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것의 개념 - 서문과 세 개의 계론을 수록한 1932년 판
카를 슈미트 지음, 김효전 외 옮김 / 살림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결단주의의 창시자인 카를 슈미트가 정치적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냐를 두고 논증하고 있는 책이다. 확실히 말해둘 것은 그가 말하는 "정치적"이라 함은 다분이 법학적인 견지에서 투영해 본 개념이라는 것이다. 정치학적인 견지에서 본 개념이었다면 오히려 이해하기 쉬웠을지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되니 말이다. 가장 그럴듯하게 떠오르는 것은 " 정치란 권력을 쟁탈하기 위한 행위? " 라고 것 정도? 하지만 법학적인 입장에선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권력을 쟁탈하기 위한 행위가 비단 국가라는 단체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니 말이다. 국가라는 단위에서, 적어도 한 나라의 정치라고 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결단을 내리는 주체로써의 정치적 세력이란 무엇인가? 를 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슈미트가 말하려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보니, 다른 어떤 분야하고도 겹치지 않는, 이것이 아니면 법학적인 면에서 정치라고 하기 곤란하다고 이를 정도의 핵만 남기게 되는데, 슈미트가 주장하는 그런 경지의 "정치"라는 개념은 의외로 "적"과 연관이 지어진다. 적어도 "적"을 설정할 수 있을 정도라야 정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나라엔 수많은 시민단체가 있고, 정당이 있으며 , 노조가 있지만서도, 그들이 나라의 적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나라의 적이라고 결단 내리고 동의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이 막강하고 광범위하며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정도가 되야지나, 그 권력을 정치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적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학적인 의미의 적은 아니다. 그야말로, 언젠가는 전쟁도 불사할 수 있는 그런 상대로써의 적을 의미하는 것이니 말이다.  말하자면 전쟁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정치적이라는 개념은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에서 전쟁으로 논리가 뛰는 것을 보면서 어쩜 슈미트가 이런 논쟁을 하게 된 것은 다분히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가 살았던 시기가 바로 전쟁이 횡횡하던 유럽의 화약고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독일 태생인 그는 1888년에 태어나 거반 100년 가까이 사신 분이다. 전쟁이 언제 발발할 지 모르는 불안 가운데서 살았었기 때문일까, 그는 주로 정치적인 개념의 핵을 전쟁과 연관짓고 있었다. 그것은 그만큼 전쟁이라는 행위가 인간 이성의 한계점을 넘어서는 행위라는 의미도 있고, 사람에게 살해를 지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통의 힘과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고 봐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일상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살해나 군 복무를 지시했을 시에 우리는 저항하거나 반발할 수 있지만, 정치적인 의미에서 그런 명령에 대한 불복은 곧바로 명령 불복종이나 적대 행위로 간주되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러니를 아이러니 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의 핵심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말하자면 이성의 전복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이성의 전복을 받아들이게 되는 메카니즘이야말로 정치적인 행위에서 우리가 특별하게 취급해야 하는 점이라고 슈미트는 설파하고 있었다. 보통의 상황에서라면 분명 범죄가 되는 행위가 전쟁에서는 영웅이 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려면, 다른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은 32년에 쓴 것을 63년에 저자가 다시 손 본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 30년의 시기동안 격란의 시대를 보낸 탓에 자신의 견해라도 일정 부분 수정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유럽의 30년대에서 60년대를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한 사람이라...나찌가 발생하고 힘을 키워 나가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가하다 망하는 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의 입장에서 권력을 어떻게 생각하고 분석했을지 궁금하긴 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진심이 무엇이었던 간에--어찌보면 그는 그저 솔직하게 말한 죄밖엔 없을지 모르는데--, 그의 결단주의가 나찌의 독재에 논리적인 힘을 실어주었다는 것이다. 어떤 내용이건 간에 국가가 일정한 정치적인 결단을 내렸다면 국민은 그에 저항없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라의 결단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국민이길 포기하는 선언이라고, 즉 국민이 자신을 국가의 적이며 적과 동일한 취급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좀 위화감이 없지 않았다. 물론 상당히 논리적이라는 것은 알겠다. 이것 아니면 저것일 수밖엔 없다는 흑백논리, 선명하고 투명하며 알기는 쉽다. 다만, 그것이 휴머니즘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정의와 거리가 멀어진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겠지. 이미  그것이 지난 역사속에서 증명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독재나 쿠데타로 만들어진 정부라도, 물론 국가의 정치적인 행위를 할 만한 권력을 가졌다는 점에서만큼은 이의가 없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국민 모두를 위한 결단일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만은 의문을 버릴 수 없는게 아니겠는가. 독재자의 결단이 국민 모두가 긍정해서 따를만한 합의라고 할만한 것이냐에 이르면 할 말이 많아지는 것이니 말이다. 즉, 정치자의 결단이 국민의 마음일 수는 없는 것이고, 항상 옳은 수는 없다는 점에서 논란이 여지가 있다 하겠다. 물론 슈미트의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라 하겠지만서도... 슈미트에게 중요한 것은 결단일뿐, 결단의 내용이 아니니 말이다.


