그런 의심을 받는다는 자체가 기가 막히고 기분이 나쁘겠지 싶다. 거기에 본인들 역시 그런 의심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것이 자살자 유가족들의 공통된 마음이라고 한다. 무언가 그에게 자살을 하도록 내몰지 않았을까, 내진 왜 그가 자살하려는 것도 몰랐을까 등등 자살한 사람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을 본인들 역시 가지게 된다고 하니 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가 죽은 자의 속을 어찌 알리요 마는, 그들은 끊임없이 묻게 된다는 것이다. 왜 자살을 하려 한 것일까 라고... 그 이유가 가장 궁금한 사람이야말로 자살자의 가족들일터인데,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소문들을 퍼뜨리면서 유가족들의 고통을 배가시킨다고 하니, 그들의 심정이 어떨지 안 봐도 훤하다. 때론 모른다는 자체가, 무식하고 배려없는 사람들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라는 것을, 절망속에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그래서 무식은 절대 자랑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에게 예기치 않는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남편의 자살로 인해 유가족이 겪어가는 고통의 최전선에 서게 된 그녀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을 잃어 버린다. 그때 그녀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바로 <자살자 유가족 모임>이었다. 거기서 그녀는 그녀와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동지들을 만나게 된다.  같은 길을 걸어봤기에 누구보다 더 잘 상대를 이해하는 그들 속에서 칼라 파인은 비로서 살아갈 희망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한결같이 따뜻한 눈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여서부터 였을 것이다. 그녀가 이 책을 쓰기로 마음 먹게 된 것이...그런 희망과 믿음이 없었다면 그녀 역시 남편과 동일하게 자살을 했거나, 살아있다고 해도 심한 고통에서 헤어날 길을 찾지 못했을 걸 잘 아는 그녀로썬,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살자의 유가족들의 심정이 어떤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그 고통에서 벗어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살자의 유가족이 갖게 되는 심적 고통과 그 고통의 근원,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무지에 대해 설명을 한다. 그것이 가뜩이나 고통스런 유가족들을 더 벼랑으로 밀고 있다는걸 몸소 겪어봐서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회에 만연한 편견에 주눅들지 말고 치유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녀도 잘 알다시피 그것은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왜냐고? 그건 아마도 살아있는 누구나 자신을 객관화하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자살자에 대한 추문이 가족들에게 그렇게 힘들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 가족은 나와 연결된 것이기에, 절대 절대 남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한층 더 남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것이 설사 절대적으로 공평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안다손 치더라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자신에게 감정적일 수 밖엔 없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에이즈나 말기암으로 고통스러워 하던 환자가 자살을 했다고 치자. 만약 그나 그녀가 내 가족이 아니라면 나는 잘 됐다고 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나 그녀가 더이상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에...고통스럽게 하루를 더 연장하느니,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이 내겐 더 축복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아마 난 그나 그녀를 위해,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은 그들을 위해 안도할지도 모른다. 나는 고통을 싫어하는 겁장이고, 단지 고통만을 위해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기에 나는 남들도 고통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니 그런 이유로 자살을 한 가족들 역시 충격을 받더라. 그걸 보곤 깜짝 놀랐다. 적어도 그건 이해할만한 여지가 있는 자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지경에 왔을시,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더군다나 고통이 연장되지 않는걸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들은 그저 그것을 자살이라고만 생각하더라.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이 아닌... 그걸 보면서 가족들에 대한 죽음은 어떤 경우에도 충격을 남긴다는걸 알게 됐다. 그런 경우다 보니, 자살이라면 더군다나 가족들에게 핵폭탄급 충격을 가져오는 것이 당연하다 싶다. 어떤 경우로도 그렇게 가족과 작별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사회 역시 그런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해 우리는 자살자 유가족들에게 이런 저런 메스를 들이댄다. 아직도 그들의 고통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과연 그럴까? 그들은 더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 그런 족속인 것일까? 아마도 그것이 이 책의 저자의 가장 억울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한다. 남편이 자살을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억울해 미치겠는데, 사회는 그런 그녀에게 왜 막지 못했냐고, 왜 자살할 것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냐고, 어떻게 했길래 남편이 자살을 했느냐고, 당신을 좋은 아내가 아니었던게 아니냐고 질문을 해대니 말이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자살자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그들의 유가족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살한 사람 자신이 아니고 말이다. 자살한 사람이야,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죽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서도, 그 뒤에 남은 사람들은 그가 남긴 모든 쓰기레들을 처리해야 하는 처지이니 말이다. 그것이 감정적인 것이건 경제적인 것이건,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고통이 어찌나 크던지,  난 유가족들이 자살자에게 분노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아마도 그들이 자살자를 미워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족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이 자살을 할때 유가족들이 그렇게 힘들어 할 것이라는걸 알지 못했기 때문이란걸 짐작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삶을 거두워 간 것일뿐, 그것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그렇게 크나큰 고통이 될 것이라는걸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진심으로 그걸 알았더라면,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은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지 않았겠는가. 그 누구도 가족들이 상처를 받는걸 원하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자살자의 유가족들이 읽으면 좋겠다 싶었던 책이다. 그들에겐 구세주나 다름없는 내용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유가족들에겐 그들만의 특이한 공감대와 세계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아마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본적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의도가 선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라도 그들의 고통을 다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원래 산다는 것이 그런 법이니 말이다. 유가족들에겐 특히 유익한 책이겠지만, 그외에도 그들을 대해야 하는 사람이라던지, 아니면 이해의 지평을 넓혀 보려는 분들은 보심 좋을 듯..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식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아주 아주 나쁜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유용한 정보가 있는 것은 좋았지만, 다만,  솔직히 줄줄히 자살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는 질리고 말았다. 세상에나...이렇게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놀랐다. 그런 사람들이 음지에서 홀로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굉장히 미안한 기분이었다. 이런 책들을 통해, 보다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짐을 통해, 유가족들이 더이상의 불필요한 고통이 없기를 바라본다. 그것이 우리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보가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 우리 유식해 집시다. 무식하단 이유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전혀 자랑스럽지도, 쉽게 면제부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니 말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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