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나무꾼 카츠는 삼년 전 아내를 여윈 뒤 속 썩이는 아들 녀석 하나와 살고 있는 예순살의 사내다. 나무만 보고 살았던 그의 단조로운 일상에 예기치 못했던 소동이 벌어진다. 영화를 찍는 팀 하나가 마을로 굴러들어 온 것인데,  촬영지를 찾는다면 산 속을 헤메는 그들이 안스러워 도와주던 카츠는 그들의 요구가 한도 끝도 없자 짜증이 난다. 그 중 압권은 엑스트라가 모자라니 단역으로 출연해 달라는 것으로,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니 끝까지 해보자 싶어 좀비 단역으로 출연하게 된 카츠는 동료들이 의외로 신기하게 받아들이자 으쓱해진다. 자신이 출연한 장면을 보곤 더 기분이 좋아진 카츠는 촬영장에서 도통 쓸모없는 녀석처럼 겉돌던 코이치를 목욕탕에서 만난다. 난생처음 큰 화면으로 본 자신의 연기에 신이난 카츠와는 달리 침울하기 짝이 없는 코이치, 촬영이 재밌다는 카츠의 말에 코이치는 도통 믿을 수 없어 한다. 잔뜩 풀이 죽어 자신을 역으로 데려 달라고 한 코이치는 그 보답으로 카츠에게 자신의 대본 노트를 건네준다. 그 밤에 도쿄로 도망칠 생각이었던 코이치는 탈출 직전 조감독들에게 붙들려 잡혀 오고, 그제서야 코이치가 감독이라는 것을 알게 된 카츠는 그 재밌는 촬영을 코이치가 마뜩해 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어느새 촬영장의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의 직업은 나몰라라 하고 촬영장에서 자리를 잡게 된 카츠, 그는 엑스트라 섭외에서 장소 물색, 그리고 목소리가 작은데다 카리스마마저 없는 감독을 대신해 아예 촬영장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한다. 그의 열성 덕분에 지지부진하던 영화는 점차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고, 덕분에 코이치의 얼굴에도 서서히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데... 

 

 

감독 의자에 앉는 것이 부끄럽다면서 맨바닥에 앉아 점심을 먹는 감독 코이치와 감독 의자인줄도 모르고 덜썩 앉아버린 카츠. 카츠는 코이치가 스물 다섯이라는 말에 앞에 있는 소나무를 가리키며 그것이 스물 다섯 먹은 녀석이라고 알려준다. 그 옆에 있는건 예순살, 딱 내 나이라고 하면서...둘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하는 코이치에게 카츠는 말한다. 맞다고. " 나무가 제몫을 하려면 100년은 지나야 하거든" 이라면서.  코이치 뒤에 서 있는 나무가 150년임을 알려주면서, 카츠는 젊음이 마냥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도, 연륜이 대단한 것이라고도 말하지도 않는다. 젊은 나이에 감독이 된 것이 기쁜게 아니라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공황 상태인 코이치에게 카츠는 그저 말해준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스물 다섯이나 예순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말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고...>

 

 

<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나오던 노배우 역의 야먀자키 츠토무상, 근엄한 표정과는 달리 치질로 고생중이시다. 현재 엉덩이의 압박을 참으시면서 촬영을 하시는 중으로, 배우들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그 근사한 이미지가 실은 모두 조작된 것이라는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너무도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아서 오히려 심하게 웃기던 이 노배우의 등장은 배우에 대한 환상을 깨알같은 웃음으로 부셔주고 있었다. 예술은 무슨 얼어죽을 예술, 노 배우가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단지 돈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 잠시 안스럽단 생각이 들게 하던데, 별로 많은 분량이 아님에도 비중있는 배우가 출연해서 의외다 싶었는데 역시나 반전이 있었다. 치질 때문에 몸서리를 치면서 영화를 찍으면서도, 영화 자체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은 유지하고 계시던 것,  보통 그 정도로 몸이 안 좋으면 짜증을 내고 화를 내야 정상인 것 같은데 말이다. 몸은 비록 늙고 고장이 나서 진상을 부리지만서도, 그것이 정신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은 모습이 어찌나 신선하고 의연해 보이던지... 종종 늙었다는 이유로 누구에게나 짜증을 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을 본다. 늙었으니 대접해 줘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노인을 공경하게 되는건 그들이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연민을 보여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닐런지... 하여간 인간적으로 멋지게 늙는다는 것이 실은 별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던데, 감동이었다.>

