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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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에서 은퇴한 뒤 시골에서 아내와 한적한 전원 생활을 즐기고 있던 데이브 거니는 동료 형사 잭의 전화를 받고는 심란해진다.  4개월동안 답보 상태인 살인 사건이 하나 있는데, 도와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무슨 사건인데 그럴까 이야기나 들어보자 했던 거니는 사건 자체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결혼식날 모든 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두막에 들어간 신부가 목이 잘린 채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살인자로 지목된 멕시코인 정원사는 그 시간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이웃 유부녀와 함께 종적을 감춘 뒤 여태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것도 헬기까지 동원 총 5대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살인이 벌어질 수가 있는지, 더군다나 목을 잘라 식탁위에 올려놨을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할 이유가 무엇인지 경찰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사건 자체에는 흥미가 가지만 형사일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니는 살해된 여자의 엄마를 만나본 뒤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자식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심정일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구도 사건의 트릭을 풀지 못한다니 내가 한번 풀어볼까 싶어 나섰던 거니는 우선 아내의 무언의 압박에 갈등한다. 누구보다 조용하게 살고 싶었던 거니의 아내는 남편이 그들의 조용한 일상에 어둠과 소란을 끌어들이는 것이 심히 못마땅하다. 하지만 거니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미스테리를 푸는 것이야말로 그가 제일 잘 하는 일이고, 재밌어 하는 일이니 어쩌겠는가. 거니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이끌려 사건을 캐고 다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일단 주변을 탐문해본 거니는 신부 질리안이 모두가 혐오하고 식겁해하는 여자였다는걸 알고는 의문이 증폭된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렇게 이기적이고, 문란하며, 성폭력 가해자이기도 한 열 여덟의 질리언과 결혼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신부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장이란 사실이다. 그는 거부에 천재라고 소문이 난 정신과 의사였다. 질리안이 비록 대단한 미인이라고는 하지만 정신과 의사가 그렇게 제 정신이 아닌 여자와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가운데, 그 여자를 죽인 멕시코 정원사 역시 신랑이 불법 체류자를 3년동안 봐준 케이스였다는 것을 알고는 의문에 휩싸인다. 유난히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는 정신과 의사인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운이 없는 피해자에 불과한 것일까? 거니는 그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 처음엔 질리안의 죽음만을 수사해 나가던 거니는 질리안이 다니는 학교 졸업생 가운데 실종된 사람이 몇몇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이 실종된 방식이 질리안과 비슷하다는걸 알게 된 거니는 자신이 어쩜 연쇄 살인범을 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식은땀이 흐른다. 과연 질리안을 죽인 범인은 멕시코 정원사일까? 그는 과연 어떻게 살인을 하고도 무사히 도주할 수 있었던 것일까? 불법체류자인 그가 잡히지 않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퍼즐을 푸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 그에게 무능한 형사들마저 도움을 주지 못하는데... 

 

<658, 우연히>를 인상적으로 본 탓에 , 같은 작가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보게 된 책이다. 일단 전작때처럼 장이 시작할때마다 범인의 시로 시작하는 것이 여전하고,--뭐, 같은 작가니까 당연한 것인가?.--아내와의 갈등이 여전히 사이드 매뉴처럼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별로긴 했다. 그것들이 꼭 연속작품에서 보고 싶을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마도 연작이란 면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갑작스럽게 바꾸는 것이 어렵기는 했겠다 싶긴 하다. 하여간 전작들의 느낌을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함을 덜 느끼게 해주지 않았는가 한다. 아마 이 작품을 존버든의 첫 작품으로 읽는 사람들은 좋기만 하구만 뭐가 문제야 할지도...처음 읽는 것과 두번째 읽는 것은 또 다른 것이니 말이다. 거기에 살인이 지나치게 잔인한 점과 그것이 연쇄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점등이 사건을 어쨌거나 크게 키우는 작가의 성향에서 벗어나지 않은 듯한 점도 별로였다. 추리 소설의 묘미는 수법이 얼마나 잔인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잔혹하게 살해되었는가 하는 점이 아니라, 그 트릭을 어떻게 풀어가는가에 있는 것이니 말이다. 요즘 보면 추리 소설이 지나치게 잔인해 진다는 점이 아무래도 추리 소설의 묘미를 반감시키고 있는게 아닐까 한다. 피범벅이 되었다고 해서 그 소설이 더 재밌어 지는건 아닌데, 작가들이 모두 이 정도로 수위를 높이지 않으면 주목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내 말하지만 좋은 추리 소설은 피로 사람을 경악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로 사람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건 이런 저런 단점들이 눈에 뜨이긴 했으나, 그 외엔 집중력이 내내 일정하게 유지된다던지, 누가 범인일지 추측하기 어렵게 만든다는지 하는 점등은 여전히 탁월했지 싶다. 결론이 조금 약하다 싶긴 했지만서도, 그건 중반을 넘어서면서 판을 너무 크게 키운 작가 탓인듯...그나마 판을 이렇게도 크게 키워놓고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작가의 역량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할 정도니 말이다.  아마 내가 작가라면 분명 이걸 어떻게 수습할지 난감해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작가가 못되는 것이겠지만서도...뭐, 해서 그럭저럭 내려진 결론에 그냥 만족하기로 했다. 압박이 심해지던 중반과 다소 허무한 결론 사이에 조금 균형은 맞지 않는다 싶긴 했지만서도, 적어도 신부를 살해한 독창적인 수법을 고안해 냈다는 점에서 만큼은 박수를 받을만 했다고 보여지니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다시 데이브 거니의 3편을 기다려 볼란다. 이 정도의 퀄리티라면 충분히 기다려볼만하니 말이다.

 

그런데, 한국 제목도 꽤 괜찮았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원제 역시 그럴싸하다. Shut Your Eyes Tight 이라...반전을 그대로 제목으로 쓰다니, 하여간 존 버든 이 사람,  영리한 작가가 맞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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