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일기 1 - 트리에스테~볼로냐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다비드 베 지음, 임미경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프랑스 태생인 저자가 이탈리아에 2개월 정도 체류하면서 겪은 일들과 생각들을 그려낸 것으로, 그림으로 그린 수필집이라고 하면 좋을 듯하다.  이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책을 읽은 것이라 정확한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작가의 아내가 이탈리아 태생인 모양이다. 아내와 함께 아내의 모국에 들러 여러 도시들을 어슬렁대면서 떠오르는 것들을 그려낸 것인데, 다른건 몰라도 아내의 할머니가 이탈리아 분이건 맞는 듯하니, 처갓집에 놀러 와서는 주변을 정처없이 둘러보고 들여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위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렇다보니 외국인임에도 비교적 이탈리아 정서와 문학에 친숙한 반면, 그렇다고 온전히 이탈리아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탈리아를 바라본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이 글 대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할만큼 수필적인 성향이 강한데 , 만화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주로 작용한다기 보단 수필처럼 자신이 평소에 하는 생각들을 그림으로 표현해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다만 특이한 점은 이탈리아를 어느정도 아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누구나 다 아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 이탈리아 사람들도 잘 모를 듯한 장면들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작품을 읽은 이탈리아인들조차 " 아니, 나 이런 이야기 처음 들어보는데! 더군다나 나는 이탈리아 인이라고! " 하지 않을까 싶은...작가가 원체 틈새나 비주류, 남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들에 주로 흥미를 느끼는 사람인 듯 했다. 연작이라는데, 1권인 이 책에선 2005년 1월에서 2월까지의 기간동안, 트리에스테에서 볼로냐를 돌아다닌 것을 그린 것이다. 때론 걷거나 때론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머리속에서 자유롭게 흘러가는 생각들을 그려내서 그런가 작가의 생각을 따라잡기 어렵지 않다는 것이 좋다.  어떤 틀이나 사고나 꼭 무슨 말을 해야 겠다는 강박이 아니라, 그저 이탈리아의 어떤 풍경을 보면서,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서 든 생각들을 에피소드처럼 들려주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중 가장 인상적이고 흥미진진하게 봤던 에피소드는 럭키 루치아노라는 갱단 두목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탈리아 갱단 하면 <대부>의 콜리오네 가문 먼저 생각하는데, 그건 영화 대부의 성공에 힘입은바 큰 것이고, 그들보다 더 잔인하고 특이했던, 그리고 누구보다  이탈리아 갱스터의 대표격이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바로 <럭키 루치아노>라고 한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범죄 제국을 세운 미국 이탈리아계 마피아로 후에 국제적인 마약망을 만든 사람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현재의 지구를 이렇게 망쳐 놓은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분이였던 모양이다. 그런 조직력을 발휘한 분임에도 비교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걸 보면 그가 속해있던 곳이 암흑의 뒷세계였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보통 지도자가 그 정도로 미쳤다면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야 하는게 정상이니 말이다. 생존 당시 워낙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자라 그런지 이 작가 역시 그에게 호기심을 넘어선 관심을 표명하고 있었는데,  신속하게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는 자리에 올른 갱스터였다던지--남 시키면 됐음. 얼마나 영리한 자냐?-- 시골에 은둔하면서 성서를 이용해서 지령을 내렸다던지, 평소 허름하고 추레하게 하고 다녀서 다른 갱단들조차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던지 하는 일화들은 그가 얼마나 스타일리쉬하게 독창적으로 미친 사람이었는지 추측하게 한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미친 일화들이 넘쳐난다는 점에서 이 작가가 이탈리아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아마도 프랑스엔 그렇게 날것으로 미친 자들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탈리아에 유독 갱스터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갱스터를 만들어 내는 조건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아일랜드 갱단도 유명하니 말이다. 갑자기 궁금해지네...

 

이탈리아를 거닐면서 다른 것도 아니고 이탈리아가 배출해낸 최악의 갱스터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 보듯, 작가의 관심이 평범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특징이다. 초현실적인 세계나 중세, 이교, 매음굴, 비적, 유목민등에 관심이 많다던데, 아니나 다를까 화풍 역시 작가를 닮아 그로테스크하다. 물론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그려내기엔 그로테스크가 딱이겠지만서도, 누군가의 악몽에 나올법한 그림체가 설핏 이 작품에 대한 접근을 막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읽어보면 그래도 이야기를 제법 그럴듯하게 주조해내는 작가던데 말이다. 만약 이 작가에게 유쾌한 유머감각이 있다던지, 평균적이고 상식적인 시선의 그림을 그려냈더라면 보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서도, 고스틱하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작가 자신의 개성이자 트레이드마크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물론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있어서는 이 그림체가 탁월하긴 했지만서도, 지나치게 탁월한 결과 종종 그림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장면도 있다는 점은 그다지 좋은 점은 아니지 싶다. 그걸 보면 확실히 문자보단 그림이 전달력에 있어서 직접적인 듯...충격이 여과없이 전해지니 말이다. 이미 상상이 다 된 채로 나와주다 보니 머리속에서 검열이나 편집이 불가능하단 말이지. 그것이 빠르게 작가의 말을 이해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좋지만서도, 때론 머리속에서 안 떨어진다는 점에서 곤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만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프랑스 만화계에서 새로운 만화 경향을 주도하는 주요한 작가중 한 명이라고 한다. 이 작품도 괜찮긴 했는데, 이보단 그의 형이 이야기를 그린 <간질의 승천>이라는 책이 유명하다고...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책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진다. <이탈리아 일기>의 2편과 < 간질의 승천>이 언젠가는 나와주길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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