 

 

< 백수로 정신 못차리고 사는 자신의 아들과는 달리 조금씩 사회인으로써 발을 내딛는 코이치가 무엇보다 부러운 카츠 아저씨. 처음 단역 엑스트라에서 시작된 일은 점점 다방면으로 커지기 시작, 이젠 촬영장에 그가 없으면 이상할 지경이 되버린다. 아내의 기일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열정적으로 촬영에 몰두하던 카츠는 같은 나이 또래의 코이치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히려 아들에 대한 이해가 커져간다. 젊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냐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아들이 못내 못마땅했던 카츠는 코이치를 보면서 젊은 시절의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 알게 된다. 재밌지 않나. 타인의 고통과 아픔은 그렇게 잘 보이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운 아들의 고민은 몰랐다는게 말이다. 그런 깨달음은 그로 하여금 난생처음 아들을 두둔하기에 이른다. 백수로 사느니 아버지 일이나 도우라는 동네 아저씨들의 말에 그건 아들 마음이지 라면서 아들을 내버려 두라고 소리치는 카츠, 아들은 그만 놀라고 만다.> 

 

잔잔하면서 천천히 자신의 말을 하고 있던 일본 영화였다. 별 기대없이 봤는데, 2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이 별로 지루하지 않게 휙 지나가더라. 잔잔하다 못해 종종 지루해지는 일본 영화를 생각하면 기적같은 연출이지 싶다. 별 이야기가 없는데도 오히려 그것이 이야기가 되던, 극적인 드라마 없이도 얼마나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지 생각하게 하던 영화였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솔솔 자아내던 매력적인 극본도 좋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었다. 원래는 오구리 슌이 출연한다고 해서 보게 된 영화였는데, 영화 시작하자마자 카츠 역의 아쿠쇼 코지상이 분위기를 압도하더니 끝까지 그러시더라.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관객들을 집중하게 만드는 연기, 별로 힘들이지 않고 연기하시는 듯한데도 자유자재로 관객들을 웃고 울리는 것을 보면서 역시 명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에 오구리 슌마저도 그에게 밀리는 듯했는데, 그렇다고 슌이 연기를 못한 것이 절대 아니었으니 코지상이 얼마나 연기를 잘 하시는지 짐작이 되실 것이다. 미모도 당해내지 못하는 재능을 목격하는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지...하여간  코지상, 생긴건 늑대 비스드름 하신데, 연기 하나 만큼은 여우처럼 잘 하신다. 그 감칠맛 나는 연기에 영화가 한층 더 재밌었다. 그 외에도 많은 연기자들이 자신이 맡은 역을 자연스럽게 해낸 것도 좋았다. 영화의 분위기랄까, 톤이라고 할까. 그런걸 흐트리는 연기자가 없다는 것은 보는 입장에선 굉장히 안심이 되는 일이니 말이다. 주연에서부터 조연까지...튀지 않은 연기로 영화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출을 잘 하지 않았는가 한다. 종종 웃기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데다, 인공적이지 않고, 교훈을 강요하지 않으며, 등장인물들 각자가 천연덕스러울만치 자연스럽다는 점도 좋았다. 주변에서 일어날만한 이야기를 흔연스럽게 전달하던 것이나, 각자의 고민을 무겁지 않게, 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하지 않는 자세로 보여주던 것도 마음에 든다. 각자가 자신만 생각 하는게 아니라,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바뀌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인간은 원래 잘 변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타인에게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겠는가 회의적이었는데,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설득력 있었지 싶다. 영화 뒷판에서 벌어지는 사정도 흥미진진했고 말이다. 잘 만든 영화다.  이 정도 퀼리티라면 문학작품에 비견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 보고 나면 적어도 기분 만큼은 흐믓하실 듯...어떤 장면을 좋아하실지는 각자 다르겠지만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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