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현대미술가 시리즈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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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맥클린의 <빈세트>를 들을때마다 " 이 세상은 당신같이 아름다운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가사에 울컥하곤 한다. 이상도 하지? 누구보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낸 사람을 우리가 정작 박대했다는 것이 말이다. 우리에게 이 지구가 얼마나 놀랍도록 아름다운지 보게 해준 사람에게 우리가 돌려준 것이라곤 배신과 조롱과 비난밖에 없었다는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의 눈에 잡힌 젠체하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에는 열렬히 찬사를 보내면서도 인간 고흐에 대해선 박정한 우리들을 보면 얄밉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마도 우리인간은 천성적으로 은혜를 모르는 무리인지도 ... 어쨌거나 고흐를 사랑하셨던 분들은 기뻐하시라! 다시 그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이른바, 회화의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고 이 책의 공저자인 데이비드 호니크가 말씀하신다. 어? 진짜로? 어떻게?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일단 이 분의 말을 들어보심 좋을 것이다. 화가로 평생을 살아오셨고, 현재도 현직 화가인 그가 평생의 통찰을 담아 논조를 펼치고 있으신 것이니 말이다.  현대 미술은 난해하거나 재수없거나 추하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반가운 소식이지 않는가 한다. 다시금 우리가 이해 가능한 그림들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어쩌다가? 라고 생각하신다면 현재 주류인 현대 미술에 대한 염증이 점차 증가되는데다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화가들의 반성이 뒤따라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보자는 운동인 것이다.  해서 처음엔 왜 저런 제목을 달고 나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핵심을 압축한 좋은 제목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정말 다시 그림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다른 누구도 아니고 팝 아트스트이자 포토 콜라주의 창시자라는 데이비드 호니크가 회화로 회귀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니, 어찌된 영문일까? 내용을 조금 들여다 보기로 할까?

 

우선  데이비드 호니크가 누군지 모르다고 하시는 분들도 이 책을 읽는데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 드린다. 나 역시도 그의 이름을 이 책에서 처음 들어봤지만서도 읽는데는 상관이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아무런 선입견없이 읽게 된 것이 더 낫지 않았는가한다. 책 자체만으로 평가를 하게 되는데다, 조금은 수다스러운 노 화가에 대해 새로 알아가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고 말이다. 그나저나 이 양반, 70이 넘은 나이이신데도 어찌나 활기가 넘치시던지...그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열정, 사물을 분석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에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화가로써 남들과 차별되는 개성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인데, 그것만이 아니라 본인의 미학적인 관점을 명확하게 설명할 줄 안다는 점에서 감명을 받을 수 밖엔 없었다. 첫인상과는 달리 그는 꽤 비범한 화가였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천재? 또 그걸 남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이 있고 말이다. 화가들의 표현력이란게 상대적으로 그림에 한정되어 있을 것이라는 나의 편견은 단숨에 부셔지고 말았으니... 이 양반이 워낙 똑똑해서 말이다. 하여간 별 내용 있겠어? 했던 나의 심드렁함은 초반을 넘어가면서 열렬한 열정으로 바뀌었으니...그가 진실로 들어줄만한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시각에 평생에 걸친 사색, 그리고 언제나 현역이라는 열정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이였으니 그렇지 않겠는가. 그가 자신만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 순간 저절로 집중이 되더라. 누구라도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그가 어떤 말을 하건 간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법이니 말이다. 행운인지 아니면 기적인지, 그의 대화 상대가 이 책의 저자인 마틴 게이퍼드라는 것은 정말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의 대화 상대로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대화를 해본 세상의 모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대화를 잘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기술이다. 상대의 말을 헤아리면서, 상대가 하려는 말을 막지 않고, 정확히 그가 하려는 말이나 행간에 숨겨진 말까지 끄집어 내주면서 대화를 나눈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책의 저자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최고의 화가와 최고의 인터뷰어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단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눈 것밖에는 없는데 그것을 이토록 풍성한 내용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인터뷰어의 자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가 하려는 말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은 물론이요, 그가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고,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정신 바짝 차리고 경청하고, 그의 심중을 이해하려 늘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겸손하고 진지해 보였다. 그렇다보니 데이비드 호니크가 그를 예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 싶다. 자신을 이렇게 깊이있게 이해하는 상대가 안 예뻐보일리 없으니 말이다. 

