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향한 탐험
피오트르 나스크레츠키 지음, 지여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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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에 잠이 든것까진 좋았다. 문제는 새벽 3시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는 것이다. 과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할게 무엇이 있다고 말이다. 남들 다 자는데 인터넷 혼자 하고 있기도 뻘쭘하고, 그렇다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도 영 내키질 않고. 잠을 청해 보려 이리저리 뒤척여 보지만 그럼에도 잠이 오지 않는다면 , 답답하고 분한 마음 부여잡고 일어나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책 읽는 것... 다만 이때 주의해야 하는 점은 그 어느때보다 책이 아주 아주 재밌는 것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고? 일단 단잠에서 깨어났단 것만으로 이미 기분이 잡쳐있을 가능성이 100% 이니 말이다. 그렇다보니 그 시간대에 내 손이 잡힌 책들은 왠만해서는 아작나기 마련이다. 인내심이 바닥났을때 무언가를 좋게 보기란 참으로 어려운 법이니 말이다.

 

어제도 그랬다. 해서 새벽 3시에 눈이 떠졌을때 큰일 났구나 싶었다. 왜냐면 잠 들기전, 요즘은 볼만한 책이 없다면서 툴툴대다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흐,  이걸 어째... 짜증나는 가운데 하는 수 없이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책들을 살펴 보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괜찮기는 한데, 도무지 언제쯤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해 알려주려나? <토르소 &토르소> --정말로 이걸 다 읽고 싶어? < 나쁜 대학, 우리 아들 대학 보내기 사생결단 프로젝트>--제목까진 그럴싸했는데 말이지...<스티븐 킹 11/22/63>--스티븐 아저씨가 글을 열심히 쓰신다는 것은 알겠어, 그런데 요즘은 그저 열심히 쓰는게 다라는게 문제지. <산티아고 :푸드러버의 순례길> --그나마 읽어볼만 하긴 한데, 아까 읽다 잤더니 더이상은 읽고 싶지 않아. <야수의 정원 >--아마존 선정 2011년 최고의 논픽션이라곤 하는데, 정말인지 의심스러워~ <미국의 아들>--이건 정말 읽어야지, 다만 지금 말고,나중에... <부모와 아이 사이>--중반을 넘어서니 그 말이 그 말 같던데, 이거 꼭 완독해야 할까? ....

 

그렇다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바로 이 책 "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향한 탐험" 이었다. 뭐, 하는수 없지, 어쩌겠어, 이것밖엔 안 남았는데, 라면서 마지못해 읽기 시작했는데. 이거 의외로 재밌지 뭔가. 뜻밖에도 말이다. 전혀 재밌어 보이지 않아서 구석에 처 박아둔 책이 가장 재밌을 줄 그 누가 알았으리요. 하여 새벽 3시에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고 이불속에 엎드려 비몽사몽 읽어 내려 가던 와중에 점차 짜증이 썰물처럼 사그러 드는걸 느낄 수 있었다. 결국엔 앉은뱅이 밥상까지 가져와 진지하게 읽게되고 말았다. 잠 자는 것보다 책이 더 궁금해져서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은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대략적으로 한번 리뷰를 해 볼까나?

 