결국 슈미트의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스멘트의 통합론이 왜 나왔어야 했는가 이해하게 된다. 알맹이는 필요없다, 어떤 내용이건간에 국가의 권력 주체가 내린 결론만이 중요한 뿐이라라는 결단주의에 맞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합의가 아니겠는가. 라는걸 주장하는 학파가 통합주의니 말이다. 정치적인 것이 언제나 옳을 수만은 없다는 소극적인 의문에서보다,  만약 그 정치적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틀릴 시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통합주의가 옳다고 본다. 정치적인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모든 국민의 보이지 않는 함의니 말이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슈미트의 책을 따로 읽어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학부를 졸업한지 오래 되서 그런지 이 책 역시 읽기가 만만치는 않더라. 전공한 사람이 이럴진대, 보통 사람이 읽는다면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해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30년대에 주장한 한물간 이야기를 이제 와 읽어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말이다. 혹시나 내가 놓친 주옥같은 문장이 있지 않을까 해서 눈을 뒤집고 두 번이나 읽어보았지만서도, 잠만 하염없이 온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솔직히 이 책이 지금 이 시대에 유용한 것인가는 의문이다. 우리가 독재 시대에 사는 것도 아니고, 주적이라고 말하는 북한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서도, 전쟁을 염두에 둔 정치라는 개념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현대가 1930년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훨씬 더 복잡한 이해관계와 패러다임으로 돌아간다는걸 생각해보면, 적이라는 개념이 어딘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현대에선 이보단 훨씬 중요하고 시급히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니 말이다. 다만 한가지 유용했던 점은 법학의 논리 전개 과정을 심플하게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슈미트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논증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건 몰라도 슈미트를 왜 천재라고 하는지는 감은 오더라. 악마적인, 또는 파우스트적인 명석함의 대명사가 되지 않을련지... 하여간 슈미트란 이름만으로 간만에 학부시절의 추억을 되살아 나긴 했지만서도, 그렇다고해서 이 책이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하니, 법학 전공이 아니신 분들은 들기 전에 한번 주의 깊게 들여다 보시길...도전한다고 해서 의미가 이해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도전해도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 책도 간혹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좌절하실 필요가 없는 것이 ,이 책은 대학원 전공자 정도나 되야 흥미를 느끼면서 읽을만하지 않을까 한다. 나, 헌법 좋아했고, 법철학 싫어하지 않았지만 이 책 읽는 것이 썩 반갑지 않았다. 밑바탕에 어느정도 지식이 깔리지 않는 한 무슨 말인지 모를 가능성이 크고, 유용한가는 뭐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의문이 들고 말이다.  하니, 덥썩 잡기 전에 일단 미리 간을 보시라고 권한다. 이 저자가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 해도 당신 잘못이 아닐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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