 

하여간 환상의 조합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이 짝짝쿵을 맞춰가며 나눈 대화들을 정리한 것인데, 골자만 추려본다면 다시 회화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하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생각을 설득력있게 펼치고 있는 책이라고 보심 된다. 거기에 호니크 자신이 창작하는 과정이나 뜨문뜨문 엿보이던 그의 사생활, 그리고 영국의 외딴 시골에서 그가 자신의 고향을 그리게 된 사정이 들어가 있었다. 오랫동안 타지 생활을 하던 호니크는 말년이 되자 고향에 정착 해서, 현재 고향의 사계 연작을 그리고 있다고 하는데, 그의 시선에 잡힌 고향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는 책 곳곳에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궁금하시면 보시길... 참, 책 표지에 보이는 멜빵 바지를 입은 분이 바로 데이비드 호니크씨다. 지적이고 자신의 주장이 확실한 거장과의 대화를 엿듣는 귀중한 기회를 잡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절호의 기회일 듯...다시 예전처럼 회화로 돌아갈 것이라는 호크니의 주장에, 처음엔 글쎄? 라는 미심쩍은 심정이었는데. 읽어가다 보니 그의 주장에 열렬하게 동조하게 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 알고보니 나 역시도 현대 미술엔 그다지 애정이 없었나보다. 나야 뭐, 뭐니 뭐니 해도 고흐나 모네의 그림이 좋으니 말이다. 거장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명쾌해서인지 이해나 설득이 쉽다는 점이 장점.  내가 아무리 헛소릴 떠든다고 해도 이 책에 대해 감이 안 잡히실 분들을 위해 밑줄 그은 말 몇 문장을 적어 놓았으니,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한번 이 책을 읽어보심도 좋을 듯...

 

<밑줄 그은 말들>

호니크; 내가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작은 드로잉 몇 점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며칠 동안은 아침에 그곳에 가서 그저 20분 동안 서 있다가 이곳으로 곧장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머릿속에 놀랄 만큼 많은 것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보는 것이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밖의 많은 것들을 무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네는 나는 이것을 보겠다고 결심했을 겁니다. 물에 반사되는 구름을 실제로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지요. 그 후 10~15분 동안 기억력이 아주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 상상해 보셔요. 이른 아침 모네가 한 일은 수련이 핀 연못으로 걸어 내려가 담배 몇 대를 피우며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돌아와 그림을 그린 것이죠.--105

 

반 고흐는 사진 촬영을 위해 자세를 취하려 들지 않았습니다만, 그 이후로 다른 모든 예술가들을 찍은 사진이 존재합니다. 이는 예술가들이 사진가를 위해 포즈를 취해주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반 고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진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내 추측으로는 그는 세계가 사진처럼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나느 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진이 실제를 포착한다고 믿고 있지요. 사진은 실제를 조금은 포착하지만 그렇게 많이 포착해내지는 못합니다. 반 고흐는 그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반 고흐의 작품과 세잔의 작품이 세계를 보는 인간의 시각과 보다 가깝습니다. 세잔이 브그로가 정직하지 않다고 언급했을 때, 그는 우리는 그런 식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대상의 위치를 의심하는, 보다 세잔적인 방식으로 봅니다.--121

 

반 고흐가 그린 아를 주변의 들판을 찍은 사진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겁니다. 꽤나 따분하하고 평이한 풍경이지요. 반 고흐는 우리로 하여근 카메라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게 합니다. 그의 많은 작품들과 그 주제가 된 풍경을 실제로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풍경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반 고흐에게 물감과 캔버스를 주고 미국의 가장 따분한 모텔 방에 일주일간 가두어 둔다 해도 그는 황폐한 욕실이나 낡은 상자를 그린 놀라운 회화 드로잉을 완성할 것입니다. 나는 반 고흐가 어떤 것이든 그릴 수 있고, 그것을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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