일단 이 책의 저자인 피오트르 나스크레츠키님이 유능한 사진가에 해박한 박물가이며 -특히 여치 분야에 전문가임--지극히 현실적인 환경보호주의자에 매력적인 작가라는 사실을 아셔야 한다. 그의 내력을 알고 나면 이 책이 어쩌다 이렇게 훌륭해 졌는가 단박에 짐작이 되실테니 말이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호기심의 대상이던 "살아있는 화석"에 대한 의문때문이었다고 한다. 기나긴 지질학적 시간동안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동식물이 존재하며, 이런 동식물의 몸과 행동에 과거의 지구 모습이 담겨져 있다는 주장을 맨처음 한 사람은 찰스 다윈이었다. 인간이 존재하기전 원시의 지구를 상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을 매료케 했던 이 개념은 하지만 과학이 점차 발전되면서 정확히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현재의 모습이 고대의 화석과 똑같다고 해도, 실은 기나긴 세월동안 그대로인 경우는 없다고 하니 말이다. 조금씩 조금씩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약간씩은 변형된 형태로 현재에 이른 것이라 하니, 어쩌면 살아있는 화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은 과거의 흔적뿐일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대의 유물인 화석과 너무도 닮아있는 생물체를 만난다는 것은 인간에겐 너무도 신기한 일인지라, 저자는 이들을 "잔존 생물" 혹은 "유물 생물" 이라 명명한 뒤, 전세계를 돌아다니면 그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탐험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가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찾아 탐험에 나선 오지들은 대충 이러하다. 지구에서 가장 고립되고 오래된 장소인 뉴기니와 뉴질랜드, 그리고 남아공의 핀보스와 서큘런트 카루 지대, 그외 서 아프리카의 레퓨지아 숲, 남아메리카의 기아나 순상지, 그리곤 얼음귀뚜라미붙이를 찾아 캐나다로 날아간다. 그것만이 아니다. 짝짓기를 위해 육지로 나오는 투구게를 찍기 위해 미국 동부 해안으로 날아간 그는 마지막 탐험지로 보스턴의 자신의 집 주변인 이스타부룩 숲을 택한다.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찾아 지구 끝까지 해매고 다녔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도 과거 지구의 자취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 이 숨가쁜 여정이여. 그리고 그 험난한 일정이여...여행을 하면서 작가는 동료가 동굴에서 굴러 떨어지는 광경도 목격하고, 말라리아에 걸려 몇달 간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자꾸만 바다에 빠지는 나무 늘보를 만나기도 한다. 소매치기도 당하고, 도둑 취급도 당해가며, 공항 직원들의 노골적인 의심에도 한마디 변명도 못하면서 세계 전역을 빨빨 거리면서 돌아다닌다. 그저 멋진 생물체들을 직접 보고 사진을 찍는다는 일념하에 말이다. 그의 열정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그가 이런 여행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설렜을지가 눈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생생한 열정으로 만들어 낸 탐험집이다보니, 이 책이 이렇게 흥미진진해진 것도, 매혹적인 이야기가 줄줄 이어지는것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자연스러운 것도 당연한 것도 절대 아니지만서도 말이다. 거기에 비단 작가의 열정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작가의 글솜씨 역시 만만치 않아서 요령있는 설명과 재치있는 전개,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어깨에 힘 쫙 뺀 문장들은 이런 종류의 책이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부수고 있었다. 보통 이런 책에선 기대하지 않는 자질이었기에 놀라움이 컸다고 보심 되겠다. 그냥 대충 써갈긴 건조한 설명이 전부일 거라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고 매혹적으로 들리게 만드는 작가의 입심보다 더 이 책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그의 엄청나게 아름다운 사진들이었다. 정말로 사진들이 하나 하나 다 압권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체들을 여지껏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질 정도로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로 넘쳐났는데, 그걸 렌즈를 통해 담아내는 작가의 솜씨는 가히 명불허전이었다. 얼마전 내셔널 지오그라픽 사진전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을 이 책을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런 생명체들을 찾아내는 눈도 눈이지만서도, 그걸 이처럼 선명하게 담아내는 작가의 재능에는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엔 없었다. 이런 사진 어떻게 찍나요 라는 질문에 총론적인 설명만 해주시던데, 실제로 찍는 과정을 들어보니 보통 복잡한게 아니더라. 이 작가가 자신의 사진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었다. 하여간 그가 이 책 안에 수록해 놓은 생명체들을 언급해 본다면...


