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고르세요
켄트 그린필드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자유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건 간에 그것이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건, 친구를 왕따 시키건, 결혼을 하건, 결혼을 하지 않건, 멍청하고 제멋대로인 상사에게 대들건, 회사를 때려 치우건, 집을 사건, 하루종일 홈쇼핑을 들어다 보면서 쓸데없는 물건들을 사들여 모으건, 외도를 하건, 외도를 하지 않건, 종교를 믿건 종교를 믿지 않건 , 폭력을 쓰건 살인을 하건 간에...그것이 적어도 본인의 선택에 따른 행동이었다는 --즉 자유의지에 따른--추측은 결국 그 행동에 대한 결과 역시 그가 지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어진다. 즉, 선택은 곧 책임을 낳는다. 일면 당연한 명제다. 또 우리 사회의 근간을 떠받치고 있는 사고이기도 하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고가 확산된다면 그야말로 이 사회는 아비규환이 될터이니 말이다.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명제에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우리가 선택을 하는데 있어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실을 꼼꼼히 분석해본 저자는, 알고보면 우리에겐 그다지 많은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유 의지에 의한 행동인 것 같아 보이는 이면을 뒤집어 보면 오히려 타인의 권위에 생각없이 복종했다거나, 현란한 광고 수법에 꼼짝없이 당했다거나, 뇌의 손상에 의해 광기의 지배를 받은 것이라거나, 피곤에 절어 형편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거나, 상황에 밀려 그렇게 행동할 수밖엔 없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즉, 당신의 선택은 강요된 것이며, 조작되었고 강제로 진행될 수 있음을 저자는 강변하고 있었다. 인간은 철두철미하게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기에, 오히려 자신에게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행동할 수 있단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라는 말씀도 있듯이, 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다는 것이 가혹할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흠...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예를 들어보자. 동성애에 관해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동성애가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저자의 의문을 제기한다. 이성애자로 태어난 사람들이 이성애를 선택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들 역시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면 과연 우리는 선택이라는 이름하에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 비난이라는 어감은 좀 쎄니, 달라질 것을 요구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심 되겠다. ) 군사 독재시절, 독재자의 지시에 따라 시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군인이나, 싸이코패스인 지도자의 끝없는 욕심을 채워줘야만 하는 부하의 경우는 어떤가? 머리에 종양이 생겨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전직 해군이 대학 시계탑에 올라가 총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쏴죽여 버렸다. 과학자들은 종양이 공감을 당담하는 뇌부분을 손상시켰기 때문에 그가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렇담 우리는 그를 연쇄 살인마로 비난할 수 없는 것인가? 카지노의 특수한 분위기는 우리가 돈을 잃는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해주는 역활을 한다. 중독자가 생겨나는 이유다. 백화점의 휘황찬란한 조명과 특수하게 심리학적으로 고안된 진열은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지갑을 열게 하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의해서 떠밀려 행동한 것 뿐이다. 이런 상황들을 감안하면 과연 모든 결과에 대해 일말의 동정이나 이해 없이 단지 비난만 할 수 있을 것인가 라고 저자는 묻고 있었다. 우리 모두 나약한 인간이라는 전제에서 저자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면 우리 자신도 같은 환경에 처했을때 다르게 행동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결국 그가 말하려는 것은,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믿은 무의식적이고 반자동적이며 깨여있지 못한 이성의 소유자들인 일반 개인들에게 너무 많은 비난의 짐을 지워선 안 된다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나쁜 선택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올바르고 탁월한 선택을 하기 위해 우리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도 심사숙고하고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 장에 나오는 네 가지 방법이다.' 상황의 위력을 인식하라.' '자신의 비이성적인 성향을 인정하라.'' 습관에 유념하라.' '문화의 영향을 인식하는 능력을 개발하라.'로 정리되는데, 그것들이 보다 능숙한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었다. 


결국 저자는 이미 비난받을만한 행동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너그러운 아량을,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선택을 위한 행동 제고를 요청하고 있었다. 우리 자신을 완벽하게 믿어서도, 주어진 환경을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환경을 산물이고,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거기에 적절한 통제를 가하는 것만이 우리가 진정으로 책임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줄 것이라면서 말이다.


일단 모조건 타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엔 동감한다. 저자의 주장 자체가 보다 너그럽고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도 이해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을 확대해 생각해 보자면 과연 누가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야 할까 의문이었다. 심지어는 연쇄 살인을 저지른 싸이코패스 살인마조차 동정해줘야 할 구석이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그가 태어날때부터 그런 성향이었다던지, 두뇌의 이상때문에 그런 행동을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으로 이해를 해줘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 FBI 프로파일러가 들으면 자다가도 웃을 나이브하기 짝이없는 사고다. 그들에겐 범죄자들의 극단적인 성향은 그자체로 심각한 현실이고 주의해야할 경고등일테니 말이다. 왜냐고?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에 남아있는 범죄의 추억이 프로파일러에겐 지워지지 않는 실제일테니, 안 그렇겠는가.


그렇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데에 마냥 자유로운 선택만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의 결과에 비난할 수 없다는 생각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건 간에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전적이건 전적이 아니건 간에...결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좋은 선택을 한 사람에겐 칭찬이 주어지고, 나쁜 선택을 한 사람에겐 비난이 주어져야 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언제나 환경 탓만을 할 수는 없는것 아니겠는가. 그것이 감경 사유는 될지언정, 모든 범죄자들의 면제 사유는 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랜만에 들어본 법학자의 책, 흥미롭기는 했다. 저자가 똑똑하긴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열린 사고를 갖자고 주장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다만 아쉬운 점은 상아탑에 갇혀 사는 교수이시다 보니, 조금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나이브하지 않는가 싶다는 것이었다. 뭐, 그것 역시 작가의 선택에 의한 것일테니, 어쩌겠는가.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하는 수밖엔...마음대로 고르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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