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침스키 - 인간이 될 뻔했던 침팬지
엘리자베스 헤스 지음, 장호연 옮김 / 백년후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며칠전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가 오래된 영화 <혹성탈출>을 보게 됐다. 어렸을 적 주말의 명화 시간에 봤을때야 그저 흥미롭고 기발한 소재라고만 생각했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우리에 갇힌 주인공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원숭이와 인간만 바뀌었을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바로 그 영화속에서 나오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어째서 인간은 피해자가 되면 그것이 끔찍한 일이라는걸 단박에 알아채면서도, 가해자가 되면  무시하거나 상관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서글펐다. 하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님으로, 그저 나는 그 뻔뻔한 위선에 대해 모르는척 하고 넘어가는 수밖엔 없었다. 그리곤 우연히 읽게 된 이 책, 내가 무엇을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읽고 나니 한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인간이 참으로 고약한 존재라는 것. 하긴 같은 종에게도 학살이니 살인을 벌이는 존재들이니, 다른 모든 종에게 친절하게 대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서도...그럼에도 이런 책을 읽다보면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참 몰라서도 잔인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욕심때문에도 잔인해지고, 버거운 일을 만나서도 잔인해지며, 거만함 때문에도 잔인해지고, 나쁜 성질때문에도 잔인해지지만, 가장 해로운 것은 무지하기 때문에 잔인해지는 경우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님 침스키라는 프로젝트가 인간이 조금 유식해 보고자 시작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 인간 외에 언어를 가질 수 없다고 단언한 언어학자 침스키의 견해에 반박하기 위해 일단의 과학자들은 침팬지를 상대로 언어 훈련에 돌입하게 된다. 그 최전선에 있었고, 또 가장 영리하고 유명한 침팬치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님 침스키다. 침스키를 무너뜨리기 위해 그의 이름까지 따왔을 때만 해도, 그의 운명이 그 이름때문에 불행해지고 지워진 짐이 많을 것이라는 것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지 지금와 생각해보면 의아해진다.  침팬치로 태어난 녀석을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시도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 말이다. 아니 아마도 그들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을 것이다. 실험을 한 것뿐이니까. 하지만 그로인해 님이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침팬치에게 그런 감정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태어난 직후부터 인간에게만 사육되어, 같은 종과는 떨어진 상태에서 수화를 통해 언어를 배우게 된 님은 마리화나를 피우고, 침대에서 자며, 배변 훈련을 받고, 아침이면 커피를 마시며, 생일이 되면 떠들썩하게 파티를 여는 존재로 길러지게 된다. 영리한 탓에 수화를 곧잘 따라하게 된 님은 곧 전국적인 스타가 되고, 그때만 해도 그의 빛나는 운명이 잘못 되어 질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걱정은 했겠지만서도, 다른 누군가가 이 영리한 침팬치를 잘 돌봐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떠넘겨 버리고 만다. 결국 연구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받들여져 키워진 님은 연구에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게 된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고, 꾸준히 버림을 받는 동안 그를 둘러싼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진다. 결국 최종적으로 생체 의학 연구 실험실에 팔려가게 된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인간처럼 길러진 침팬치가 그런 운명에 처했다는 것에 남다른 동정심을 느끼게 된다. 이때 그를 구해내자는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덕분에 님은 무사히 실험실에서 빠져 나와 동물 보호소로 향해지게 되는데... 

 

인간이 동물들에게 얼마나 잔인한가를 보여주던 <블랙 뷰티>를 생각나게 하던 책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님이 마지막 생을 보낸 곳이 바로 블랙 뷰티 목장이라는 것이다. 물론 님이 폭력적인 학대를 심하게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행동 연구의 과학 실험 대상이 되면서 인간처럼 사육되고, 인간에게 애정을 갖도록 길러진 뒤 버림을 받는 정서적 학대를 꾸준히 받았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블랙뷰티 못지 않은 학대를 받았다고 보여진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그가 더이상 연구 대상이 아닌 채로 보호소로 보내진 뒤 침팬치로써의 삶을 살아가던 마지막 장이었다. 그는 더이상 수화를 나눌 상대가 없음에도 수화를 나누는 것을 반겼으며, 자신이 나온 책을 즐겨 보고, 아침에 커피를 달라고 난동을 부리고, 종종 우리를 탈출해서는 주인집의 습격해 냉장고를 털었다고 한다. 어떤가? 사람들은 아무리 그를 인간처럼 키우려 해도 인간이 될 수 없다고 말을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인간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침팬치이지만, 자신이 인간인줄로만 알았을지 모르는 님이 과연 계속되는 학습과 버림,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 어떤 상처를 입었을지 먹먹해진다. 님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과학자들은 님이 언어를 배울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그가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에게 수화로 말을 걸고, 동료 침팬치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던 것을 말이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너무도 냉정하게 그를 판단했었던 것이 아닐런지...바라건대 님의 운명을 이어받는 동물들이 더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건 아마도 불가능한 바람일 것이고, 적어도 그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는 최소한의 환경에서 살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작가가 님 침스키에 대한 글을 쓰면서 객관적이면서 감정적이지 않은 접근 방식을 쓴 것이 돋보인다. 아마도 작가 입장에선 님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 비극적인 요소를 띄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감정을 자제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또 그 덕분에 책이 지루해진다는 것이 단점으로 책 중반까지 님 프로젝트에 관련된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님에게만 촛점이 맞춰지는게 아니라, 님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촛점을 맞추다보니, 그 수 많은 인간들의 거취에서 자녀, 이혼 문제까지 알아야 하는가 라는 회의감도 들었다. 덕분에 두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는데, 동물 과학자들이 굉장히 냉정한 사람들이라는 점과--난 그들이 따뜻한 사람일 것이라 짐작했었다.--내가 과학자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점이다. 읽다보니 제 정신이 아닌 듯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여서, 윤리적인 견지에서 과학자를 통제해야 한다는 말이 왜 종종 나오는지 이해가 되더라. 그러다보니 재밌어 지는 부분은 님이 모든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침팬치로써의 삶을 시작하는 보호소 부분부터였는데, 조금 늦은 감이 있어 아쉬웠다. 하니 혹시나 중반에 지루함때문에 더이상 읽기를 포기하시는 분은 끝까지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님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니 그가 침팬치로써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결론은? 님이 가엾다는 정도? 우리가 동물을 도무지 어느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암담하다는 정도? 인간은 정말 어리석고 이기적이구나 하는 것? 아마도 님을 동정하면서 내가 동물 학대를 중지하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저 싸구려 동정심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나 역시도 님을 그렇게 만든 인간들과 다를바 없으니 말이다. 다만 동물에 대한 이해를 조금은 넓혀 주었으면, 그들이 말을 못한다고 해서 감정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었으면, 단지 그런 바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건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니 말이다. 아니 , 그것조차 어려운 것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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