벨벳으로 만든 헝겊 인형 같던 서아프리카의 아트와 공룡 거미, 투명한 몸체에 선명한 장미빛 내부로 치장한 뉴기니 단각류. 나무잎과 거의 식별이 불가능한 가랑잎 벌레, 턱 길이만 자신의 몸 2배인 엑시마우스 사슴벌레, 녹색 몸체에 분홍색 눈과 빨간 수염을 가진 분홍눈 여치,투명한 녹색 몸체로 이끼 덮인 뉴기니 숲속에서 완벽하게 위장이 가능한 투구 여치, 투명한 날개를 펼치고 나뭇잎 표면에 달아붙어 자신의 몸을 숨기는 매미충, 흡사 장난감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도 믿을 듯한 남아공의 테이블마운튼 바퀴벌레, 강렬한 검은색과 빨강색의 조화로 자신의 몸에 독성이 있음을 만천하에 자랑하는 거품메뚜기, 덤블의 말라 비틀어진 가지와 도저히 분간이 안 되던 쌍뿔거리 거미와 우아함의 결정체인 서 아프리카 살모사, 어디를 봐도 흠잡을 데 없는 이끼 모양의 거미, 보석같은 아라노이트라 캄프리드 게이(거미류) 죽은 잎을 완벽하게 흉내내는 죽은 잎 사마귀 암컷(녹색)과 완벽하게 아름다운 매끄러운 재질의 갈색 나뭇잎 날개를 달고 다니는 죽은 잎 사마귀 수컷의 우아한 자태는 동일한 종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그외에 선명한 코발트 블루의 날개가 넋을 잃은 정도로 아름다운 가이아나의 모르포 메엘 라우스, 자외선에 노출되면 초록색으로 빛이 난다는 전갈등은 이 지구가 얼마나 매력적인 생명체로 가득한 곳인지, 그리고 우리가 그걸 얼마나 모른 채 살고 있는지 새삼 확인하게 해줬다.  피사체들의 아름다움이나 특별함이 곳곳에 묻어나던 사진들은 저자가 이 생명체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고 열정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해줬다. 이런 사랑이 아니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사진이 나올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아, 물론, 사진 작가다운 유능함이 있는 분이라서 그런 열정도 가능한 것이었겠지만서도 말이다.


책을 덮으면서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동물과 식물, 그리고 곤충들을 소개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바로 이 저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해박한 식견도 식견이지만, 그의 무모한 열정이 아니라면 도저히 나오기 힘든 책 같아 보였으니 말이다. 아름다운 사진들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지적인 모험이 될 터이지만서도, 저자가 곤충학이 전공인 관계로 곤충 사진이 많다는 점은 미리 알아두심 좋을 듯하다. 사진만 본다해도 해될 것은 없지만, 사진만 보면 좀 으스스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곤충을 싫어하시는 분들이라면 특히나 더...사진이 아름답다고는 하나 저자의 설명과 함께 봐야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내는 책이라는걸 알아달라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면 전혀 징그럽지 않은 피사체지만, 설명 없이 보게 되면  기겁 할만한 사진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역시나 인간은 전염되기 쉬운 존재인가보다. 저자의 해맑고 순수한 열정에 공명이 되다보니, 징그러운 뱀이나 전갈, 바퀴벌레마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는데 말이다. 물론 실제로도 무척 아름다운 생명체였지만서도. 하여간 찬찬히 내용과 함께 사진을 들여다 보시면서 이 지구상의 매혹적인 생명체에 대해 경외심을 갖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동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후회없는 독서 경험이 되실듯...


그나저나, 나 세상에서 바퀴벌레 제일 싫어하는데, 이 책을 보곤 바퀴벌레도 바퀴벌레 나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진짜 이게 바퀴벌레라고? 할만큼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들을 모으고 싶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서도, 특히나 투명한 몸체에 장미빛 내용물로 채워진 단각류를 보면서, 만약 바퀴벌레가 저렇게 생겼다면 우리가 비명을 질러가며 때려잡을 일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해가 안 되신다고? 그건 사진을 보심 단박에 이해가 가실 것이다. 그외에도 투구게가 전갈류라는 사실이나, 빙그레 미소짓는 나무 늘보가 아기를 닮았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박물학자가 되려면 온갖 기후에 빨리 적응하는 신체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질병을 두려워 해서는 안 되겠더라.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까? 저자가 조심에 조심을 해도 풍토병이니 전염병에 걸려 고생을 하는 걸 보니 말이다.  덕분에 나중에 조카가 박물학자가 된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너무 고생을 하는걸 읽으려니, 따땃한 방에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 책을 읽는 것이 황송해지더라. 하여간 넘치는 사랑과 열정으로 이 책을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어 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지구가 이렇게 풍요로운 곳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한 밤의 불면증이 자아낸 최고의 수확이 아닐런지...이런 책만 있어 준다면 종종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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