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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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가장 원대한 로망중 하나-- 만약 내가 편집자라면...그런데 어느날 프르스트를 만난다면? 


나는 일단 그에게 양해를 구한 뒤 한번 힘껏 껴안을 것이다. 듣기로는 프르스트는 스킨쉽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게 싫다고 하시면 큰 절을 해도 무방하겠지만서도, 다정한 분이셨으니 한번쯤은 이해해주실 거란 가정하에 일단은 허그를 하는 걸로...그리곤 말하리라.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남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이미 많이 들으셨겠지만, 아마 당신같은 천재는 문학사에 다시는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고. 당신의 희생은 절대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리라. 


그리고 나선?


빨간색 볼펜 두 자루를, 한 자루는 그에게 한 자루는 내가 나눠 갖고서는 " 자, 그럼, 인사는 했으니 이제 시작해 볼까요?" 라면서 편집에 들어가기로 하겠다. " 아~~! 손 볼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니더라구요. 며칠은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겠죠?" 라고. 그리곤 " 짐작하셨겠지만, 이 단락은 문장이 너무 길어요. 한 세줄로 줄이기로 하죠. 뭐야, 그 불만스런 표정? 그것도 많이 봐준 거라구요! 그리고 여긴 주어가 뭐여요? 당최 찾을 수가 없네요. 이 문장에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이었나요? 이렇게 쓰면 독자들이 못 알아 먹을 거란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좀 더 명확하게 고치셔야 할 거여요. 그리고 이건 좀 지루한데, 빼면 안 될까요? 문장을 꼭 이렇게 써야 겠어요?  조금 정리를 하면 안 될까요? 그러면 훨씬 보기 좋을 것 같은데...이렇게 하죠. 지금 있는 문장들을 정리해서 한 1/3 만 남기는 거여요. 골자만 골라서 말이죠. 그래도 독자들은 선생님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거여요. 아니, 어쩜 더 좋아할지도 모르죠. 실제로 선생님의 글을 정말로 읽고 싶어하는 독자분들 중에선, 문장속에서 길을 잃고는 헤매다가 끝내 좌절하시는 분들이 많다고들 하시거든요. 그 분들이 주장하시는 바는 바로 이런 것이죠. 도무지 이 양반 무슨 말을 하는거야? 라고요. 뭐, 평생 낸 책들 중에서 대표작이라고 하면 이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뿐이지만, 그래도 명색히 프로페셔널한 작가신데, 독자들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거여요. 줄이고, 정리하고, 다듬고, 빼고, 간략한 문장으로 압축하고! 어때요? 근사하지 않나요? 제 생각엔 13권 짜리를 5권 정도로 만들면 딱 적당할 것 같아요. 자, 이제 신나게 우리 시작해 봅시다" 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프루스트의 책을 읽다보면 늘 로망에 잠긴다. 진짜로 그를 만난다면 이래보고 싶은데 말이다. 안타깝단 말이지. 하긴, 실제로 그랬다면 문학사에 길히 남을 만한 수작을 그냥 사장시키는 결과를 낳았을테지만서도... 하지만 그래도 그래 보고 싶다. 왜냐고? 프루스트에게 한번 투정을 부리고 싶어서 그런다. 당신이 온 인생을 걸어 쓴 작품이 후대 사람들에게 숙제처럼 남겨진 것을 아느냐고, 그래서 당신의 책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당신을 오해하고, 비아냥대고, 비난하고, 별별 혐의를 갖다 붙이는 것을 아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는 그의 길고 긴 문체, 독자들과 절대 타협하지 않는 문장에 있다는 것을 아는 나로써는 그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이다. 이해하기 쉽도록 좀 친절하면 안 되었나요? 라고 말이다. 그렇게 접근성 곤란하게 당신을 올려다 놓을 필요는 없었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면 그는 아마도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겠지. 이해 못해도 괜찮다고. 그냥 나는 나니까. 그걸 고칠 수는 없는게 아니냐고 말이다. 그래, 맞는 말이다. 한치의 틀림도 없이. 그의 문장은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고, 그가 평생을 걸려 완성해낸 것이니 말이다. 만약 문장에도 얼굴이 있다면, 프루스트의 문장에는 확실히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그리고 하는, 할 인간 누구라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특징으로 말이다.


2. 그의 글을 읽어내기가 어려운 것은 그가 죽기전까지 만났던 모든 사건들의 인상을 몇 개의 문장만으로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데 몰두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대명사 격이 되어버린 그 유명한 마들렌 과자건, 스완네 집의 도입부로 유명한 그의 어린 시절의 초상으로 잠자기 전 엄마를 기다리느라 초조한 아이의 심정이건, 멋진 성당의 당당한 모습을 바라본 풍경이건, 한 인간이 남긴 찰라적인 인상이건 간에 그는 자신이 느낀 것을 완벽하게 글로써 재현해 내려 했다.  마치 사방트 화가가 자신이 스쳐 가면서 본 거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그는 그림이 아니라 묘사로 해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그래서 당신이 누구건 간에, 그의 글을 읽는순간 그가 느낀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완벽함을 그는 추구했던 것이다. 실제로 프루스트의 동생은 그가 사망한 뒤, 책에서 나오는 성당을 찾아본 후, 책에서 묘사한 그대로라고 외쳤다고 한다. 무려 30여년전에 그가 단지 슬쩍 지나친 곳이었음에도 말이다. 이제 왜 사람들이 그를 천재라고 칭하는지 조금 감이 오실 거라 본다. 그리고 실은 그런 그의 천재성이 나에겐 그를 매우 애처롭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그런 감수성에 민감성에 예민함이라니...도무지 그런 상태로 어떻게 50여년의 삶을 견뎌 냈을지가 아득하기만 하다. 대단한 정신력이라고 아니 말 할수 없겠다. 그게 바로 내가 그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그리고 가장 존경하는 작가라고 말하고 다니게 만드는 이유기도 하다. 나에겐 그의 삶이 , 문학에 온전히 바쳐진 그의 삶이 너무 끔찍해서 말이다. 그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문학사에 길이 남을 시도라는걸 확신하지 않았던들, 그는 그런 희생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걸 낭비하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 하건 간에 말이다. 그의 위대함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  그런 그의 통찰력에서 말이다.


