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일기 세미콜론 코믹스
아즈마 히데오 지음,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좀 수상하다 했는데 알고보니 작가가 자기 자신을 실종시켰던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던 만화였다. 일단 도입부부터 나의 흥미를 끌었다. " 이 만화는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가능한 한 리얼리즘을 배제한 채로 그리고 있습니다." 라는 친절한 멘트와 함께 ' 리얼하면 그리기도 괴롭고 어두워지니까.' 라는 말 풍선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어느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리얼리즘이 거짓이 아니라는 점에서 좋긴 하지만서도, 때로는 그 리얼이라는 것이 직시하기 힘든 것이기도 하니까. 인간에게 유머가 왜 필요하겠는가. 그 리얼리즘에 일정 수위까지는 면역이나 중화를 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만큼 현실이라는 것이 당사자에게도 버거운 것이고,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바라보기 힘든 것이다. 해서 작가의 재치있는 한 마디에 공감이 갔다. 그리곤 자신의 현실을 리얼리즘을 배제해야 설명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 작가에게 호기심이 들었다. 도무지 어느 정도 길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도무지 어느 지경까지 이르렀길래 리얼하면 안된다고 본인 입으로 털어놓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곧 이유가 밝혀진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엉겹결에 만화가가 된 저자는 그 이후 밀려드는 의뢰 원고에 점차 지치게 된다. 작품성은 고사하고 그저 되는대로 쉼없이 원고지를 채워가던 저자는 어느날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본인 말로는 '일하기 싫어 병' , 내가 보기엔 '중증 우울증' 이나 ' 중증 알콜중독' 에 걸린 것이 아닌가 싶었던 저자는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산에 오르게 된다. 술먹고 죽자 했던 계획이 죽지 않음으로써 틀어져버리고, 그는 그 이후 그대로 산에서 야영을 하게 된다. 일명 거지 생활, 보다 고상하게는 백수 생활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고참 만화가에 버젓이 아내도 있는 사람이 돈 하나 없이 거리에 나와서는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추위와 배고픔으로 고생을 하던 저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리 생활에 통달하게 된다. 어디서 먹을 만한 음식 쓰레기가 나오는지 추위는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쌓인 저자는 돈 하나 없이도 그럭저럭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된다. 당시 돈이 없어 술을 먹을 수 없었기에 오히려 건강이 좋아졌다고 하니, 그의 알콜중독 정도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되실 것이다. 그렇게 거지 아닌 거지로 살아가던 그는 얼떨결에 노가다판에 들어가게 된다. 힘들것 같았던 육체노동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었을 즈음, 그는 책임질만한 자리가 되자 또다시 그만두고 만다. 그리곤 본격적인 알콜중독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어엿한 만화가라는 직업이 있음에도 거리에서 거지로 살았던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본인입으로 리얼리즘을 가급적 배제했다고 하는데도 읽기가 쉽지 않은 것이, 그가 거지로 있을때 먹은 음식이며 잠자리며, 하여간 고행도 그런 고행이 없다 싶게 고생을 한 과정들이 고스란히 그림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런걸 어떻게 먹어 하던 저자가 거리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요령이 늘어나던데, 그것이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면서--적어도 쉽게 죽진 않겠구나 싶어서.--한편으론 짠하기 그지 없었다.--어떻게 인간이 저런걸 먹고 사냐?라는--그런 일상들을 본인이 태연하게 증언하는 데 소름이 끼치더라. 그렇게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길거리 생활에 자청해서 돌입했다는 사실도 충격이고, 본인의 치부라고 할만한 사건들을 남 이야기하듯 하는 냉정함에도 놀라서 말이다. 2류였다고는 하나 그래도 오랫동안 직업이 만화가여서 그런가. 진실되게 보이려면 최대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듯했다. 설렁 설렁 하는 듯 보여도 통찰력도 있고, 현실을 파악하는 균형감각도 탁월했고 말이다. 유머집에나 어울릴듯 한 동글동글 귀여운 만화체로 섬뜩한 현실을 들려주는데 그 언발란스가 가히 치명적이다. 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린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솔직하면서도 적나라한 만화를 그려낼줄 안다는 점에서 일본 작가들에게 놀랐다. 자신의 인생으로 작품을 만들어 낼 줄 안다는 것이, 그것도 탁월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진짜 프로에게나 가능한 일이라서 말이다. 그가 처한 현실이 처참함도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은 접하기 힘든 세계를 이해하기 쉽게 알려 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을 놔버린 과정들을 설득력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작품성 있는 만화였지 싶다. 마지막 장에서 알콜 중독으로 정신병동에 갖혔던 이야기를 쓰고 있던데, 그가 나중에 어떻게 그곳에서 살아 나왔으려는지 궁금해진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에 치여 우울증이 걸리고 나중에는 알콜중독이 되어 , 아예 인생 놔버린 채 살았던 시절에 대한 회고. 진부하지 않는 이야기를 읽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왜 어른들이 자식들이 노가다판에 끼여드는것을 그렇게 꺼려하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가더라. 이 작가에게 한정된 경험일지는 모르겠으나, 제 정신인 사람들이 별로 없어 보여서 말이다. 일도 힘들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것 역시 보통 일이 아니었다. 거리 생활과 알콜 중독을 무사히 이겨내고 이제 만화가로 살아가고 있다는 작가에게 박수를...그에겐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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