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의 전설적인 스카우터 거스 로벨은 타자가 공을 치는 소리를 듣고도 자질을 알아보는, 직업적인 면에서는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과 봐도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안목이 진가를 발휘하던 것도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지 오래, 늙은 데다 시력마저 나빠지고, 거기에 성격마저 고집불통인 그를 구단에서는 은퇴시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퇴물취급을 받을 수밖엔 없게 된 것은 인터넷의 발달, 영화 <머니볼>에서 봤다시피, 오클랜드 ' 애스렉티스' 구단 성공에 자극을 받은 많은 구단들은 이제 컴퓨터를 이용해 선수들을 데려오고 있었다. 즉, 육체노동에 가까운 --물론 다분히 예술적인 면이 가미된--야구계에서도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몰아내고 있었던 것, 해서 대표적인 아날로그 스카우터인 거스가 설자리를 잃어버린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거스 본인이 현재의 흐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해서 명예롭게 은퇴하라는 친구 피트의 조언을 뿌리치고 그는 자신의 마지막 스카우팅 여행에 나서게 된다. 그런 그가 못내 못미덥던 피트는 거스의 딸 미키에게 아버지를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이에 최연소 파트너가 되기 위해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려 사는 변호사 미키는 화가 난다. 6살때 엄마를 여윈뒤 아버지 손에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인지 아버지의 사정을 봐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지못해 아버지의 여행에 동참하기로 하는데...



아버지를 따라 나선 여행에서 미키는 한때는 잘 나가는 투수였지만 어깨가 나간 이후 스카우터로 전향한 죠니를 만나게 된다.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때문에 금세 친해진 두 사람은 하지만 관계를 맺는 법을 잘 알지 못하는 미키 때문에 진전을 보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미키는 아버지와의 여행에서 드디어 오래동안 해묵었던 갈등을 터뜨리기에 이른다. 왜 자신을 버렸냐는 질문에 거스는 그저 회피만 할뿐 대꾸를 하지 못한다. 과연 이대로 부녀의 갈등은 해결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 해 최대 대어라고 일컫는 고교 선수의 스카웃을 둘러싼 거스의 이견으로 인해, 그렇잖아도 간당간당한 거스의 위치는 발판을 잃을 듯 보인다. 그럼에도 거스는 꿋꿋하게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데...

영화 <머니 볼>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던,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것을 찬양하던 영화라고 보심 되겠다. 수치는 선수를 알려 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눈과 귀로 파악하는 수밖엔 없다. 손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수고를 들여서 제대로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것을 설파하고 있던 영화였으니 말이다. 재밌는 것은 머니볼을 볼때는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가도, 이 영화를 보니 또 이 영화에서 하는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머니 볼>이 ' 구세대를 가라, 우리 신세대는 보다 합리적이고, 수학적인 계산으로 야구를 하겠다'는 선언이라면, 이 영화는 '야구는 손과 발로 뛰는 것이지 수치로 모든 것을 내다볼 수 있는 게임이 아니'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헷갈리긴 한다. 아마 둘 다 옳을 것이다. <머니 볼>에서는 관습적이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야구계에 경종을 울려대는 것이었다면 , 이 영화에선 현장에 나가보지도 않고 컴푸터만 두둘겨서 얄팍하게 승리를 이뤄내려 하는 신 스카우터들의 행태를 고발하고 있다는게 다르다면 다를 뿐. 둘 다 옳은 지적이고, 둘 다 그럴듯하다. 다만, 디지털로의 대세는 이미 거스릴 수는 없는 것이고, 재능을 알아보는 아날로그적인 안목은 컴퓨터가 분석해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둘의 관계를 배타적인것으로만 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지 싶다. 다시 말해 둘 다 옳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잔꾀는 소용이 없다. 모든 성과는 정석대로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소박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한다. 우린 모두 손쉬운 대박을 꿈꾸고, 머리를 잘 쓰는 것에만 흥미를 갖는데, 그렇지 않다고. 진정한 승리란 자신의 몸을 움직여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들려준다는 점이 좋았다. 뭐랄까. 진실해 보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재밌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다. 식상하기 그지 없는 부녀의 갈등에, 노쇠한 늙은 아버지를 비추는 연민어린 시선, 신구 갈등의 뻔하디 뻔한 전개, 미키와 죠니의 난데없는, 그리고 새로울게 없는 로맨스는 어쩌면 영화를 이렇게 상투적으로 찍으셨을까 의아하게 만들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너무 늙은데다, 지끔껏 맡았던 배역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은 성격 묘사에 흥미를 잃기 충분했고, 섹시한 매력 정도는 풍길줄 알았던 죠니 역의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지극히 단순한 배역에 내가 다 안스러울 지경이었다. 미스 캐스팅이거나, 적어도 배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예가 되지 않을까 한다. 거기에 미키역의 에이미 아담스... 그래도 내가 이 배우에게만큼은 기대를 걸었는데,  늙어가는 중이라는 것만 확인했을 뿐, 해서 피기도 전에 지는 꽃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안타까웠다. 그래, 한 물 갔다고 여겨지는 아날로그를 찬양하는 것은 좋다 이거다. 하지만 그럴려면, 적어도 그 아날로그가 신선하고 재밌고 참신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할 거라는 점을 잊고 있었던게 아닐까? 그러니까, 무조건 과거가 좋다는 말로는 설득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멋진 배우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을 생각이었다면 보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시작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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