3. 1편에서 밑줄 그은 말들.


그러나 , 삶의 가장 사소한 것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인간은 마치 회계 장부나 유언장처럼 가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물질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 아는 사람을 보러 간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행위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지적인 행위다. 눈앞에 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모든 관념들을 채워 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체적인 모습은 대부분 그 사람에 대한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43


어느 날 갑자기 나에 대해 다정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고 해서 불쑥 과일 바구니를 보내오는 친구가 아니라, 우정의 의무와 요구 사이에서 상상력과 감수성의 충동적인 움직임으로 올바른 저울을 내 쪽으로 기울일 수 없다고 해서 내게 해로운 쪽으로 왜곡하지 않는 그런 친구를 더 원했다. 비록 우리가 잘못을 했다고 해도 , 우리 가족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 잘못이 의무를 쉽게 면제해 주지는 못했다.--168


그녀가 그렇게도 잘 알고 또 신문을 읽으면서 자주 품게 된 동정과 연민의 선한 감정이나 그와 비슷한 기쁨도, 부엌 하녀를 위해 한밤중에 일어나야만 하자 그만 귀찮고 짜증이 나서 전혀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금 전 의학 서적에서 읽었을 때는 그렇게도 슬퍼했던 내용과 똑같은 고통을 목격하면서도 부엌 하녀에게는 불쾌한 불평만 늘어놓으며 무서운 야유까지 해 대는 것이었다.--218


물론 이 말은 그르랑댕 씨가 고함을 지르며 속물들을 공격했을 때 진지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이 속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는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로지 다른 사람들의 열정만을 알며, 우리가 자신의 열정을 알게 되는 것은 주로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그 열정은 우리에게 이차적인 방식을 통해서만, 즉 첫 번째 동기를 보다 품위 있는 동기로 바꾸는 상상력을 통해서만 작용한다. 르그랑댕의 스노비즘이 공작 부인을 자주 만나러 가라고 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지 그의 상상력에 명령하여, 공작 부인을 온갖 우아함으로 치장된 여인으로 꾸미게 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그르랑댕은 비열한 속물들은 알지 못하는 정신과 미덕의 매력에 끌려 공작 부인에게 접근한 것이라고 스스로 평하는 것이었다. 다만 다른 속물들은 그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르그랑댕에게 일어나는 상상력의 중개 작업을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의 사교 활동과 최초의 원인을 나란히 놓고 보았던 것이다.--229



아주머니에게 시작되고 있었던 것은 --단지 보통 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난 것뿐이지만--죽음을 준비하며 자신을 번데기로 감싸는 노년의 커다란 체념이었는데, 이런 체념은 오래 끌어온 인생 말년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가장 단단한 정신적 유대로 맺어진 친구들 사이에서, 또는 열렬히 사랑했던 옛 연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은 어느 해 부터인가 서로 만나는 데 필요한 여행이나 외출을 중단하고, 편지 쓰는 일은 그만두고,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아주머니는 자신이 결코 스완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결코 집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고통스럽게만 여겨지는 이 결정적인 칩거가, 같은 이유로 오히려 아주머니에게는 견디기 쉬웠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주머니가 나날이 확인할 수 있었던 소진한 기력탓에 어쩔 수 없이 부과된 칩거였는데도, 아주머니는 행동이나 움직임 각각을 피로나 고통으로 만들면서 자신의 무위나 고립, 침묵에 기력을 되찾아 주는 축복받은 휴식의 부드러움을 부여했기 때문이다.--253


사실이란 우리 믿음이 존재하는 세계로는 들어오지 못하며, 사실은 믿음을 낳게 한 적이 없지만 파괴하지도 않는다. 사실은 믿음을 끊임없이 거부할 수는 있어도, 믿음을 약화하지는 못한다. 불행이나 질병이 눈사태처럼 연이어 한 가정에 들이닥쳐도 가족들은 신의 자비나 의사의 능력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런데 아무리 진실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위선적인 면이 있기 마련인데, 남과 얘기할 때는 그 사람에 대한 의견을 말하기를 삼가지만 그 사람이 자리에 없으면 금세 말하는 것처럼 , 우리 부모님께서도 뱅퇴유 씨와 함께 있을 때는 원칙과 예절의 이름으로 스완의 결혼을 개탄하면서도 몽주뱅에서는  그런 것을 위반한 적이 없다는 것을 은연 중에 비추셨다.--262


프랑스와주가 만일 " 그분은 그래도 치인척입니다. 치인척에게는 항상 존경심을 표해야 합니다." 라고 말하기라도 하면 나는 "이런 단어도 모르는 무식쟁이와 말싸움을 하다니, 나도 사람이 지나치게 좋군," 이처럼 나는 프랑수아즈를 평가하는데 있어 편협한 인간의 관점을 택했는데, 공정한 성찰을 통해서라면 그런 편협한 인간을 가장 경멸했을 사람들조차도, 평범한 삶의 장면에서는 그 역활을 더 잘 해내는 법이다.--270

------2부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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